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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하 Aug 05. 2021

유토피아에 대하여

#2012. 8.4추억을 공유합니다.

로하 님이 2012년 8월 4일 추억을 공유했습니다


유토피아보다는 디스토피아라는 단어가 많이 등장하는 요즘이다. 유토피아라니. 정말 지극히 유토피아적인 단어가 아닌가. 그런데 과거의 포스팅은 ‘유토피아로 가는 길’이라는 문구가 담긴 벽화 사진과 함께 추억을 소환한다. 


스페인 안달루시아의 작은 마을 마리날레다라는 ‘유토피아’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었다. ‘스페인의 작은 사회주의 마을’이라 불리는 그곳은 세계적으로 당시 많은 이슈가 되고 있어서 꼭 가보고 싶은 곳이기도 했다. 워낙 작은 마을이다 보니 대중교통도 불편하고 마을에는 숙소도 없어서 개인이 그냥 방문하기는 그렇게 쉬운 곳은 아니었다. 추억으로 소환된 이날도 스페인 친구와 근처 마을에 놀러 갔다가 친구 차로 잠시 마을을 둘러본 날이었다. 하지만 평일 낮시간 일상적인 마을 안에서 내가 만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그저 마을 곳곳 벽화들을 보고, 작은 마을 바에서 음료 한잔을 하는 것일 뿐. 그렇게 내내 아쉬움이 남았다.


그러다 모 신문사의 마리날레다 특별취재 통역과 가이드를 맡게 되면서 드디어 제대로 마을 안에 머물 수 있게 되었다. 현지 통역을 구하던 기자는 마리날레다에 대한 사전 정보가 있는 사람을 구하지 못하다가 나와 연락이 되었다. 대중교통이 불편한 곳에 운전이 안 되는 통역 겸 가이드라는 악조건에도 취재 동행이 가능했던 것은 내가 이 마을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와 관심을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2박 3일간, 사심가득한 아르바이트를 하며 '유토피아'라 불리는 마을에 머물렀다.


마리날레다가 '유토피아' 혹은 '사회주의 마을'이라 불리는 것은 이곳의 공동노동과 공동주택을 기반으로 한다. 수년간 대지주의 땅 소작인으로 고통받던 사람들은 12년간 땅을 점거하며 싸웠다. 그리고 긴 싸움끝에 마침내 그 땅을 시가 사들이고, 주민들이 주인이 되어 일할 수 있게 되었다. 누구의 소유도 아닌 이 땅에서 마을 사람들은 공평하게 노동을 하고, 동등한 임금을 받는다. 그리고 마을 토지에 공동주택을 지어 월 15유로 정도(약 2만 원 정도)의 비용을 지불하고 살아간다. 일과 집이 해결되는 곳. 그것이 이 마을의 기본 유토피아의 충족 조건이다. 

이 역사 안에는 고르디요라는 시장이 있다. 30년 넘게 시장을 역임하고 있는 그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다. 처음 농장 검거 농성을 시작한 이 젊은 시장은 스페인의 로빈후드로 불리며 마리날레다의 새로운 시간을 기록한 상징적 인물로 언급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오래 이어지는 그의 권력에 대해 독재라는 평가를 하는 사람도 있다. 


‘과연 이곳의 사람들은 밖에서 '유토피아'라 부르는 이곳에서 행복할까? 만족할까?’

나는 궁금했다. 과연 우리가 ‘유토피아’라고 하는 길이 그곳에 있을지. 그것이 정말 매력적인 길의 열쇠로 나에게 다가 올 지에 대한 것 말이다.


그렇게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들과 삶 속에서 내가 만난 것은 흡족한 만족이나, 확신이라기보다는 군더더기 없는 ‘필요충분’의 범위에 대한 것이었다. 일자리가 필요했던 그들은 땅을 확보하기 위해 싸웠고 이겼다. 그렇게 스스로 얻어낸 필요에 대한 충족. 그것은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가장 기본적인 것이었다. 취재 때 만난 한 마을 주민의 말을 빌리자면 ‘BMW나 아우디를 가지기 위한 것이 아닌 가장 기본적인 삶을 위한 싸움’. 그러니 그들의 삶은 풍족한 것이 아닌 ‘딱 그만큼 부족하지 않는 것’이라 해야 맞겠다.


취재를 하고 나서 알게 되었다. 질문은 그들에게가 아닌 나에게 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과연 너는 그 최소한의 필요안에서 행복할까?’


나의 필요에는 군더더기가 많다. 사실 군더더기라고 느끼지도 못한다. 운좋게 내가 참으로 현명해져서 불필요를 모조리 드러내고 고스란히 남는 삶의 필요를 알 수만 있다면 그것을 충족하기 위한 길 또한 명확해질 것이다. 하지만 어디 그것이 쉬운 일일까.


문득 궁금해져서 최근 기사들을 보니 마리날레다 역시 그들의 필요가 지금의 충족조건에 머물지는 않기에 조금씩 어긋나는 필요충분을 지켜가는 길은 여전히 힘겨워 보인다. 하지만 그렇기에 유토피아는 불가능하다가 아닌 그럼에도 유토피아를 꿈꿀 수 있다면 좋겠다. 마을 벽에 그려져있던 다소 동화같은 '유토피아로 가는 길' 벽화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기를 바란다.


에두아르도 갈레아노의 글이 생각난다.


유토피아는 지평선 저멀리에 있다.
두걸음 다가가면 두 걸음 멀어진다.
열걸음 다가가면 또 열 걸음 더 멀어진다.

"그렇다면 유토피아는 무엇을 위해 필요한가요?"

바로 그것! 그렇게 걸어가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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