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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하 Aug 08. 2022

힘센 과거를 불러오기

“과거는 힘이 세다.

힘센 과거는 종종 오늘을 이긴다.”


곧 있을 전시 서문의 시작이다.


과거에 연연하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그땐 그랬지’로 오늘을 위로하는 일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다. 그럼에도 종종 나도 모르는 새 과거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가 있다. 불쑥 오늘에 고개를 내민 과거를 차마 내치지 못함이다.


작년 이야기 되던 전시를 올 초 확정하면서 상반기는 오롯이 전시준비를 했다.

'스페인'타일 작업을 기본으로 스페인을 주제로하는 전시다. 그런 점에서 어찌 보면 이번 전시 준비는 원 없이 과거를 이야기하는 것이 허락된 시간이었던 것 같다. 

스페인에서 돌아와 한국에서 다시 살아가고 있는 시간이 스페인에서 살았던 시간을 넘어서고 있음에도 여전히 컴퓨터 안 알수없는 폴더, 웹드라이브,하드 디스크, 오랜 짐 속에 스페인의 시간들은 잘 정리가 되지 않고 흩어져있었다. 그 사이 사라진 파일들도 많다. 여러 번 어떤 식으로든 정리를 하고 마침표를 찍으려고 몇 번을 맘을 다잡앉아 보았지만 잘 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스페인’을 주제로 이야기하는 전시는 강제적으로 그 시간을 나에게 만들어 주었다.

오랜 폴더들의 사진들과 글들, 짐들을 꺼내어 다시 보며 이야깃거리를 정리하고, 어떤 식으로 스페인을 빚어 내어놓을지 고민하는 사이사이 잠시 멈추어 힘센 과거와의 힘겨루기 대신 편안하게 과거로 돌아가 그 시간 안에 살았던 나를 다시 만나보았다. 


잘 살았네. 괜찮았네. 정말 발랄했네.

생각보다 그 시간 안에 있는 내가 괜찮아 보여서, 후회 없이 잘 산 것 같아서 좋았다.


“네가 그때 정말 즐거웠구나. 거기서 많이 사랑받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스스로 안심되는 마음에 더해 스페인에서 쓴 글을 모으는 일을 같이 도와준 친구가 글들을 읽고 해 준 말에 과거를 드러내는 일에 조금 더 용기를 주었다.


     

“고요 속에서 삶은 

다시 한번 경험하게 되는 순간이란 것이 있더구나.

단, 과거에 머물기 위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것을 만들기 위해서 돌아볼 수 있다면

그때 비로소 우리는 삶을 다시 한번 경험하게 될 거야.

그 경험 속에서 뭔가를 다시 한번 선택할 거야.”


[스페인 야간비행] 중에서, 정혜윤 지음



전시 전에 읽은 정혜윤 작가의 글 역시 과거를 다시 살아보는 일에 대한 이유를 나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이번 전시의 제목을 ‘순간들 그리고 마침표’라고 한 것은 이런 맥락과 통한다. 흔히들 순간이 영원하다는 말을 한다. '순간'과 '영원'이라는 전혀 다른 단어가 공존하는 이 문장이 가능한 이유는 아마도 '시간' 속에 있는 듯하다. 순간들은 그 순간 바로 마침표가 찍히는 시간이지만 또 다른 시간 안에서 문득문득 다시 살아난다. 같아 보이지만 오늘에 드러나는 과거의 순간은 다른 의미를 가진다. 그렇게 순간과 마침표는 끊임없이 함께 공존한다. 그렇게 영원으로 나아간다.


“넌 끊임없이 뭔가 스스로 하는구나. 대단해.”


두 번째 전시회 소식을 전하며 친구들에게 가장 많이 듣고 있는 말이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분명 좋은 말이지만 때론 꽤나 고단한 일이기도 하다. 언제까지 내 안의 동력으로 무언가를 계속해나갈 수 있을까. 전시를 준비하는 시간은 그런 의문이 생기기도 한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오늘로 데려와 어쩌면 더 힘이 세진 과거를 펼쳐놓는 일이 쑥스럽지만 설레기도 한다. 그러니 또 계속 뭔가를 하려고 하는 거겠지.


그렇게 문득문득 맥락없던 힘센 과거를 오늘로 데리고 왔다.

이 또한 마침표가 찍히는 한 순간일 테지만.

그럼에도 영영 사라지지는 않을 마침표일 테니까.


*전시소식과 독립출판소식

https://blog.naver.com/laparada/222837683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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