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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하 Jan 02. 2023

킨츠기金継ぎ– 수선과 치유에 대해

평소 이벤트 당첨 같은 것에는 별로 운이 없는 편인데 연말에 별 기대 없이 신청한 킨츠기 수업에 당첨이 되었다. 킨츠기는 올해 초부터 관심이 있기는 했지만 본격적으로 배우기에는 좀 거리가 있던 작업이라 선뜻 시작을 못하고 있었는데 첫 만남으로는 아주 좋은 기회였다. 이래저래 일이 많았던 2022년을 잘 수선하는 맘을 배우라는 연말 선물인가도 싶었다.


킨츠기 작업은 이름 그대로 킨(金:금)+ 츠기(継ぎ: 이어 붙이다, 수선하다), ‘금으로 이어 붙여 수선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깨진 그릇이나 기물을 옻과 금으로 잇는 작업으로 ‘수선’이 기본인 작업이지만 그 자체가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고로 하나의 예술 작업이기도 하다. 


원데이 클래스로 진행된 수업은 킨츠기의 기본인 천연 옻과 재료를 사용하는 ‘혼 킨츠기’가 아니라 ‘칸이 킨츠기’ 작업이었다. 합성 옻과 합성접착제를 사용하는 이름처럼 간이 수선인 셈인데 혼 킨츠기보다는 재료도 다루기가 쉽고, 과정도 축소되어 가볍게 킨츠기를 만나보려는 사람들에게는 유용하다. 


찻잔, 도자기인형, 접시, 사발 등 원데이에 참여한 사람들이 가져온 상처 난 그릇 혹은 기물들도 제각각, 깨진 조각의 형태도 제각각이었다. 다른 형태와 물성에 따라 작업은 각각 조금씩 다른 수선방식과 재료, 시간이 들어갔다. 


두 시간 남짓 작업동안 깨어진 파편이 복잡할수록 제자리를 찾아 맞추는 것이 힘들고, 때로는 어떤 조각을 포기해야 하기도 하고, 여러 조각의 맞물림이 틀어지지 않도록 한참을 마음과 시간으로 돌보아야 하기도 했다.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 다 그렇구나’ 싶었다.

상처의 결이 명확해 그 원인을 찾아 쉬이 치유되는 상처도 있지만, 너무 망가져 한참을 이어 붙이고, 그럼에도 몇 조각쯤은 포기해야 하는 마음도 있는 것이다. 여기에 킨츠기 작업은 한 템포를 더 나아간다. 그저 붙여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상처 난 결을 옻과 금을 섞어 그린다. 숨기는 것이 아니라 더 선명히 드러내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갈라진 금이 금으로 된 현관이자 물길로 바뀌어 그릇이 깨졌다는 사실을
숨기기는 커녕 강조하면서 그것을 전과 다른 방식으로 귀하게 만든다.
이것은 사물이 다시 과거의 모습이 되는 일은 있을 수 없겠지만
전과는 다른 아름다움과 가치를 지닌 다른 것이 될 수 있다고 받아들이는 방식이다. 

-리베카 솔닛 <세상에 없는 나의 기억들> 중 킨츠기에 대한 글


2022년을 마무리하며 만난 킨츠기는 그렇게 '수선'과 ‘치유’에 대한 생각을 잠시 하는 시간이었다. 한 해 동안 알게 모르게 금이 가고 이가 나간 부분은 없나. 그 사이 이미 잃어버린 조각은 없나. 나 몰라라 그런 것들을 그냥 치워버리고 새로운 나로 시작하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다. 결국 완전히 다른 내가 아닌 그렇게 이리저리 깨지고 이 나간, 하지만 여전히 그럼에도 그것으로 살아있는 나를 잘 일으키는 것만이 가능하다. 기왕이면 상처를 귀히 다듬어 그것이 나의 새로운 이야기가 되도록 하는 일다.  


그렇게 같지만 같지 않은 나를 또다시 한결같은 시간의 흐름을 끊어 굳이 ‘끝과 시작’의 경계에 세워보는 날들. 한해의 끝과 시작의 경계에서 킨츠기를 통해 다시 한번 쓰임을 얻어 태어난 그릇처럼 나 역시 잘 다독여진 모습으로 주어진 ‘나날들’을 또 살아가는 것이다.


2022년 마지막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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