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상고객의 기쁨과 슬픔

기쁨이 존재할까 싶지만

by 토드

마트에서 일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보는 일이라고 답하겠다. 언젠가 진상의 어원에 대해 읽은 적이 있다. 진상(進上)은 본래 조선시대에 지방의 토산물이나 진귀한 물건을 국왕이나 고위 관료에게 바치는 행위를 의미하는 한자어에서 유래했으나, 점차 일부 상류층의 과도한 요구에 의해 부정적 의미가 더해졌다고 한다. 요즘은 SNS에서 스스로가 진상인지 자문하는 소위 자기검열식의 글도 자주 볼 수 있다. 하지만 정말 현장에서 직접 고객과 부딪치는 일을 하고 나면 나 정도는 진상도 아니구나, 라는 것을 깨달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현장근무를 마친 지는 한참 되었지만,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 “고객”을 되짚어 보고자 한다.


그 날은 일요일 아침이었다. 일요일은 입고/발주가 없는 날이라 매장이 상대적으로 한가하다. 물건이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창고와 매장을 오가며, 빈 매대가 없는지 체크하는 것 정도였다. 그러다 고객센터로부터 무전이 왔다. 나를 찾는 목소리에서부터 한껏 난감함이 묻어났다.


“ㅇㅇ님. 그러니까 여기 고객님이, 일 년 전에 락앤락을 구매하셨는데 다 늘어나서 불량이라고…….”

“애초부터 불량을 판 거라니까! 이렇게까지 늘어나는 게 말이 돼?”


잔뜩 화가 난 남성의 목소리가 무전을 뚫고 들려왔다. 웬만한 건은 고객센터에서 적당히 교환/환불 처리를 하는데, 담당자한테까지 연락이 왔다는 건 보통 강성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 때 처리의 여부는 전적으로 담당자의 몫이다. 본인 손해를 안고 환불이나 교환을 해 주고 별도로 소명하든가, 혹은 끝까지 불가하다고 맞서던가. 나는 보통 후자인 편이었다. 구입한 지 일 년이 지났고, 영수증이 없고, 이미 소모한 물건을 교환이나 환불 처리를 해 줄 수는 없었다. 매장의 손해를 넘어 다른 원칙을 지키는 고객들에게 대한 실례였다.


“네, 내려갈게요.”


짧게 답한 후 나는 비장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예전에는 고객들을 상대하는 게 어렵고 무서워서 좀처럼 고객센터까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점차 경험이 쌓이고, 고객을 상대하는 일이 늘어나니 웬만한 일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게 됐다. 고객센터로 가는 길에 나는 당시 부점장님을 마주쳤다. 그 역시 이른 아침부터 고객센터로 향하는 내가 의외라는 듯 말을 걸어왔다.


“ㅇㅇ! 오늘 오전이야? 어디 가냐.”

“락앤락 환불해달라는 고객님이 있어서요. 산 지 일 년 지났고 영수증도 없대요.”

“야. 절대로 해 주면 안 돼.”

“안 그래도 그러려고 했어요.”


끝까지 고객이 고집을 꺾지 않으면 본인을 부르라는 말을 끝으로 부점장님은 사라졌다. 그럴 만한 일도 아니라고 생각하며 나는 고객센터로 들어섰다. 이미 난리가 나 있었다. 40대로 보이는 남성 고객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락앤락을 흔들고 있었다. 나는 우선 상품의 상태를 살폈다. 여기저기 기스가 나 있고 억지로 뚜껑을 닫았는지 윗부분도 조금 깨져 있었다. 한 눈에 보아도 사용한 지 오래된 상품이었다. 나는 겁먹은 표정이 역력한 여사님들로부터 고객을 넘겨 받았다.


“이거 언제 구입하신 건지 여쭤봐도 될까요?”

“작년에 샀다고, 작년에. XX.”

“영수증 있으세요?“

“XX, 일 년도 넘었는데 그런 게 어딨어?”


말끝마다 쌍욕을 섞어 말하는 그 앞에서 나는 오히려 차분해졌다. 닥치고 당장 환불하라고 윽박지르며 남자는 내게 더욱 가까이 다가왔다. 나보다 조금 큰 남자를 올려다보며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고객님. 락앤락은 소모품입니다. 오래 사용하시면 당연히 이렇게 될 수밖에 없어요. 원칙상 이미 사용하신 물건은 환불이 불가하고, 영수증이 없으셔서 저희 매장에서 구입하셨다는 것도 증명이 안 됩니다.“

“뭐? XX, 모르겠고 그냥 환불하라고!”


