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에서 도자기를 배우다3
어쩌다보니 도자기가 주요 취미생활이 된 스페인 생활도 1년이 채워지고 있을 때 쯤 비자에 대한 고민을 해야 했다. 주로 스페인 체류를 위한 비자는 학생 비자아니면 취업비자인데 나는 어학원을 등록하고 학생비자를 1년 받은 상태였다. 다시 비자를 연장하기 위해서는 다른 학교에 입학을 하거나 어학원에 연장등록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어학원에 다시 등록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는 일이라 더 있을 것이라면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 할 때 쯤 안토니오와 키요코가 세비야 예술학교의 세라믹 아트 과정을 알려주었다. 키요코가 오래 전 졸업을 한 곳이기도 했다.
‘예술’적 이력을 가져본 적 없는 내가 예술학교라니.
그것이 가능할까 알아보니 이 학교는 우리나라 전문학교 비슷한 개념으로 고등학교를 마치면 대학에 가거나 여러 기능이나 전문적인 분야를 공부할 수 있는 전문학교에 간다. 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다시 대학으로 입학하는 경우도 많았다. 심지어 이 과정은 국비로 운영이 되어 입학금도 없었다.
전형과정은 필기는 중.고등학교 성적으로 대체가 되고 외국인은 어학증명서를 첨부하면 되었다. 각 분야에 따라 간단한 실기가 포함되어 있기도 했다. 당연히 예술학교는 실기시험이 있었다.
한국의 지인에게 부탁해 중.고등학교 성적증명서를 공증해서 받고 다시 스페인의 계산 방식으로 점수를 환산하여 공증을 받는 번거로운 과정을 진행하면서도 정말 내가 예술학교 학생이 될 수 있을 것인지는 의문이었다.
정말 문제는 실기였다. 입시미술은 고사하고 미술학원이라고는 회사 다닐 때 친구와 취미생활로 홍대의 한 미술학원에 등록해 벽돌 몇 장 그려본 게 전부였다. 입시요강에 나와 있는 재료들을 챙겨 시험 날 가보니 다양한 연령대의 수험생들이 모두 그럴싸한 미술 도구들을 가지고 긴장한 듯 앉아있는데 달랑 문방구에서 12색 색연필과 종이 몇 장을 챙겨간 나는 누가봐도 불량한 수험생이었다.
시험장에 들어가니 시험관이 추파춥스를 하나씩 나눠주었다.
‘스페인 시험장은 참 자유롭네. 시험보며 먹으라고 사탕도 주고..’
성급히 껍질을 까는데 시험관이 손을 저었다. 알고 보니 그날 보고 그려야하는 대상이 바로 그 추파춥스였던 것이다. 시험은 그렇게 색 표현하기, 형태 응용, 그리고 추파춥스 스케치로 진행되었다. 이미 봉지가 벗겨진 추파춥스를 봉지 위에 올려놓고 그리며 내내 ‘왜 추파춥스를 그리라는거야’ 툴툴거렸다.
그리고 시험이 끝나고 친구에게 이 이야기를 했을 때 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사탕을 싸고 있는 봉지의 로고 디자인이 유명한 초현실주의 작가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이라는 것이었다. 츄파춥스를 만들 당시 그 기업의 사장과 절친이던 달리는 친구의 부탁으로 한 시간도 안 되는 시간 안에 로고 디자인을 해주었고 막대사탕 꼭대기에 로고를 보이게 하자는 아이디어까지 덧붙여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디자인은 지금까지 거의 변형 없이 사용되고 있다. 상업적 로고이지만 그 안에 있는 대가의 디자인 요소 등이 있어서 특별히 실기시험 정물의 대상으로 사탕이 선택된 것이리라. 그러니 그 중요한 봉지를 벗겨버리고 그림을 그린 것이 얼마나 어이없는 일이었을까.
그래도 시험에 붙은 걸 보면 그것이 오히려 독창적이라고 생각했을까 싶기는 하지만 지금 생각해도 참 농담 같은 시험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나는 30대 후반에 예술학교 학생이 되었다.
월요일에서 금요일, 오후 3시에서 밤 9시까지 꽤나 빡빡한 과정이었다. 처음에는 도자기를 전공한다는 의미보다는 취미생활을 좀 더 전문적으로 하며, 비자 연장도 해결하는 일석이조의 계산이었기 때문에 머리 아픈 이론 수업은 제외하고 실기 위주로만 듣자 했는데 두 달 정도 수업을 듣다보니 제대로 잘 배워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계획에 없던 도자기 유학생활이 시작되었다.
2년의 세라믹아트과정이 끝나고 같이 연결되어 있는 물레과정까지 4년의 시간이었다. 물레과정은 세라믹과정을 졸업하면 실기만 들으면 되었고, 교수님의 배려로 좀 자유롭게 다닐 수 있어 매일 학교에 가진 않았지만 스페인 세비야의 많은 시간이 그 학교의 곳곳과 함께 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가벼운 취미생활이 어느 순간 전반적 삶의 요소로 전환하는 과정은 때론 그렇게 그다지 치밀하지 않은 수순으로 이어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