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연초 본 드라마와 책에서 유난히 눈에 들어온 단어가 있다.
‘충분하다’
행복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사전을 찾아보니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껴 흐뭇함. 또는 그러한 상태’라고 나와있다.
나는 그게 너무 길어서 이렇게 줄여보았다.
행복. 모자람이 없는 상태.
정말, 충분하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마지막 회 중
일생이란 결국 하루하루가 모여서 만들어지는 것인데, 왜 살고 나서 돌아보면 그 많은 날은
가뭇하고 속절없는가. 왜 우리는 그 나날들을 충분히 살아내지 못하는가
-[인생의 역사] 신형철
스페인어에 ‘충분히’라고 해석되는 두 개의 단어가 있다.
‘suficiente 수피시엔떼’와 ‘bastante 바스딴떼
둘 다 ‘충분히’라는 말로 해석이 되지만 약간의 차이가 있다. suficiente는 그야말로 더도 덜도 없는 충족감을 나타낸다. 충족의 양이란 그 단어에 없다. ‘얼마나 만족했는데?’라는 질문이 숨어 있지 않다. 그 자체로 족한 상태이다.
그에 비해 bastante는 충분함이 ‘더’에 이른 상태이다. 기대한 것보다 ‘더’ 일 수 있고, 기대 자체를 플러스에 두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아주 많이, 넘치는 상태는 아니다. 그래서 때때로 약간이 부정적 의미를 담기도 한다. 그래서 굳이 이걸 구별해서 한국어로 해석하자면 ‘충분히’와 ‘충분히 더’라고 할 수 있겠다.
그냥 정의해 둔 문장으로만 보면 지극히 쉬울 듯한 ‘행복’에 이르는 일이 힘든 이유는 바로 이 두 단어사이의 묘한 차이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말로는 suficiente를 이야기하면서 마음으로는 무언가 bastante하기를 바라는 것. 그래서 모자람이 없는 상태란 결국 그 한계를 찾지 못하고 항상 모자라는 상태로 남아있다.
새해가 시작되며 유일하게 세운 계획이라면 ‘나날들’에 충분해지는 것이다. 1년이라는 시간을 두고 충분함을 가늠하는 일은 힘들다는 것을 알기에 하루하루의 ‘충분함’을 모아보기로 한 것이다. 물론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마음이 조금만 과거로, 미래로 나아가도 충분함의 평온은 사라지니 말이다.
그러니 이렇게 바랄 뿐이다.
올해는 Bastante sufuciente 하기를, 그러니까 충분히 더 충분하기를, 충분한 나날들을 더 모을 수 있기를.
결국 이렇게 또 욕심을 충분에 더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