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반대편 흙 이야기#3. 칠레 , 보물 손 도예가 도밍가 네쿨만
스페인에서 도예를 같이 공부한 친구가 남미에 도자기를 보러 간다고 했더니 칠레에 가면 꼭 만나보라며 보여준 영상 속의 주인공은 2011년 칠레가 “살아있는 보물 손”이라 명명한 인디오 마푸체의 도예가 도밍가 네쿨만 (Dominga Neculmán) 할머니(81세)였다.
유일한 단서인 영상 하나로 칠레에서 할머니를 만나러 가는 길은 그야말로 보물찾기 같았다.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의 전통공예 샾에서 칠레의 수공예인을 소개하는 책에 나온 할머니의 집이 있다는 칠레의 남쪽 도시 테무코(Temuco) 근처 파드레 데 라스 까사스(Padre de las casas)라는 작은 마을을 그냥 찾아가 보는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쉽게 연락처를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테무코 시청 문화재과에 들렀는데 전혀 가지고 있는 정보가 없었다. 결국 할머니가 산다는 읍 소재지의 사무소에 가서 건너 건너 개인적으로 아는 분을 만나 겨우 전화번호를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들려온 소식은 칠레 산티아고에서 열리는 한 전통공예 행사에 참여하러 이미 마을을 떠난 후라는 것이었다. 할머니 만나러 일부러 산티아고에서 7시간 넘게 버스를 타고 테무코를 왔는데 다시 올라가야 할 판이었다.
산티아고의 행사장 ‘도밍가 네쿨만’이라 쓰인 할머니의 부스에는 할머니의 딸 미르타가 대신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할머니는 근처 잔디밭에서 낮잠 중이시라 했다. 휴식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행사장 주변을 돌며 한 시간 정도 기다린 끝에 드디어 할머니를 뵐 수 있었다. 도밍가 할머니는 한국에서 할머니를 뵈러 왔다는 말에 마치 손녀 대하듯 꼭 안아 주셨다. 아마 한국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셨을 텐데 말이다.
도밍가 할머니는 그녀의 할머니, 그리고 어머니에 이어 그 전통을 지켜가고 있었다. 가난한 마푸체 인디오의 집 안에서 외동딸로 태어난 할머니의 어머니는 딸이 자신의 일을 하는 것을 바라지 않으셨단다.
"어머니는 항상 흙을 만지는 일은 고된 일이니 천 짜는 일을 대신하라고 말씀하셨어. 하지만 난 항상 흙을 만지는 걸 더 좋아했지. 그래서 천 짜는 일을 하면서도 어머니가 하는 도자기 작업을 도와드리고 배웠어. 내가 34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본격적으로 어머니의 도자기 일을 이어가기 시작했어."
처음 도자기를 시작했을 때는 시장에 가게를 가지고 있는 한 아주머니에게 도자기 대신 팔아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것으로는 생활이 안되어서 사과를 팔고, 다른 집 빨래를 하는 등 여러 다른 일을 해야 했어. 그러다 우연히 할머니의 작품을 본 칠레 가톨릭 대학의 한 교수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수공예 프로그램에 초대한 것이 계기가 되어 조금씩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
그리고 2011년 칠레의 인간문화재로 “살아있는 보물 손”이라 명명되며 할머니는 많이 바빠지셨다. 할머니의 작업을 담은 책도 발간되고, 다양한 영상도 만들어지고 많은 사람들이 할머니를 만나러 온다고 한다. 하지만 주변이 변했어도 할머니의 삶이 변한 것은 아니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오셨듯 할머니는 매일매일 자신의 손으로 흙을 빚는 일을 하고 계실 뿐이었다.
마을에서도 한참 떨어진 곳에 홀로 사시는 할머니의 벗은 집에서 키우는 개와 고양이, 닭들, 염소들 그리고 나무들이다. 할머니는 이를 나열하며 앞에 “나의”를 꼭 붙이셨다.
"나는 혼자 살아도 외롭지 않아. 내 개, 내 고양이, 내 염소들하고 매일 대화해. 그들이 내 친구들이 내 작업의 좋은 영감이 되지 하지만 흙을 구하러 갈 때마다 나에게 항상 내가 일할 수 있는 좋은 재료를 주는 내 땅에 감사해."
할머니의 손녀 중 도자기에 소질이 있는 손녀가 있다고 했다. 할머니를 도와 같이 일을 하기도 하고, 제법 흥미를 보이지만 대학에 들어갈 나이가 되어 다른 공부를 하려고 한다며 속상해하셨다.
“나는 항상 손녀한테 말해. 뭐를 더 공부하려고 하냐고. 이미 너는 이렇게 예쁜 항아리를 만들 줄 아는데 뭐가 더 필요하냐고 말하지. 나는 평생을 내 손으로 이 일을 해왔고 그것이 자랑스러워.”
자신의 손을 보시며 웃으시는 할머니의 모습에 수줍은 자부심 같은 것이 느껴졌다. 할머니의 손은 그 손이 흙과 함께 일한 오랜 세월만큼이나 단단했다. 어느 한 과정 할머니의 손이 거치지 않은 순간이 없이 탄생한 도자기는 할머니 손의 역사와도 같았다.
할머니의 작은 도자기 하나를 샀다.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한국이 어디에 있어?
내 도자기가 나보다 더 멀리 여행을 하네.
케트루메타웨Ketrumetawe
할머니의 주요 작품 종류 중 하나인 마푸체 언어로 케트루메타웨Ketrumetawe라 불리는 오리 항아리는 마푸체 문화에서 매우 상징적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여성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마푸체 전통에서는 여자 아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 이것을 선물한다고 하고, 결혼 때도 사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