이미 제대로 된 소통이 불가한 상황이었다. 심지어 남자는 그 상품이 얼마였는지도 기억하지 못했다. 남자가 너무 크게 목소리를 높이는 바람에 주변 고객들도 인상을 찡그리며 한 마디씩 내뱉었다. 거 조용히 좀 합시다. 어차피 남자가 얼마나 윽박지르든 내 대답은 똑같았다. 그러다 한 중년의 여성 고객이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장을 보고 온 모양인지 물건이 가득 담긴 봉투가 그녀의 손에 들려 있었다. 난감한 얼굴로 나와 그 남자를 번갈아보던 그녀가 나에게 말했다.


“그냥 해 주면 안 돼요……?”


순간 상황 파악이 안 되던 나는, 그녀가 남자의 아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남자를 말리려나 싶었던 생각이 우습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다시 그녀에게 몸을 돌려 차분히 말했다.


“구입하신 지 일 년이 넘으셨고, 영수증도 없으시고, 이미 사용하신 물건은 환불이 안 됩니다. 소모품이잖아요. 정말로 사용 안 하셨어요?“

“아니, 쓰긴 했는데 금방 늘어났다니까. 좀 해 줘요.”

“죄송하지만 안 됩니다.“

“이런, XX!”


본인의 아내까지 거절당하자 정말로 화가 났는지 남자가 내 앞으로 성큼 다가섰다. 물러서지 않고 나는 자리를 지켰는데, 순간 익숙한 유니폼을 입은 등이 눈 앞에 나타났다.


“고객님. 저희 직원이 안 된다고 말씀드렸잖아요.”


남자와의 대화 아닌 대화에 집중하느라 미처 부점장님이 온 것을 깨닫지 못했다. 남자와 내 사이가 워낙 가까웠기에 그는 억지로 비집고 들어온 모양이었다. 부점장님의 등에 내 코가 닿을 정도의 거리였다. 갑자기 건장한 성인 남성이 나타나자 남자는 멈칫했다. 그 새를 놓치지 않고 부점장님은 다시 말을 이었다. 여전히 그로부터 내 모습을 단단히 가린 채였다.


“그리고 고객님. 여기서 이렇게 소리 지르시면 안 됩니다. 다른 고객님들도 계시잖아요.“

“XX, 소리를 지른 게 아니라 환불을 안 해 주니까.”

“욕도 그만 하세요.”


단호한 부점장님의 목소리에 남자는 말문이 막힌 모양이었다. 그러다 분을 참지 못했는지 그가 갑자기 몸을 돌렸다.


“안 해 주면, XX, 내가 직접 가져가면 되지. 어?”


락앤락을 들고 매장 입구로 향하기 시작한 그의 등을 바라보다, 안전 요원에게 부점장님이 눈짓했다. 경찰 불러. 때마침 락앤락 특별 할인전을 하고 있었기에 락앤락이 가득 담긴 매대가 동선에 진열되어 있었다. 씨근대는 남자, 종종걸음으로 따라 들어온 그의 아내, 그리고 부점장님과 나, 안전요원까지 전부 그 매대 앞에 섰다.


“그냥 가져가시면 절도죄인 거 아시죠? 경찰 부릅니다.”


나지막한 부점장님의 목소리가 마지막 경고처럼 들렸는지, 남자는 매대에 손을 뻗었지만 상품을 집어 들지는 않았다. 경찰 얘기까지 나오자 그의 아내가 그냥 가자고 말해서일까. 단지 분에 못 이겨 포효한 후 본인이 가져온 락앤락을 그 자리에서 밟아 부쉈을 뿐이다. 우리는 그가 본인의 락앤락을 밟아 부수는 장면을 아무말 없이 바라보았다.


남자와 그의 아내는 그렇게 사라졌다. 그리고 나는 아무 말 없이 깨진 락앤락을 치웠다.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나를 막아서 주신 부점장님에 대한 감사함, 내가 오기 전까지 그 남자의 언어폭력을 고스란히 받아내야 했을 여사님들, 그리고 그 남자의 화가 아내에게 가지는 않을지 조금은 걱정되었다.


현장 노동자들은 날것의 악의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늘 있는 일은 아니지만 한 번쯤 마주할 때면 오래도록 박혀 사라지지 않는 감정이 된다. 나는 나를 막아줄 사람이 있었지만, 그런 사람조차 없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현장 노동자의 열악한 환경에는 그러한 악의도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마땅히 현장 노동자의 육체적 노동뿐만 아니라, 이러한 감정 노동에 대한 인식 개선이 무엇보다도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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