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 한 덩어리

스페인에서 도자기를 배우다2

by 로하

어느 토요일, 타일 수업을 마치고 키요코 선생님과 동네 바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집에 돌아가려는데, 우리가 만든 타일 소성을 맡기는 동네 도예공방에 같이 가보지 않겠냐고 물었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센터에 가서 완성된 타일들을 조심히 나눠들고 도착한 곳은 마을에서 또 다른 기능을 하는 센터였다.


스페인은 마약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90년대 후반에 가장 심했고 좀 나아졌다지만 여전히 문제를 안고 있다. 그렇다보니 마약중독자들을 위한 센터들이 곳곳에 많이 있다. 도예공방이 있는 센터도 그 중 하나였다. 그 곳에서 재활의 한 분야로 도예활동이 포함되어 있었고, 프로그램이 없을 때는 마을 사람들을 위한 일반 도예수업이 진행되기도 했다.


센터에 도착하니 수업시간이라 세 명의 마을 분들이 무언가를 열심히 만들고 있는 중이었다. 내가 배우는 타일아트를 하는 분도 있고, 흙작업을 하는 분도 보였다. 키요코가 간단한 소개와 나의 짤막한 스페인어 인사가 끝나고 다소 어색함이 흐르려는 차에 선생님인 안토니오 도예가가 일어나더니 흙을 조금 잘라 주며 뭐라도 한번 만들어 보라고 했다.


“그래. 이왕 왔으니 시간되면 한번 만들어봐. 나도 여기서 작업 좀 하고”

키요코 선생님이 먼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쭈뼛거리며 갑자기 손에 주어진 흙 한 덩어리를 들고 앉아 있자니 뭘 만들어야할지 머릿속이 하얘졌다. 처음 초벌 타일 한 장을 받았을 때처럼 말이다. (가끔 나의 도자기 공방에 오신 분들게 ‘뭐 만들고 싶으세요?’ 물으면 흙만 물끄러미 바라보는 마음을 그래서 나는 이해한다)


안토니오는 흙을 조금 떼어 간단히 어떤 작업을 할 수 있는지 설명해 주었고 나는 작은 그릇 하나를 만들었다. 국민학교 이후 처음이었다. 흙을 만지는 느낌이 참 좋았다. 무언가 머릿속의 그림이 실제로 비슷하게 만들어지는 것도 신기했고 아무 생각없이 뚝딱 흐르는 시간이 타일에 그림을 그리는 시간과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었다.


그렇게 그날 안토니오의 흙 한덩어리 영업에 넘어가 바로 수업신청을 했다.

수업을 같이 듣는 사람들은 타일 수업을 듣는 동료들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타일수업은 모두 이방인들, 그러니까 남미 이민자에, 선생님도 일본분이니 그 안에서 교감되는 동등한 정서가 있었다면 이곳에서는 나만 이방인이었기에 그림 수업에서처럼 나에 대한 조금 다른 관찰과 관심이 공존하는 분위기였다.


“왜 그렇게 말이 없어. 말을 많이 해야 언어가 늘지”

만들기 하느라 집중하기도 하고, 현지 억양이 잔뜩 묻어나 알아듣기 어려운 대화에 끼어들기도 애매해서 한참을 벙어리처럼 있을 때면 안토니오 도예가는 한 번씩 나를 대화에 쑥 집어 넣어 주곤 했다. 흙을 만지는 손이 익숙해지는 만큼 그곳의 공기와 사람들과도 그렇게 익숙해 져갔다. 흙으로 무언가를 빚으며 관계도 빚어가는 시간이었다.


안토니오 도예가가 마을 도예가로 살아가는 삶이 그렇게 풍요로울 리 없었다. 한때 공공 프로젝트가 센터에서 많이 진행되었을 때는 활발히 활동했지만 점점 센터에 오는 사람들도 줄어들면서 정부의 지원도 끊기고 있다고 했다. 일반 수업료도 턱도 없이 저렴했고, 가끔 마을 가게나 집에서 주문하는 타일장식이나 도자기를 만드시며 생활하는 안토니오 도예가는 그럼에도 언제나 넉넉한 여유와 웃음이 있었다.


그가 툭 던져준 흙 한덩어리가 지금 나의 시간을 빚는 시작점이었다면 기뻐하실까. 오늘도 누군가에게 흙 한 덩어리를 무심히 내어주고 있을 안토니오가 가끔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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