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의 전화 한 통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내용

by 토드

토요일 저녁의 대형마트는 항상 붐빈다. 가족 나들이 겸 대형마트를 찾는 사람들도 많고, 평일 동안 먹을 장을 한꺼번에 보는 이들도 많다. 행여 계산대가 밀릴세라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보다가 잠시 고객센터 사무실로 복귀한다. 허리가 끊어질 것 같다고 생각하며 휴대폰을 확인하려는데, 그새 사무실 전화가 울린다. 들어오면서 봤을 때는 고객센터도 붐비고 있었으니 아마 여사님들이 받을 수 없을 것이다. 다섯 시간을 내리 서 있었기에 외면하고 싶었지만 수화기를 집어 든다.


“네. ㅇㅇㅇ마트 ㅇㅇ점입니다.”

“거기…… ㅇㅇ점 맞어요?”


조금은 어색한 듯한 중년 여성의 음성이 수화기 너머에서 새어나온다. 네 고객님, 말씀하세요, 내 대답에도 여성은 한참이나 망설였다. 이어지는 긴 정적에 의아한 기분이 들 때쯤 그녀가 운을 뗐다. 약간은 긴장한 채 빠르게 이어지는 투였다.


“매니저님 맞아요?”


이 분이 지칭하는 매니저란 무엇일까. 경험상 고객 지원을 책임지는 책임자가 맞냐는 말이겠지. 파트장이 없는 한 내가 지금 이 시간의 책임자는 맞았기에 고객의 말에 조용히 긍정했다. 내 긍정을 들은 그녀가 다시금 말을 이었다.


“어제 내가 남편 먹을 소고기 사러 마트에 갔거든요, 한 8시쯤이었나, 12번 계산대였을 거야, 거기 카드만 되잖아요.”


시간대와 계산대 번호까지 정확하게 읊는 것에 불길한 예감이 든다. 거의 이런 경우는 컴플레인이다. 거스름돈이 잘못되었거나, 들어가야 할 할인이 안 들어갔다거나, 계산원의 응대가 불량했거나. 첫 번째나 두 번째의 경우는 cctv를 확인해보면 된다. 계산대 번호나 시간대를 확인하면 달린 cctv를 통해 대략적으로 확인이 가능하다. 이전에는 오천 원을 줘야 하는데 오만 원을 주는 실수를 한 적도 있다. (꼭 그럴 때는 연락이 안 온다) 하지만 마지막, 계산원의 응대가 불량할 경우는 실질적인 해결책이 마땅치 않다. 물론 상황을 파악한 후 분명히 경고를 주기도 하고 내부적인 패널티를 적용하기도 한다. 특히 폭언이나 객관적으로 보아도 불량한 응대의 경우 점장/부점장 선에서 나서 처리한다. 다만 문제는 해결하면 되지만 한 번 상한 사람의 감정은 쉽게 돌아오지 않는다. 그게 항상 문제였다.


상황은 파악해야겠지만 우선 고객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것이 중요했기에 조심스럽게 물었다.


“네, 고객님. 혹시 무슨 일 있으셨을까요?”

“그러니까 내가 계산을 기다리는데, 앞에 어떤 아저씨가 선 거야. 인상은 무지 순해 보이데. 근데 우리 계산대가 카드만 되는 계산대였거든, 현금은 안 되고.“


약간은 무슨 일인지 알 것도 같았다. 우리 매장에서는 빠른 계산을 위해 현금과 카드 계산대를 구분하고 있었다. 현금 계산대에서는 카드 결제가 가능했지만 카드 계산대에서는 현금 계산이 안 된다. 카드 계산대에 투입되는 계산원들은 우선 거슬러줄 현금이 없기도 하고, 한 번 받기 시작하면 뒤이어 계속 받아야 하기 때문에 카드 계산대의 의미가 없어진다. 다만 목이 터져라 카드만 가능하다고 말해도 현금을 내미는 고객들은 항상 존재했다. 이렇게 현금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게 신기할 지경이었다. 생각에 빠진 나를 두고 여성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그 아저씨가 현금을 쑥 내밀더라고. 그래서 그 계산원, 이름이 뭐더라, 송ㅇㅇ님이 말했어요, 여기는 카드 계산대라고. 그랬더니 갑자기 난리를 치데?“


