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에서 도자기를 배우다 8
스페인을 떠날 때 학교 동기들의 이별 선물은 특별한 가방이었다. 주문 제작한 가방이었는데 거기에는 ‘Ay! Molde de mí‘ (아이! 몰데 데 미, 내 석고틀)’라는 문장이 찍혀 있었다. 동기들은 나 몰래 깜짝 파티를 준비해주었고 그 파티에서 이 선물을 받아 들고 한참을 같이 웃었다.
사실 이 문장은 스페인어 문법상 틀린 문장이다. 일반적으로는 ‘mi molde’ 혹은 ‘molde mío’이렇게 사용한다. 하지만 이 틀린 문장을 모두가 기억하고, 같이 웃는 것은 나로부터 만들어진 한 때 우리들의 유행어였기 때문이다.
도자기의 형태를 만드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 데 그중 석고틀을 이용하기도 한다. 스페인어로는 ‘Molde (몰데, 틀)‘라고 부른다. 석고틀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 틀이 되어줄 원형이 필요하다. 흙으로 원형을 만들거나 기존에 다른 재료로 만들어져 있는 것의 본을 뜨거나 하는 다양한 방법이 가능하다. 이렇게 틀을 뜨는 한 번의 과정을 더 거치는 이유는 같은 형태의 도자기를 쉽게 만들어 내기 위해서이다. 그러니 제대로 어떤 틀을 만들 것인지와 함께 제대로 된 틀을 만드는 것은 중요하다.
석고틀 수업이 진행된 한 달여 기간 동안 학교 작업실은 난장판이었다.
석고를 붓기 전에 틀을 만들 형태를 가운데 두고 빳빳한 비닐이나 나무판으로 벽을 쌓아 석고 물을 붓는데, 이 벽이 문제였던 것이다. 틈새를 흙으로 잘 막고 맞춤대로 튼튼하게 지지한다고 해도 조금만 허술해도 쌓아놓은 벽에 틈이 생기고 어김없이 석고가 그 틈을 따라 흐르기 때문에 다소 서툴렀던 우리의 벽들은 자주 어이없이 무너지기를 반복했다.
여기저기 비명소리가 들리고 사고가 나면 함께 모여 사태를 수습하는 난장판이 여러 번 반복되다 보니 나중에는 그 상황이 너무 코믹스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두세 번 사고가 나고 나니 슬슬 짜증도 났다.
그날도 조심조심 석고 물을 붓는데 괜찮을 거 같던 벽이 슬슬 벌어지며 여지없이 석고 물이 흘렀다. 그때 나의 입에서 나온 문장이 바로 “Ay! Molde de mí‘ (아이! 내 석고틀!)였다. 한 외국인의 입에서 즉흥적으로 나온 감탄사가 스페인어라는 것이 신기했을까. 너무 크게 말한 나의 문법 없는 스페인어 문장에 작업실에 있던 친구들이 일제히 조용해지더니 다 같이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뒤로 이 문장은 우리의 석고틀 시간 주제 문장이 되어서 수업시간이면 여기저기 ‘몰데 데 미’를 외치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 그 문장과 함께 실수의 짜증은 조금은 유희로, 우리의 석고틀은 조금 더 그럴싸해져 갔다.
“문법은 틀렸지만 위대한 문장이야!”
선물을 건네며 친구 수사나는 말했다.
틀이라는 것이 그렇다. ‘틀에 박힌 사고를 하면 안 되고, 틀은 깨라고 있는 것’이라지만 좋은 틀은 그 안에서 다양한 변화와 이야기를 찾아낼 수 있는 단단한 기초가 되기도 한다.
친구들이 다시 나에게 되돌려 건네 준 문장을 보며 나의 틀은 여전히 적당한 모양을 찾지 못한 석고 물처럼 그렇게 다양한 사고와 아쉬움을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언젠가 문장 앞에 붙은 ‘아이!’가 탄식이 아닌 깨달음의 추임새가 될 날도 오지 않을까.
그러니 그런 견고한 나만의 틀을 만들기 위해 수십 번, 아니 수백 번은 더 ‘Ay! Molde de mí‘ (아이! 내 석고틀)를 외쳐도 괜찮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