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대차게 수해를 입었다.
뉴스에 나와도 항상 남의 일이던 것이 내 일이 되고 나니 그제야 그것이 현실이 되었다. 간접 경험이라는 것은 얼마나 불완전한가. 수해가 있던 주가 전시회 설치가 있는 주간이라 더 정신이 없었다. 다행히 전시품들을 책상 위에 올려두어서 그나마 절망적 상황은 면했으나 작업실에 물이 발목 넘어까지 들어와 많은 가구들이 못쓰게 되었고, 도자기 작업실의 생명과 같은 가마도 물에 잠겨 생사여부를 알 수 없었다. 그뿐인가. 친구에게서 인수받아와 겨우 두 달, 한창 재미 붙이며 초보운전 연습 중이던 차도 물에 잠겨 폐차가 되었다. 불과 30분 남짓의 순간에 많은 것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한 시간이었다.
수해 직후 바로 전시가 시작되어 이 상황을 찬찬히 바라보며 복구를 할 시간은 없었다. 전시장에 가기 전 작업실에 들러 급한 외형적 복구를 먼저 해나갔다. 그리고 3주간의 전시 일정이 끝날 즈음엔 작업실의 모습도 수해 이전으로 어느 정도 돌아와 있었다.
외형이 말끔해지는 것이 복구의 끝이라고, 외형이 돌아오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이상하게 설명할 수 없는 손상된 감정이 순간순간 맘을 비집고 나오는 것을 주변이 좀 조용해지고, 외형으로 드러난 문제들이 정리된 뒤에야 눈치챌 수 있었다.
다시 일상은 시작되고 간간히 정해져 있던 수업을 하고, 여전히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가마를 손보는 동안 풀리지 않은 숙제가 된, 무엇인지 모르는 감정을 안고 지나는 시간은 좀 무거웠다. 하지만 뭐 어떻게 그것을 들여다봐야 할까 실마리는 잡히지 않았다.
가마 최종 수리를 마치고 시험 운행을 하느라 하룻밤을 꼬박 새운 다음날 올해 시작한 친구와의 책모임이 있었다. 책모임 멤버의 양평 집에서 바비큐 책모임을 하기로 한 날이기도 했다. 예정에 없던 밤샘 다음 날이었지만 오히려 그래서 분위기를 바꾸어 서울 외곽으로 나가는 길이 그렇게 피곤하지만은 않았다. 정성스럽게 준비해준 맛있는 음식을 잘 단장된 집 마당에서 나누며 이야기를 나눈 그날의 책은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였다.
“마음은 불확실성에 직면할 용기를 낼 때 성장합니다. 우리의 무지를 편견으로 가리지 않을 때, 우리 마음대로 앞일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참아낼 수 있을 때 우리는 가장 현명해집니다.”
어쩌면 비집고 나온 마음의 정체는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일 수도 있겠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는 것을 명확히 경험하며 그 경험에 더해 그동안 어딘가 숨어 있던 불안들이 여기저기서 얼굴을 내비친 것일 수도. 마음 밖으로 드러내지 않던 이야기를 책을 빗대어 드러내며 작은 숨통을 만든 날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 여름처럼 햇살이 강하던 어느 가을 가운데 열린 동네 북마켓에 참여했다. 행사 중에 읽을 책으로 동네 책방 부스에서 정세랑의 '아라의 소설'을 데려왔다. 무덤덤하게 부스에 앉아 책을 읽다가 어느 문장에 마음이 멈추었다.
"... 과찬하자. 아주 아주 조금만 과찬해버리자.. 과찬해서 이 매력이 애매한 원두에게 기회를 주자. 더 나아질 기회를"...
많은 사람들이 열광한 드라마 '나의 해방 일지'의 ‘추앙’이라는 단어에는 뭔가 공감이 안 되었는데 ‘과찬하기’ 정도면 좋겠다 싶었다. 아주 아주 조금 더 과찬하기. 그것이 무언가가 더 나아질 기회가 된다는 것에 공감한다.
여전히 이름을 붙이기 힘든, 수해와 그것의 복구 과정 안에 나도 모르게 불쑥 튀어나와 회복되지 않고 남은 어느 마음을 치유하는 하나의 처방으로 ‘과찬하기’ 하나를 써넣었다.
그리고 그날 그 처방이 조금은 효과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인스타로 어느 책방에 입고된 책 소개를 보고 궁금했는데 딱 실물로 만났다며 반가워한 분.
늦은 퇴사를 꿈꾸며 그 시간이 어떨까 책을 통해 만나고 싶다던 분.
언젠가의 남미를 먼저 만나고 싶다는 분.
부스를 꼼꼼히 다 돌아보고 다시 와서 책을 데려가시는 분.
하루 동안 나의 부스를 방문해 아주 작은 과찬의 말들을 남겨준 분들 덕에 어떤 마음의 기회와 회복의 힘이 조금 자랐다.
복구에서 회복으로 이어지는 길에는 애써 더 앞으로 끌어내는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걸 느끼는 날들이다. 외적 복구와 함께 내적 복구와 회복의 실마리를 찾고 있는 중이다.
무기력까지는 아니지만 길 위에 조금 멍하니 앉은 듯 한 시간을 서두르지 않고 조금씩 회복해간다. 언제든 어디로든 엉덩이 툴툴 털고 다시 한걸음 내딛는 것이 '겨우' '억지로' '어쩔 수 없이'가 아닌 가볍고 기꺼운 걸음이 되도록 너무 서둘러 일어나지 않고 찬찬히 힘을 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