여기서부터 나는 조금 혼란스러워졌다. 이 고객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아저씨에게 좀 더 친절하게 응대하지 못한 송 ㅇㅇ 여사님을 나무라는 걸까? 그것 때문에 본인 계산이 늦어졌다고? 이토록 기승전결이 잘 갖추어진 컴플레인은 처음이었기에 더 그럴지도 몰랐다. 그럼에도 나는 착실하게 고객의 말에 반응하고 있었다. 이 컴플레인이 어떻게 흘러가든 사과할 준비는 되어 있었다.


“그러셨어요, 고객님. 놀라셨겠네요.”

“놀랐다니까. 갑자기 소리를 막 지르고. 그 아저씨가 진짜, 그리고 말했어요. 이거 자기가 컴플레인 걸 거라고, 여기 책임자한테. 송ㅇㅇ 계산원님 이름 보면서.”


그리고 그녀는 다시 말했다, 무언가 아주 중요한 것을 전달한다는 듯이.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요, 송 ㅇㅇ 계산원님은 잘못이 없어요. 그 아저씨가 항의할 거라고 얼마나 날뛰는지, 큰일 났구나 싶었다니까.“


처음에 나는 그녀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원래는, 그 자리에서 말리고 싶었는데, 남자가 그렇게 날뛰니까 나도 무섭더라고. 그래서 이렇게 집 와서 전화한 거예요. 한참 생각이 나서. 그 남자가 전화할까 봐.”


말문이 막힌 내가 말을 고르는 중에도 그녀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여전히 처음과 같이 긴장한 투로, 하지만 좀 더 빠르게.


“내가 증인이에요. 송ㅇㅇ 계산원님은 진짜로 잘못이 없어요, 매니저님. 그거 알려주려고 전화했어요.“


행여나 본인이 전화하기 전에 컴플레인이 들어왔을까 걱정하는 그녀를 나는 그제야 안심시켰다. 그런 컴플레인은 들어오지 않았고, 상황은 파악해 봐야겠지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그럼에도 걱정이 되는지 그녀는 연신 계산원은 잘못이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이렇게 전화까지 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전화를 끊은 나는 한참이나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마음을 생각했다. 잘못이 없는 계산원이 억울하게 피해를 입을까 봐, 한참이나 생각하다가 결국 수화기를 집어 든 마음을. 일면식도 없는 타인을 본인의 시간을 내어 변호하는 마음을.


그녀가 변호했던 송ㅇㅇ 여사님이 마침 근무 중이었다. 상황 파악도 할 겸 나는 쉬고 있던 그녀에게 다가가 맥심커피 한 잔을 건네며 말을 걸었다.


“여사님. 어제 욕보셨다면서요? 고객이 소리 질렀다고.”

“아이고, 그 사람이 전화했어요? 나는 진짜…….“


정말 컴플레인이 들어온 것으로 오해했는지 여사님의 얼굴이 억울함으로 물들었다. 손사래친 후 나는 그녀에게 아까의 통화 내용을 말해 주었다.


“그 고객님이 몇 번이나 그러시더라고요. 송ㅇㅇ 님은 잘못이 없다고. 꼭 알아달라고.”

“아, 그랬구나. 기억 나요, 그 분. 고기 사셨던 것 같은데.“


한바탕 소란이 지나간 후 그 고객은 본인 차례 때 그녀에게 괜찮냐고 물었다고 했다. 그런 사람은 거의 없었기에 기억이 난다고 했다. 사실 남성 고객도 언성을 높였을 뿐 크게 마음을 다치거나 하지는 않았다는 말을 끝으로 여사님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러셨구나…… 감사하네.”


참 감사하다고 몇 번이나 중얼거리는 그녀의 곁에서 나는 그저 고개를 주억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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