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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을 잡는다는 것

스페인에서 도자기를 배우다 7

by 로하 Aug 17. 2020

세라믹 아트 과의 마지막 달은 물레과의 다비드 교수님의 물레 맛보기 수업이 진행되었다. ‘도자기’하면 빙빙 돌아가는 물레를 생각하는 것은 나만은 아닐 것이다. 공방에 오시는 분들도 종종 물레 없이도 도자기를 만들 수 있냐고 물으시곤 한다. 영화 ‘사랑과 영혼’의 영향이 크다. 


나 역시 도자기를 배우기 전에는 도자기라 이름하여지는 어떤 것은 매끈하게 물레로 돌려 만든 작품들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도자기의 형태를 만들 수 있는 방식은 수도 없이 많으며 물레도 그중 하나의 방식이기도 하면서 별도의 독립적 기술 영역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스페인어로는 도예 전반을 하는 사람을 도예가 (세라미스따, ceramista)라고 칭하고 물레 장인은 물레 기술가 (알파레로, alfarero)라고 칭하며 구별하여 사용한다.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경험한 물레 수업이 재미있어서 세라믹 아트 과정을 졸업하고 물레 과정을 듣기로 했다. 물레 과정은 세라믹 아트 과정보다는 한 단계 낮은 코스라 대부분의 수업이 학점인정이 되어 2년간 물레 실기 수업만 들으면 이수가 가능했다. 당시 동네 학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도 시작하고 예술치료 전문대학원 입학까지 한 상태라 매일 시간을 내긴 힘들었지만 다비드 선생님의 배려로 2년 동안 연습하듯이 물레실을 이용할 수 있었다. 


물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중심잡기다.

눈으로 보기에는 쉬워 보이는 데 막상 흙 한 덩어리를 물레 위에 올리고 빠르게 돌아가는 물레 위에 흙을 지탱하여 중심을 잡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몸이 흔들리기도 하고 흙의 힘과 몸의 힘이 균형을 맞추는 찰나를 찾는 데만 몇 달이 걸린다. 흙의 양과 강도에 따라 상황은 변해서 거의 한 학기는 중심잡기를 익히느라 애를 먹었다. 중심이 겨우 맞았다 생각하고 모양을 만들기 시작하면 조금 틀어져있던 중심은 기물에 그대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비대칭이 되기도 하고 무너지기도 한다. 

“대충 맞았는데”는 없다.


어느 정도 중심이 맞기 시작하면 그다음부터는 무한히 30센티미터의 기둥 올리기가 시작된다. 30센티미터 기둥이 올라가면 가운데를 갈라서 벽면이 동일한 두께로 올라갔는지를 체크하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한다. 그렇게 1년간 중심잡기와 기둥 올리기의 무한반복이었다.


어느 날 매번 여러 번 중심을 새로 맞추곤 했던 덩어리가 돌아가는 물레 위에서 제대로 손안에 들어와 감기는 느낌이 왔다. 

‘그래 이 느낌이네“

뭔가 제대로 되었음이 감지되었다. 그리고 그 감각을 잊지 않으려고 애썼다. 한번 그 느낌을 경험하고 나니 영 늘지 않던 물레도 조금씩 나아지는 듯했다. 본격적으로 여러 모양들을 만들어 보는 2년 차에는 그래도 제법 예쁜 작품들을 만들곤 했다.


중심의 힘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대충은 허용하지 않는 물레 작업은 전반적으로 타협하고, 요령에 다소 능한 나에게는 어려운 숙제였지만 그 중심으로부터 시작되는 아름다운 변형의 기쁨을 알게 된 경험이기도 했다. 결국 기본이 중요하다는 것. 순서를 바꾸어 나아갈 수 없는 영역과의 만남이었다.


한국에 오니 물레 돌리는 방향이 스페인과 달랐다. 다비드 선생님은 물레는 무슨 일이 있어도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아가니 그것에 맞추어야 한다고 했고 학교 물레는 방향키를 바꾸는 버튼도 없었는데, 웬걸. 한국은 물레로 형태를 잡을 때는 시계방향, 굽을 깎을 때는 반대방향으로 돌리는 게 아닌가. 스페인에서 물레를 익힌 나에게는 한국 물레의 방향 전환 버튼이 필요 없다. 좋은 일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스페인에 다시 가게 되면 다비드 선생님께 말씀드려야겠다.


“한국은 물레를 오른쪽으로 돌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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