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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하 Dec 19. 2022

세컨드 윈드: 두 번째 바람을 만나는 길

'세컨드 윈드’


낯익다.

김연수 작가의 새 소설집을 읽다가 익숙한 단어에 잠시 멈췄다. 

어디서 들어봤지?

책을 조금 더 읽어 나가며 이 용어에 대한 설명을 보니 그것이 얼마 전 지리산행을 준비할 때 동행이 참고하라며 보내준 영상에 등장한 단어임을 알게 되었다

영상을 보면서는 스포츠 용어라고 생각해서인지 단어 자체의 의미를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 단어가 한국어로 ‘두 번째 바람’이라는 인식조차 하지 못했다. 그런데 김연수 작가의 소설 속에 등장한 ‘세컨드 윈드’는 정확히 ‘두 번째 바람’이라는 의미와 함께 읽혔다.


세컨드 윈드 : 운동하는 중에 고통이 줄어들고 운동을 계속하고 싶은 의욕이 생기는 상태


산을 오르다 보면 ‘세컨드 윈드’의 순간을 어김없이 통과한다. 그것이 그 순간이라고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벌써 오래전이지만 네팔 안나푸르나 ABC 캠프를 오를 때 첫날은 죽을 맛이었다, 무거운 걸음으로 겨우겨우 이어지는 순간들마다 ‘이래서 과연 7일 동안 이 트레킹을 끝낼 수 있을까.’라는 절망적인 생각만 머릿속에 떠올랐다. 묵직한 배낭의 무게와 아직 풀리지 않은 두 다리의 묵직함에 몸은 자꾸만 바닥으로 꺼졌다. 하지만 어느새 로지에 다다를 때쯤엔 언제 그 생각이 없어졌는지도 모른 채 그저 묵묵히 걷고 있는 나를 만났다. 그리고 이어지는 둘째 날은 구간 중 가장 어렵다는 오르막이 있는 날이었는데도 첫날보다 훨씬 쉬이 올랐고 그 뒤로는 고통의 기억보다는 풍경과 길 위에서 만난 다른 이야기들에 대한 기억이 더 많이 남았다. 분명 그 어느 순간 안에 나도 모르는 새 세컨드 윈드를 관통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모든 시도에서 이 지점을 통과하는 것은 아니었다. 뭔가 명확한 목표지점이 있고, 그것이 나에게 동기부여가 될 때 조금 더 견디는 힘이 생기고 지속하는 힘이 생겨 그 순간을 넘어섰던 것 같다. 그리고 의외로 그렇지 못했던 많은 시간들에는 도달하기도 전에 적당히 타협하여 돌아서거나 타협 지점까지만 반복하거나 경우도 많았다. 수영도 그중 하나였다. 아무리 해도 25미터 레일을 한 번에 가는 일이 쉽지는 않았는데 항상 중간에 숨이 막혀오기 시작하면 그걸 넘기지 못했다. “에이 뭐 이걸 꼭 넘길 필요가 있나?”라고 생각하는 순간 이내 숨은 더 가빠졌고 그냥 땅에 발을 디디는 경우가 수두룩했다. 그러다 보니 나의 수영실력은 여전히 고만고만하다, 


수영뿐일까. 나아가지 않고 정체되어 있는, 하는 것도 아니고, 안 하는 것도 아닌 무수한 출발 지점을 떠난 시간들이 나에게 꽤나 많다는 것을 ‘세컨드 윈드’라는 단어를 만나며 깨달았다. 전념하기보다는 이것저것 힐끔거리기가 익숙한 나는 시간을 들여 마음을 들여 나아가고 있는 길의 끝이 쉬이 보이지 않아 이렇게 나아가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 들 때면 쉽게 그 길에 앉아 쉬곤 했다. 적당한 속도와 꾸준한 걸음으로 나아가야 조금 더 빨리 통과하게 된다는 ‘두 번째 바람’은 그런 리듬 안에서는 만날 수 없는 바람이었던 것이다. 한참을 두 번째 바람을 만나지 못한 채 주저주저하며 여기저기 세워둔 어설프게 멈추어 있는 나의 걸음들이 보였다. 


어느 걸음을 다시 일으켜 이제 내 속도와 꾸준함으로 나아가 볼까. 그렇게 두 번째 바람을 만나고, 그 힘으로 세 번째, 네 번째로 나아갈 걸음을 가늠해 본다. 모든 걸음을 일렬로 세워 다시 출발할 수 없겠지만 그렇게 하나씩 다시 앞으로 내어 완성으로 나아가는 걸음이 하나 둘 생겨나기를. 

두 번째 바람으로의 첫 여행은 무엇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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