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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리 Dec 16. 2022

자기 조절력

여덟 살 아이의 겨울(2022.12-2023.02)



오늘 쉬는 시간에 누구랑 놀았어?




학기 초에 하던 질문을 요즘 다시 하기 시작했다.


반에서 단짝 친구로 지내던 아이가 최근 전학을 간 후부터다. 학기 초, 놀이터에서 우연히 만나 같이 어울린 이후로 자주 만나 놀곤 했다. 친구의 집에도 놀러 가고 온 동네 놀이터를 탐험하더니 자연스레 반에서도 단짝처럼 지냈나 보다. 그런데 그 친구가 전학을 갔다.


"오늘 쉬는 시간에 누구랑 놀았어?"
"혼자 놀았어."
"왜... 다른 친구들이랑 같이 놀자고 하지. 그럼 오늘 누구누구랑 말했어. 말은 했을 거 아니야."
"안 했어."
"한 마디도?!"


나는 내가 아는 친구 이름을 몇 명 댔지만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걔는 나랑 안 놀아."


상상력을 더해 혼자 놀고 있는 아이를 떠올렸다. 사실 상상력은 필요치 않았다. 내겐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었으니까. 등굣길, 아이는 같은 반 아이를 마주쳐도 인사조차 하지 않고 지나치기 일쑤였다. 상대 아이도 그렇고 내 아이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만큼 친하지 않다는 거겠지. 아예 관심 밖에 있거나.


"혼자 놀면 외롭지 않아? 엄마는 네가 혼자 놀지 않았으면 좋겠어."
"이상하게 나는 혼자 노는 게 좋더라!"
"전학 간 OO랑 같이 놀던 거랑 비교하면?"
"OO랑 같이 노는 게 더 재미있지."
"그럼 OO처럼 재미있을 것 같은 친구를 찾아 같이 놀자고 해봐."
"엄마, 미안해요."


갑작스러운 아이의 반응에 나는 움찔했다. 솔직히 말해야겠다. 이 대화를 하면서 나는 마음속 불편한 감정을 아이에게 들키고 말았다. 반 친구들이 너랑 노는 게 재미없어서 그런 거 아냐? 혹시 다른 친구들한테 소리 지르고 그러면서 화낸 건 아니지? 말을 할수록 아이를 압박하는 내가 느껴졌다. 이쯤에서 그만둬야 한다. 더 이상 아이를 몰아세우면 안 된다.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이 전쟁은 하루 지난 아침, 다시 벌어졌다.


아이가 또래와 어울리지 못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할 때마다 나는 자꾸 아이를 탓한다. 등굣길,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또래 무리를 만났다. 같은 반은 아니지만 엄마들도 알고 종종 놀이터에서 놀던 아이들이었다. 아이는 잔뜩 들떠 친구들과 인사도 하지 않은 채 자기 말만 하기 시작한다.


"와! 진짜! 빽빽하다, 빽빽해. 도대체 몇 명이야. 스무 명, 스물 한 명?"


혼자서 말하고 혼자서 대답하는 이 상황이 불편했다. 그 정도는 안 되는 것 같은데... 결국 내가 맞장구를 쳐준다. 그 와중에 자전거를 타고 앞서가던 친구가 연석에 걸려 넘어졌다. 아이가 말한다.


“나는 안 넘어지는데. 나는 자전거 타고 어디든 갈 수 있지.”


상대 아이가 듣지 못해서 천만다행인 말들이 내 아이의 입에서 나온다. 나는 아무 말하지 않고 아이 옆을 지킨다. 아무 말 말자, 지금 말해봐야 좋은 소리 안 나올 것이다. 이런 결심이 무색하게도 나는 학교 도착 1분 전, 아이에게 입을 열고 말았다. 아마 차가운 목소리였을 것이다.


"네가 왜 친구들과 못 어울리는지 알겠어. 너는 네 말만 하잖아. 다른 친구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어떤 행동을 하는지 지켜보지 않잖아. 일단, 다른 아이들이 뭘 하고 있는지 관찰해봐."
"내가 어떻게 그렇게 해?"
"그냥 보는 거야. 보면서 배우는 거야. 그런데 친구들이 너무 많아서 정신이 없으면 그냥 혼자 있는 것도 괜찮아."


정문을 통과한 뒤 무리의 맨 마지막에 선 아이의 뒷모습이 보인다. 그 무리에서 완전히 이탈하진 않았으니 아이도 엄마 말을 귀담아듣고 친구들 얘기를 들으려고 하는 걸까? 아니면 그냥 풀 죽은 채 걸어가는 걸까? 집에 도착해 답답한 마음 한가득 브런치에 담는다. 이 글을 쓰면서 사실 좀 울었다.


며칠 전 마음 정리를 했다. 사회성은 추상적이고 복잡하니, 감정이나 행동을 조절하는 것에만 신경 쓰자. 우연히 접한 존스홉킨스 소아정신과 지나영 교수의 동영상 '발달 장애가 있는 자녀, 어떻게 양육해야 할까‘(https://www.youtube.com/watch?v=5EXlH6ZCg1w)도 자기 조절력을 강조한다. 궁극적으로 자신의 감정과 행동을 다스릴 수 있는 것에 목표를 둬야 한다. 사회성에 대한 일련의 사건은 결국 내 욕심 때문에 일어나는지도 모른다. 가장 기본적인 것에 집중하자. 바로 자기 조절력.


일단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갑자기 화내지 말아라, 소리치지 말아라, 누군가를 밀치거나 때리거나 공격하지 말아라, 남의 것을 허락없이 만지지 말아라. 내 아이가 해야 할 숙제다. 모든 친구와 잘 어울리길 강요하지 말아라, 혼자 노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아라, 눈치없이 행동하는 아이를 나무라지 말아라, 천천히 친절하고 꾸준하게 가르쳐 주어라. 이건 내가 해야할 숙제다.



가장 먼저 나부터 안정을 찾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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