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7.29추억을 공유합니다
로하 님이 2016. 7. 29 추억을 공유했습니다
2016년 여름은 국립현대미술관 레지던시 작가로 칠레에서 온 예술가 막시모와 함께 했다. 스페인 살 때 만난 칠레 예술가의 친구였는데 3개월 레지던시 기간 동안 한국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를 도와주는 것이었다.
그의 프로젝트는 ‘한국에 살고 있는 이민자들’을 인터뷰하는 것이었다. 작가의 아버지는 칠레 피노체트 독재시설 쿠바에서의 망명 생활을 했고, 그 이후에도 한참을 돌아오지 못하고 다른 나라를 떠돌았다. 그 역시 어린 시절을 타국에서 보내야 했다. 그런 유년 시절의 기억은 작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들로 이어졌고 그의 작업과 결합되었다.
길지는 않지만 나 역시 스페인에서 이방인으로 5년간을 살며 비슷한 질문들을 했었고, 한국에 돌아오기 전 ‘이방인이 이방인에게’라는 인터뷰를 통해 오랫동안 스페인에 이방인으로 머물며 살아가는 삶을 만나 본 적이 있기에 작가의 프로젝트가 개인적으로도 꽤나 흥미로운 주제였다.
한 센터에서 인터뷰를 진행한 날이었다. 센터를 이용하시는 네 분 정도가 인터뷰에 응하셨다. 인터뷰에 응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완벽하지는 않지만 한국어를 꽤 하시는 분 들었는데 그중 한 분이 한국어가 아직 익숙하지 않으셨다. 몇 개의 질문을 진행하다가 소통이 힘들다는 것을 느끼고 결국 앞서 인터뷰를 한 분 중 같은 나라 분이 계셔서 중간 통역을 부탁드려야 했다. 나는 막시모 작가의 스페인어 인터뷰 지를 한국어로 옮겨 중간 통역해주실 분에게 전달하고, 이분이 이 말을 다시 본인 나라 언어로 바꾸어 전하고, 인터뷰하는 분이 대답하는 다소 긴 소통의 거리를 경험해야 했다. 답변이 돌아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한참 이런 방식의 인터뷰가 진행되고 중간중간 소통이 매끄럽지 않은 부분을 몇 번씩 확인해가고 있을 때 막시모 작가가 말했다.
“이 상황 자체가 너무 흥미롭다. 이 시간 안에 나의 주제가 담기는 것 같다.”
막시모 작가는 최종적으로 인터뷰한 영상들을 문장으로 엮어 스토리를 만드는 방식이 아닌 번역 자막을 없이 소리를 편집하는 것으로 영상을 완성했다. 영상 안에서 여러 사람들의 얼굴과 말들이 겹치고 결국은 누구인지도 무슨 말인지도 알아들을 수 없다. 서로 다른 문장들이 하나의 변역 자막으로 애써 정리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소리로 공존하여 또 다른 소리로서 그저 존재했다. 나는 그 영상을 보며 소통의 부재 안에 담긴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내뱉는 개인의 목소리를 찾는 과정을 보는 듯했다.
타국에서의 삶은 ‘타국’이라는 장소에 처음에는 악센트가 찍히지만 살아가다 보면 결국 장소라는 것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내 삶에 주어진 요소들을 가지고 삶을 만드는 사람은 결국 ‘나’라는 사람이라 변화한 요소를 조합하는 나의 방식이 변하지 않는 이상 달라진 요소가 개인의 삶을 바꾸는 데 영향을 주는 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 요소들을 수없이 바꾸어 보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러나는 나의 목소리를 조금 더 선명하게 듣기 위해서일 것이다.
무수한 소음 속에 얼핏 사라진 듯 하지만, 그렇기에 더 귀 기울여 찾게 되는 나의 목소리를 찾는 여행, 그것은 굳이 이민자가 아니어도 누구나 그렇게 조금씩 삶의 이방인에서 주인으로 옮겨가기 위해 떠나는 매일의 여행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