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반대편 흙 이야기 1. 칠레, 도자기 마을 포마이레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에서 버스로 한 시간 남짓, 멜리피야(Melipilla)라는 작은 마을에 도착하여 다시 미니 버스를 타고 십 여분을 달리면 칠레의 그레다(Greda)라는 도자기로 유명한 마을, 포마이레에 도착한다. ‘그레다’는 안데스 산맥과 바다로 이어지는 산맥 사이에 있는 흙의 이름이다. 붉고 점성이 좋은 흙으로 오랫동안 이 곳 사람들의 식기구가 되어 주었고, 또한 생활 밑천이 되어주었다..
전통적인 그레다 도자기는 유약 처리를 하지 않은 자연 흙색 도자기로 점토가 완전히 마르기 전 물로 한번, 아가타라는 돌로 한번, 총 두 번의 광 작업을 거쳐서 구워 내는 방식이다. 그레다 흙의 붉은색은 불과 함께 검거나 짙은 고동 빛을 띠고, 이렇게 만들어진 그레다 그릇은 온기와 냉기를 보존하는 데 탁월하다고 한다. 얼핏 보면 우리나라 옹기와 비슷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레다를 지켜온 오랜 장인들
마을을 돌다 보면 작은 공방들에서 오랫동안 그레다 작업을 해온 도예가들을 만날 수 있다. 빼곡한 그레다 도자기들이 있는 가게를 지나 안쪽에 위치한 작은 작업실에 열심히 광 작업을 하고 계시는 마누엘 할아버지는 어릴 때 아버지를 도와 작업을 하다가 16살 때부터 혼자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무려 60년의 세월이다. 자녀가 3명이라고 하시길래 그중 누군가 이 일을 이어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하신다.
“내 아이들은 다들 똑똑해. 한 명은 변호사고, 또 산업 기술자고, 간호사야. 나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있으니 그렇게 살아야지. 그래도 이 그레다로 자식들을 다 훌륭히 키웠으니 더 바랄 것은 없어.”
그의 대답은 왠지 전통 공예의 가치가 제대로 인정되지 않고 그들 스스로도 그것에 자부심을 느끼지 못하는 현재의 모습을 모여주는 듯했다. 십여 년 후에는 마누엘 할아버지 공방은 문을 닫겠구나라는 생각에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포마이레의 미래를 꿈꾸는 젊은 도예가들
로드리고 벨리스는 투각기법을 주로 사용하여 등을 만들거나 성을 디자인한다. 어릴 때는 매일 학교에서 돌아와 아버지를 도와 광 작업을 하는 일이 지겹고, 아버지처럼 평생을 사는 것이 답답해 보였다. 하지만 우연히 모로코 도자기 영상을 보고 투각기법에 흥미를 느꼈고 18세부터 독립적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처음 3년간은 이곳에서는 낯설었던 작업이어서 외면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도예가로서 포마이레에 사는 것은 나에게는 아주 특별하다. 이곳의 모든 예술가들이 나의 스승이고 벗이다. 요즘은 교육에 좀 더 관심이 있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 100명 중 한두 명 만이라도 그레다를 좋아하게 되고 이를 이어간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기쁠 것 같다.”
도예가 크리스티안 로살은 가마 작업을 하는 날 만났다. 보통 전통 그레다는 800도 미만의 온도로 굽지만 크리스티안은 기존 그레다에 유약 작업을 하는 시도를 몇 년 전부터 해오고 있어 1000도까지 가능한 가마를 실험적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처음에 아버지가 가마 만드는 것을 보고는 절대로 성공 못할 거라고 한심하게 보셨는데 첫 가마 작업에 성공하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지질학을 공부한 그는 다른 직장에서 일도 해봤지만 어떤 것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결국 그레다와 함께 하기로 맘먹었다. 4대째 그레다를 이어가는 집안인 그의 아버지는 물레 전문가이다. 그의 첫 독립 작업이었다는 마스크 만들기 시범을 보여주겠다며 시작한 작업은 점토 반죽부터 마지막까지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이렇게 초기 그가 만든 마스크는 종류만 100가지가 넘었다고 한다.
‘20년 후쯤 포마이레는 어떤 모습일까?’라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예전에 읽은 책에서 한 의사가 똑같은 질문에 대답한 것이 생각난다. 1960년 정도의 책이었는데 그의 대답은 ‘예술과 예술가들이 넘쳐나는 곳’이었다. 50년이 지난 지금 나 역시 그렇게 대답하고 싶다. 그것은 현재이기도 하고 계속되는 꿈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도예는 흙이 꾸는 꿈에 형상을 입혀주는 인류의 유일한 예술이다
마을 어귀에서 만난 낭만적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오랫동안 그레다를 지켜온 장인들과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열정 가득 찬 젊은 도예가들이 함께 만들어 갈 포마이레의 미래를 응원한다. 그리고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이어가는 도자기 마을로 오래 남길 바란다.
Chanchito con tres patas (세발 돼지)
칠레 도자기 마을 포마이레에는 다리가 셋인 특별한 돼지가 있다. 각 발에 Amor(사랑), Salud(건강) Dinero(돈)을 기원하는 복이 담은 이 돼지는 행운을 선물하는 흙으로 만들어진 돼지다. 오래전 포마이레에 태어난 세발 돼지가 가져다준 행운에 대한 전설로부터 시작된 도자기는 ‘더’의 욕심이 아닌 ‘덜’의 풍요를 담아 과연 삶의 세 가지 행복의 조건은 무엇인지를 물어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