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하 Aug 09. 2021

인어를 빚는 남자

-인어의 남자라 불리는 사람

“그래서 언제부터 인어를 빚기 시작 하셨나요?”


초점 없는 장인의 눈이 잠시 무언가를 응시하듯 움직였다. 인터뷰 내내 발랄하게 움직이던 오랜 세월을 담은 그의 손이 잠시 조용히 멈추었다. 그는 ‘인어의 남자’라 불렸다. 그의 집 마당을 채운 흙으로 빚은 형상들 대부분이 인어 형상이니 그 수식어의 이유를 따로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마당을 곁눈질로 둘러보던 인내심 없는 기자는 다시 한 번 재촉하듯 물었다.

“특별히 인어를 빚는 이유가 있나요?”


조금 더 시간이 지나서야 이야기를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알았다는 듯 장인은 얼굴에 살짝 미소를 지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시력을 잃어 보지 못하는 그의 눈은 그 순간 유난히 무언가를 바라보듯 빛났다.


“나는 바다를 딱 세 번 보았어. 내가 인어를 빚으니까 사람들은 가끔 바다가 고향일 거라고 생각하지만 아니야. 평생 딱 세 번이었지.”


그가 처음 바다를 본 것은 10살이 되던 해였다. 넉넉지 않은 집이었기에 어디 여행을 가는 것은 꿈도 못 꾸었는데 동네 사촌의 휴가에 운 좋게 함께 한 날이었다.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에 살던 그가 생애 처음 바다를 본 날. 그는 설레고 또 설레었다. 


“정신없이 놀았지. 바다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해변을 따라 끝까지 뛰어보고 싶었어. 한참을 뛰다 걷다 보니 내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더라고. 덜컥 겁이 났지. 그 때 한 여자 아이를 만났어.”


또래쯤이었던 것 같았다. 바다가 익숙한 듯 놀고 있는 그 아이는 어디로 가면 사람들이 있는 해변에 갈 수 있는지 알려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너무 멀리 왔네. 괜찮아. 곧 그곳에 돌아갈 거니까.”


아이는 그의 손을 잡고 바다로 들어갔다. ‘물고기 같다!’ 어른 그는 생각했다. 마술처럼 여자아이를 따라 헤엄치다 물 밖으로 고개를 들어보니 언제 그만큼 왔을까. 처음 그가 있던 해변의 풍경이 보였다.


“어! 바로 여기야. 정말 금방 왔네. 고마워”

반가운 맘에 여자아이를 돌아보며 말을 했지만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그가 읽었던 동화 속 인어공주처럼, 마치 신기루처럼 그렇게 아이는 이미 없었다.


두 번째 그가 바다를 만난 것은 스무 살이 조금 넘어서였다. 어릴 때부터 흙과 노는 것을 좋아하고 그렇게 살고 싶은 그였지만 생계를 위해 다른 일을 해야 했다. 지친 일상을 떠나 잠시 떠난 짧은 여행이었다. 삶은 녹녹치 않았다. 해변을 걷고 또 걸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그곳엔 그와 나이가 엇비슷해 보이는 한 여자가 10년 전 여자아이처럼 무심히 앉아 있었다. 


“이번에도 길을 잃었니?”

“길을 잃을 나이는 아니지. 하지만 더 어려운 길을 잃은 것 같아.”

“괜찮아, 곧 찾게 될 거야”


그녀는 이번에도 그를 바다로 초대했다. 무겁던 마음과 몸이 그녀의 손 안에서 한결 가벼워지는 듯했다. 얼마나 그렇게 물위를 부유했을까.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을 느끼며 어느 해변에서 눈을 떴을 때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마음은 한결 가벼워져 있었다. 


“그 여행에서 돌아와서 하던 일을 그만두고  흙으로 무언가를 빚는 삶을 선택했어. 그녀의 말처럼 그렇게 또 한번 길을 찾은 셈이었지”


“그럼 세 번째도 그녀를 만난 건가요?”


그가 다시 바다로 간 것은 눈에 문제가 생겼을 때였다. 점점 흐려지던 눈은 결국 마지막 시력조차 잃어 가고 있었다. 문득 완전히 시력을 잃기 전에 다시 한 번 바다가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초점 없이 흐릿하게 보이는 바다 풍경에 어느 실루엣이 보였다. 그는 그것이 그녀의 실루엣 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제 더 이상 길을 찾을 수 없게 된 거 같아.”

이번에는 그가 먼저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그녀는 조용히 그의 손을 잡았다. 바닷물을 쓰다듬고, 모래를 만지고, 그녀의 머릿결을 만지도록 손이 손을 인도했다.


“괜찮아. 눈이 아닌 손이 너의 길을 찾게 할 거니까.”


잠시 이야기를 멈춘 장인은 잠시 아내의 도움을 받아 일어섰다. 그리고 그가 빚은 인어의 형상으로 다가가 손으로 한번 쓰다듬었다.


“그래서 인어를 빚어. 내가 기억하는 것. 나의 손이 가장 오랫동안 기억하는 이야기가 바로 이 모습이지. 바다에서 만났던 그 아이 혹은 여인은 인어였을까. 아닐 수도 있지. 하지만 나의 손은 그 기억을 이렇게 빚으며 여전히 길을 찾고 있어.”


 마당 곳곳, 그가 빚었으나 그는 한 번도 본적이 없는 그의 인어들이 그렇게 물끄러미 장인의 손을 보고 있는 듯 했다. 공기의 정령이 된 동화 속 인어의 화답처럼 어디선가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장인의 손을 스치고 지나갔다.


*이 이야기는 2019년 만난 ‘인어의 남자’라 불리는 멕시코 와하카 주의 장인 돈 호세와 그의 작품을 모티브로 했습니다.

'인어의 남자'라 불리는 멕시코 장인 돈 호세


작가의 이전글 유토피아에 대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