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담은 현재의 흙

지구 반대편 흙 이야기 #5 아르헨티나, 도예가 파울라

by 로하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민속예술 박물관을 찾은 날, 볕 좋은 박물관 뜰에서는 도자기 수업이 한창이었다. 이 수업은 특별히 인디오 도자기를 배우는 수업이었다. 한 달 정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머물 예정이었던 나는 6개월 과정인 이 수업에 한 달간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박물관과 책, 인터넷으로만 보았던 인디오 도자기를 직접 만들어 보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전통 도자기의 모양과 역사, 지역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참여자들은 본인이 만들고 싶은 것을 선택하여 만들어 가는 수업이었다.

도예가 파울라

이 수업을 진행한 도예가 파울라는 본래 영상을 전공했다. 91년 남아프리카를 여행하면서 도자기를 처음 접했고 이후 개인적으로 도자기 선생님을 찾아 배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인디오 도자기에 관심을 가진 것은 2008년 이후부터라고 했다.

특별히 인디오 도자기에 관심을 가진 이유가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 그녀는 답했다.


“아마도 내 땅에 맞는 것이 뭘까를 고민했기 때문인 거 같아요. 단지 도자기를 취미나 기술로 하는 것이 아닌 내가 살고 있는 터전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는 매개가 된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도자기는 땅과 깊은 관계가 있으니까요. 남미대륙은 침략당한 땅이에요. 땅을 빼앗기고 그곳의 광물과 자원들을 빼앗겼죠. 이곳에 자리 잡던 원주민들은 몰살당하고 자신의 터를 잃었죠.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이곳에 사는 우리가 이 땅의 사람이 아니라 어디 다른 곳에서 온 사람들일까요? 내 땅의 오랜 기억과 만나는 매개가 바로 인디오 도자기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파울라는 박물관에서의 수업뿐 아니라 아르헨티나 북쪽 산티아고 에스테라 지역에 몇 년 전부터 방문하여 그곳의 작은 학교에서 아이들과 부모님이 함께하는 도자기 수업을 한다. 그녀의 수업은 단지 인디오 도자기를 만드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먼저 학생들과 그 땅의 식물들과 동물들을 관찰하고, 이를 그림으로 그린다고 한다.

“이전 도자기들의 모티브들은 모두 그들이 살고 있는 땅의 자연에서 얻었어요. 그 과정을 이해하고 느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도자기를 만들기 전 먼저 지역이 가지고 있는 자연을 보는 연습을 하는 거죠”

이 활동은 여러 권의 자체 자연도감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한 번은 수업을 하는데 한 번도 흙을 만져본 적이 없는 한 여성이 참여했어요. 그녀는 어두워질 때까지 작업을 멈추지 않았죠. 나중에는 그녀를 위해 초를 밝혀주었어요. 초의 어두운 빛에서 작업하는 그녀를 보며 이전 원주민들의 도자기 작업은 저렇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했죠. 어둠 속에서 오로지 자신의 손으로 흙을 빚고, 광택 작업을 하고, 그림을 그려가는 그 오랜 작업의 시간을 그녀의 몰입의 시간에서 다시 보는 경험이었어요.”


도예는 흙을 재료로 하기에 인간이 살고 있는 땅, 자연과 연결되어 있다. 내가 살고 있는 땅의 흙이 도자기의 재료가 되며, 그곳의 바람과 햇빛이 도자기를 건조하며 그 땅의 나무로 불을 붙여 도자기를 굽는다.


개인적으로 남미 땅에서 인디오 도자기와의 만남은 도자기의 그런 본질적 정의를 다시 한번 고민해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과연 나는 어느 땅에 있으며, 내가 있는 땅에서 나의 손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도자기는 어떤 것일까 하는 질문을 깊이 담았다. 파울라가 이야기하는 남미 인디오 도자기는 단지 과거를 기억하는 유물이 아닌 현재를 보는 귀한 매개였다.


과거가 현재로 이어지는 도자기의 의미를 파울라가 항상 자신의 수업을 시작할 때면 읽어준다던 우루과이의 유명한 작가 에두아르도 갈레아노(Eduardo Galeano)의 글 안에서 다시 만났다.


오랜 인디오 도자기 전통 이야기.

어느 바닷가 마을, 파도와 함께 오랜 시간을 살아온 한 도공이 있다.
눈이 어두워지고 손이 떨리기 시작하면서 그는 이제 안녕을 고할 시간이 다가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 새로운 시작을 이어주는 의식이 행해졌다. 늙은 도공은 젊은 도공에게 자신의 작품 중 가장 귀한 것을 선물로 준다. 그것은 아메리카 북동쪽 인디오들의 예술을 전승하는 의식이었다. 바로 오랜 예술가가 그의 최고 작품을 새로운 예술가에게 전함으로 그의 전통을 이어가게 하는 것이다.

젊은 도공은 그 완벽한 스승의 작품을 잘 보관하는 것이 아니라 땅에 내리쳐 수천 개의 조각으로 부순 뒤 이 부서진 조각들을 모아 자신의 흙에 넣어 그의 작품을 새로이 시작한다.

- Las palabras andantes (느린 문장들)/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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