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에서 도자기를 배우다4
학교 수업 중에서 가장 어려웠던 과목은 ‘도자기 역사’였다. 한국어로 공부해도 역사가 힘들 판에 스페인어로 듣는 역사 수업은 오죽할까. 수업 내내 필기는 꿈도 못 꾸고 멍 때리고 있기 일쑤였는데 중간고사 기간이 다가오자 슬슬 걱정이 되었다. 시험 범위가 나오고 동료들도 내가 걱정되었는지 자신들의 필기를 복사해 주겠다고 했지만 노트에 적힌 그들의 필기체 스페인어는 도무지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냥 참고서적을 통으로 보자니 양은 너무 많았다.
그때 구원의 손길을 내민 것은 출라 언니였다. 학교 등록할 때 서류 쓰는 것이 까다로워 헤매는 나를 도와주었던 언니였는데 알고 보니 같은 과였다. 그 인연으로 스페인 생활 내내 나의 좋은 벗이자 여행 파트너, 친언니가 되어주었다.
언니는 주말에 나를 자기 집으로 불러 무려 25쪽이 넘는 분량의 필기 노트를 일일이 읽어주며 설명을 해주었다. 점심 무렵 만났는데 밤 12시가 넘어서야 끝난 집중 과외였다. 언니의 그런 노력과 마음이 고마워서라도 과락을 하면 안 된다는 강한 부담감으로 치른 나의 첫 중간고사 성적은 6.8점이었다. 5점 이상이어야 과락을 면할 수 있었으니 겨우겨우 통과한 것이다.
동료들이 내 점수를 보고 모두 박수를 쳐주어 민망했던 기억이 난다. 만점도 아니고 6.8에 박수받는 학생도, 그 점수가 만점보다 더 뿌듯했던 학생도 아마 내가 유일했을 것이다. 그렇게 한번 맥락을 읽고 나니 그다음부터는 조금 수업 듣기가 편해졌고 필기도 좀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기말은 가뿐하게 9점이 넘었다. 놀라운 발전이었다.
도자기 역사에서 아시아 도자기의 역사에는 한국이 언급되지 않았다. 중국과 일본의 예밖에 없는 것이 속상하다 싶었는데 종강을 한 달 정도 남긴 시점에 교수님이 한 시간 정도 한국 도자기를 소개해줄 수 있겠냐고 제안을 하셨다.
“너무 좋죠”라고 성급하게 대답을 하고 돌아서서 생각해 보니 나 역시 한국도자기에 대해서는 학교 다닐 때 고려청자, 백자 뭐 이런 이야기를 들은 것이 전부일뿐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인터넷과 한국 친구들에게 부탁한 자료들을 열심히 챙기며 글로 한국 도자기를 공부해야 했다. 그리고 그것이 뒤늦은 셀프 한국도자기 공부가 되었다. 준비한 양에 비해 어설플 수밖에 없는 발표였지만 동료들이 열심히 노트하며 들어주고 한국 도자기 사진과 영상을 보며 감탄사를 올릴 때마다 괜히 어깨가 으쓱하기도 했다. 발표가 끝나고 친구들이 말했다.
“우리는 행운이네. 네 덕분에 과외수업도 받고 말이야”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한국도자기를 그렇게 스페인에서 먼저 배웠다.
한국에 돌아와 다시 박물관에 가고, 한국의 도자기를 만나며 생각한다. 아마 내가 한국에서 도자기에 대해 좀 알고 스페인에 갔더라면 그곳의 도자기를 보는 태도나 보이는 것들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말이다.
한국 도자기 발표를 할 때 마지막 문구로 넣었던 글은 유홍준 교수의 글이었다.
“사랑하면 알게 되면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예전과 같지 않다.”
그 문장이 그대로 나에게 되돌아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