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과 불이 함께하는 소풍

지구 반대편 흙 이야기 #4 칠레, 칠레 예술대학 도예 워크숍

by 로하

‘흙과 불의 예술’


흔히들 도예를 그렇게 이야기한다. 나 역시 스페인에서 도예를 배우기 전까지는 땅에서 흙을 직접 파내어 작업할수 있는 흙으로 정리하고, 그 흙을 빚어 산속 가마에 장작으로 몇 날 며칠을 불을 때어야 탄생하는 것이 도자기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도자기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는 사람이었다.


도예를 배워보니 현대 사회에서 도예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여전히 본연의 흙을 만들고, 불을 지피며 탄생되는 도자기들이 있지만, 훨씬 많은 옵션들이 생겨난 것이다. 흙도 이미 준비된 것을 구입할 수 있고, 가마도 가스뿐 아니라 전기로 자동시스템이 되어 있으니 굳이 밤새 불을 지켜보지 않아도 되었다. 화려한 색을 위한 유약들도 색별로 이미 만들어져 판매가 되고 있어서 그저 도자기라는 물건 하나를 만들어 내는 것이 목적이라면 굳이 ‘흙과 불’이라는 낭만적 키워드가 없어도 되는 것이었다.


1000도에서 1250도 이상의 온도를 견디고 나온 흙은 더 이상 흙이 아니다. 불을 통해 전혀 다른 성질의 무엇으로 탄생하는 과정이 참 아름다운 일이지만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면 자연으로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는 것으로 변하니 '심하게 표현해서' 산업폐기물이 되는 셈이다. 이런 생각이 들 때면 나는 점점 그 생산의 과정이 즐겁지 않았다. 느리지만 도예의 낭만성을 회복할 수는 없을까. 사람들이 도예를 통해 경험하는 것이 ‘흙과 불’의 과정과 좀 더 가까운 무엇이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 칠레에서 작은 워크숍 하나를 만났다..

칠레 예술대학 도예워크숍

소풍친구로서 흙과 불


칠레에 머무를 때 SNS를 통해 한 광고를 보았다. 칠레대학교 예술학부 도예과에서 진행하는 워크숍이었는데 두 번의 토요일에 진행되는 워크숍이었다. 한 번은 흙으로 도자기를 만들고, 나머지 한 번은 직접 땅에 불을 지펴 도자기를 굽는다고 했다.

첫 토요일이 이미 지나간 시점이라 메일로 두 번째 시간에만 참여가 가능한지 문의를 해 허락을 받았다. 토요일 점심 나절쯤, 워크숍이 있는 칠레대학교 예술학부 캠퍼스의 한 공터로 가니 이미 조금 일찍 모인 사람들은 각각 무언가를 분주히 하고 있는 중이었다. 공터 한쪽에 있는 학교 텃밭에서 수확한 채소를 손질하는 사람, 점심을 위해 불을 피우는 사람, 워크숍을 진행하는 도예과 학생들은 공터 한 켠에 이미 지름 1m 정도의 구덩이를 준비하고, 흙 작품을 구울 채비를 하고 있었다.


불을 지피기 전 큰 양동이에 여러 채소를 넣고 끓여낸 야채 수프를 같이 나누어 먹었다. 이미 한주 전 워크숍으로 서로 익숙한 얼굴들이라 처음 온 나만 조금 어색했지만 이내 음식을 나누며 친해졌다. 학교 선생님, 음악가, 동네 주민, 대학생 등 신분도 다양한 사람들은 ‘도자기 만들기’를 위해 모였다기보다는 토요일 낮의 한 시간을 즐기기 위해 소풍 나온 사람들 같았다. 그 편안함이 좋았다.

칠레예술대학 도예 워크숍

점심 후 간단한 구덩이에 대한 설명이 끝나고 한주 동안 잘 마른 흙 작품들을 차곡차곡 구덩이에 놓았다. 중간에 도예과 교수님처럼 보이는 분이 와서 이런저런 조언도 해주며 마치 놀 듯이, 공부하듯이 진행되는 시간이었다. 밑불을 지피고 거의 다섯 시간의 불놀이 시간 동안 사람들은 불가에 앉아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잠시 마실을 다녀오기도 했다. 모든 것이 무리 없이 자연스러웠다. 무언가 목표를 가진 도예 워크숍이 아닌 흙과 불이 함께하는 소풍과 같았다. 그리고 나는 그런 시간이면 도예의 낭만성이 공유되는 시간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한국에서 진행한 흙불 어드벤처


한국에 돌아 와 작은 작업실을 만들고 흙으로 삶을 다시 만들어 가면서 나는 꼭 그날의 워크숍 같은 시간을 가져보고 싶었다. 하지만 쉽지는 않았다. 불을 피울 수 있는 공터가 필요했고 충분한 장작이며 여유로운 시간들 모든 것이 서울이라는 공간에서는 힘든 것이었다. 그런 중에 올해 강원도와 강화도에서 두 번의 기회가 있었다. 완벽하게 그 날 같진 않았지만 1박 2일 워크숍으로 미리 만들어 놓은 흙작품을 직접 구덩이를 만들어 구워보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불가에 앉아 흙을 구우며 마주 앉는 시간은 충분히 평화로웠다. 그렇게 불앞의 시간을 지나고 다음날 선물처럼 흙속에서 발견되는 구워진 흙을 만나는 즐거움 또한 컸다.


여전히 서울의 작은 작업실에서 나는 전기 가마의 스위치를 올리고 버튼을 누른다. 하지만 기회가 된다면 흙과 불이 함께 노니는 축제로의 초대를 조금 더 자주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꿈을 꾼다. 지구 반대편 그 소풍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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