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에서 도자기를 배우다 6
마지막 학기에 팀으로 사업계획서를 쓰는 과제가 있었다. 팀을 꾸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평소 나와 호흡이 잘 맞는 수사나와 바로 팀을 만들었다. 수사나는 고등학교 미술교사였다. 스페인 북쪽 출신으로 남자 친구를 따라 터를 세비야로 옮겼다. 스페인 살이가 길어지면서 종종 스페인 세비야 사람들의 뭔가 불분명하고 느슨함이 나와는 잘 맞지 않는다고 툴툴거리면 항상 그녀는 나를 이렇게 위로하곤 했다.
"너나 나나 세비야에서 이방인이긴 마찬가지야."
그 말에는 많은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다.
스페인 사람과 한국 사람이 함께 운영하는 도자기 공방을 사업계획서로 내기로 했는데 당시 한국 여행자를 대상으로 스페인의 도자기를 알리고 체험하게 하는 프로그램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던 터라 나의 아이디어와 수사나의 현지 감각을 더해 과제는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사업 아이템과 프로그램은 주로 내가 작성하고 다른 행정적 서류작성은 수사나가 맡았다. 마치 정말 같이 사업을 준비하는 기분이 들기도 해서 농담처럼 정말 같이 공방 하나 열까? 이야기하곤 했다. 물론 수사나는 공무원이었으니 그것이 불가능했지만 말이다. 만약 그렇지 않았으면 지금쯤 스페인 세비야에서 운영하고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그만큼 그녀와 사업계획을 짜며 상상하는 일은 즐거웠다.
문제는 이름이었다.
과연 공방의 이름을 무엇으로 할 것인가?
내용을 다 작성하고 이름과 로고 등을 마지막으로 미뤄두었는데 좀처럼 쉽게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가 농담처럼 던진 이름이 ‘Barco de arroz 바르꼬 데 아로스 (쌀 배)’였다.
남쪽 스페인어 표현에 ‘Mas perdida que barco de arroz마스 뻬르디다 께 바르꼬 데 아로스’라는 말이 있다. ‘쌀 배보다 더 많이 잃다’라는 말인데 뭔가 큰 손실을 입었을 때 쓰는 표현이다.
콜럼버스 시절 필리핀에서 쌀을 싣고 오던 배가 남쪽 바다 산루까에 들어오다가 좌초되었다. 바다에 묻힌 쌀이 얼마나 많았는지 한동안 그곳에 쌀 썩는 냄새가 사라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뭔가 손해를 보거나 잃었을 때 이 쌀 운송 배를 기준으로 말을 하곤 했단다.
그만큼 쌀 배의 손실은 안타까운 일이었던 것이다.
사람들에게 귀하고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쌀 배, 게다가 아시아에서 오던 쌀이었으니 뭔가 아시아와 스페인을 연결하는 이름이 아닐까 하며 농담처럼 건네었는데 수사나는 좋다고 맞장구를 쳐주었다. 물론 다른 동료들은 시큰둥했다. 그렇거나 말거나 어차피 우리 공방이었으니 상관없었다.
한국에서 도자기 작업실을 열 때 이름을 생각하며 ‘바르꼬 데 아로스’를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러기엔 구구절절 설명이 너무 길어질 거 같았다. 게다가 이미 공동 저작권을 가진 이름이 아닌가.
작업실을 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수사나에게 메시지가 왔다.
“안녕 은! 어떻게 지내?
나는 이번 학기에 두 시간 도자기 수업을 다시 시작해.
벌써 26명의 학생이 신청했어
그래서 우리가 함께 했던 그 시간이 기억이 났어.
SNS로 보는 네 작업실에서 하는 작업들이 나는 너무 좋아.
사실 방금 내 수업에 쓸 아이디어 하나를 네 작업에서 얻었지. 히히
잘하고 있어! 정말 훌륭해~~
항상 모든 일이 잘되길 바랄게.
-나의 소중한 기억인 너에게 안부를 보내며. 학기 초에..
친구의 메시지에 나는 답했다.
"우리 ‘쌀 배’는 함께는 아니지만 세비야와 서울에서 이렇게 항해 중이야!"
답장을 쓰는데 뭔가 좀 뭉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