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에서 도자기를 배우다9
마지막 학기는 졸업프로젝트를 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수업 중 프로젝트 시간이 따로 있어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프리젠테이션을 준비하고, 중간에 기획한 작품에 대한 제작 계획을 교수님과 이야기를 나누어 가능성 여부와 조언을 듣고 통과가 되면 약 3개월 동안 도자기 실습시간은 개인 프로젝트를 하는 시간으로 주어지게 된다.
논문은 써봤어도 작품으로 프로젝트를 해보는 것은 처음이라 걱정이 많이 되었다.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하고 싶은 것이 뭘까? 고민 끝에 선택한 것은 ‘Mi maleta de Cerámica : Me gusta 나의 도자기 가방 : 좋아요!’이었다.
내가 느닷없이 도자기를 시작한 이유이기도 한 스페인 타일이 프로젝트의 기본 요소였다. 나에게는 그 어느 기술보다도 타일 아트가 가장 흥미로웠다. 그것은 아마도 한국에서 쉽게 접하지 못한 것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나에 비해 도시 곳곳, 집안 곳곳에서 흔히 타일을 볼 수 있는 스페인 세비야 출신친구들에게는 타일은 그다지 새로운 것이 아니어서 흥미 밖이었다. 오히려 중국과 일본 도자기라는 인식이 강한 고온 도자기에 대한 동경이 크다. 세비야의 도예과는 아직 고온 도자기에 대한 기술이 그렇게 높은 편이 아니어서 과정의 끝에 몇 개의 기본 유약으로 작업을 하는 정도였지만 대부분 동기들의 프로젝트는 고온 베이스의 조형물이었다.
나라면 오히려 이미 풍부한 기술을 가진 전통적인 타일아트를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작업을 해보고 싶을 거 같은데 말이다. 서로 이국적인 것에 대한 동경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고 해서 나의 프로젝트가 타일아트의 새로운 조명 같은 것은 아니었다. 나에게는 지금 현존하는 타일아트 자체 만으로도 새로움이었으므로 내가 기획한 ‘도자기 가방’ 안에는 그 현재를 담을 것이었다.
“먼 나라에서 세비야로 온 한 여자가 있었죠
그녀는 도시 곳곳의 타일을 보고 반해버렸어요. 그러다 도자기를 배우기 시작했죠.
그리고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는 그녀의 손에는 새로운 가방이 하나 들려있었어요.
고국에 돌아간 그녀는 어느 날 친구를 만났어요. 그 가방을 들고 말이에요.
친구가 물었어요. “그게 뭐야?”
“내가 스페인에서 좋아하던 것들이야. 한번 볼래?”
그녀는 가방에는 스페인 세비야에서 그녀가 좋아하던 것들을 담은 타일들이 들어 있었죠.
난 세비야의 태양을 좋아했어/ 맥주를 좋았고/ 플라멩코가 좋았지/
세비야의 좁은 골목들이 좋았고/ 세비야 식 스페인어도 좋았어/ 그리고 그곳에서 한글을 가르치는 일상도 좋았지.
그녀의 타일과 스페인 이야기를 들은 친구가 물었어요.
“와 멋지네. 어떻게 만든 거야?
“한번 보여줄까?”
그녀는 다시 타일 아래 들어있는 타일의 제작 과정이 담긴 다양한 재료와 메모를 꺼내 설명하기 시작했죠.
“어때? 좋아?” 이야기를 마친 그녀는 가방을 닫으며 물었어요.
“응 너무 좋다! Me gusta (메 구스따, 좋아요)”
이것이 나의 도자기가방 ‘Mi maleta de Cerámica: Me gusta 나의 도자기 가방 : 좋아요!’의 메인 스토리였다. 여섯 개의 다른 테크닉으로 제작한 타일들과 그 타일을 만드는 재료와 제작 레시피가 담긴 나무 가방, 이야기를 담은 짧은 영상이 나의 프로젝트 였다.
타일 작품 자체는 그렇게 새로울 것이 없었지만 프로젝트 자체가 ‘나’이기에 할 수 있는 재밌고 신선한 것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나의 다음 학년으로 들어온 친구 이야기를 들어보니 프로젝트 시간에 예시로 인용되기도 했단다. 뿌듯했다.
그때부터가 아니었을까.
나는 도자기를 만드는 사람보다는 도자기로 무언가를 보여주고, 도자기로 여행하는 사람으로의 성향이 있었던 것 같다.
결국 그 가방은 한국으로 들고 오지 못했다. 가방 안의 타일들과 내용들을 가져오긴 했지만 아직 다른 가방 안에 다시 넣지 못했다. 물론 가방을 틀고 친구들을 만나지도 못했다.
이 글을 쓰다 보니 오랜 짐 안에 꽁꽁 쌓인 타일들을 꺼내 다시 나의 도자기 가방을 꾸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끝나지 않은 나의 프로젝트가 그래야 비로소 시작될 것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