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에서 도자기를 배우다 5
예술학교 수업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역사였다면 그나마 쉬운 수업은 유약 수업이었다. 다른 스페인 친구들이 어려워했던 유약 수업이 나에게 강점이었던 것은 특별한 예술적 재능과는 전혀 상관없는 수학, 아니 정확히 말해 산수 실력 때문이었다.
유약 수업은 화학실험실 같은 수업이다.
일반적으로 도자기를 볼 때 반질반질 광택이 나는 것은 유약 때문인데 그 안에 들어가는 성분과 비율, 유약이 발리는 흙의 종류, 굽는 온도 등에 따라 광택의 느낌과 색등이 변화한다. 마치 요리사들처럼 도예가들도 본인이 원하는 색을 얻기 위해 다양한 유약 레시피를 가지고 있다. 바로 이 레시피를 상상하고 만들어 낼 수 있는 기본 원리를 배우는 수업이다. 이렇게 짧은 개론만 들어도 결코 쉽지는 않은 수업임을 눈치챌 것인데 이 수업이 쉬웠다니 애초에 말이 안 되는 일이다.
매 시간 다양한 레시피 계산법을 공식으로 배우고 계산된 레시피대로 무게를 재고 원료를 섞어 샘플을 만드는 수업은 이과 수업에 가까웠는데 이 어려운 수업을 내가 그나마 쉽게 지나갈 수 있었던 것은 어떤 색을 얻고 효과를 얻는 가에 집중했다기보다는 계산식을 직관적으로 외우는 것에 포커스를 맞추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점수는 잘 받을 수 있었지만 결론적으로는 전혀 도예가로서는 도움이 안 되었다.
한국이나 외국이나 수학을 어렵게 생각하기는 마찬가지였고 수학 포기자들이 스페인에 더 많은 것은 당연했다.
계산기 없이는 계산이 안 되는 동료들에 비하면 손으로 하는 계산이 쉽고 거의 산수 수준의 공식을 이해하고 쉽게 풀어내는 것은 나에게 그렇게 대단한 일은 아니었다. 계산기보다 빠른 나의 손 계산에 친구들은 ‘역시 한국의 교육 수준이 소문대로 높다’ 운운했지만 정말 딱 산수 수준이었다.
대부분의 수업에서 도움을 받아야 했던 나는 이 시간만큼은 오히려 친구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었다. 같은 실험조 친구들은 계산은 나에게 전담하도록 했는데 사실 이 수업의 핵심은 계산보다는 원료를 이해하고 샘플을 만드는 과정이었으니 산수로 인정받는 일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애매하기도 했다. 하지만 뭔가 도움이 되고, 잘하는 것을 인정받으니 어린아이처럼 마냥 그것에 취해있지 않기는 또 어려운 일 아니었겠는가
계산식을 통해 다양한 원료들이 섞인 유약이 칠해진 흙 조각이 가마에 구워 나오면 다양한 색의 시편들로 변한다. 그 시편들 안에 수학공식은 없다. 도자기를 하면서 여전히 나에게 어려운 것은 유약이다. 흙과 불의 온도에 반응하여 전혀 다른 빛깔로 탄생하는 색의 신비를 온전히 이해하기에는 나의 깊이는 딱 산수의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기본 유약들은 제조가 되어 쉽게 구매를 해서 사용할 수 있고 개인적으로는 유약으로 색을 내는 것에는 크게 흥미가 없어 작업을 하는 데 크게 어려움은 없으나 그때 산수를 잘한다고 그 수업을 쉽게 생각하지 말걸. 가끔 후회가 된다. 만약 그때 산수가 아닌 색에 대한 많은 질문과 실험 정신이 있었다면 지금 나의 도자기는 조금 다른 색의 세계에 가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랬다면 ‘산수 잘하는 도예가’도 꽤나 그럴듯한 수식어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