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판매가 알려준 유통의 본질

상품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게 된 날

by 토드

마트 현장에 발을 들인 지 사흘째 되던 날이었다. 조끼를 입고 돌아다니니 자꾸만 고객들이 뭔가를 물어봐서 진땀을 빼기도 했다. 땅콩잼을 찾는 할아버지와 함께 잼 매대를 샅샅이 뒤진 적도 있었다. 마침내 할아버지가 원하는 잼을 찾아내어 건네드리니 감사합니다, 매니저님. 이라는 말 한 마디에 감동을 받기도 하는 시간들이었다. 현장에 있다는 건 질문을 받는 일이다. 고객들은 호기심 많은 어린아이처럼 계속해서 질문을 하고 (보통 위치에 대한 질문이 많다) 나는 하루종일 받은 질문을 적어 저녁마다 복기했다.


내가 근무했던 곳에서는 첫 발령받은 신입사원의 교육 차원으로 팀마다 돌아다니며 반나절 정도 업무를 체험하게끔 했다. 여러 점포로 발령받은 동기들의 단톡방에는 하루종일 치킨을 튀겼다, 초밥을 만들었다, 바나나를 진열했다 등의 말이 오갔다. 내 경우 농산 파트장님은 진열이나 일을 시키시기보단 과일, 채소의 품종이나 진열 원칙 같은 것들을 직접 가르쳐주셨다. 축산에서는 고기의 등급은 어떻게 나누어지는지 설명을 들었고 이미 잘린 고기들을 열심히 랩핑하는 업무를 맡았다. 본인도 오래되어 기억이 안 난다며 직접 방대한 자료까지 준비해 오신 축산 파트장님이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수산 코너에 갔을 때 나는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다. 일단 훅 끼치는 바다 냄새부터 압도적이었다. 어디선가 나타나신 여사님이 내게 비닐 작업복과 앞치마, 장갑을 건넸다. 떡 벌어진 어깨와 큰 키를 가진 수산 파트장님은 수산물에 대해 설명하는 대신 내 앞에 오징어들을 잔뜩 늘어놓으셨다. 익숙한 식재료라고는 해도 늘 수산 코너에 진열된 것만 보았던 그 때의 나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을 터였다.


“이게 오늘 팔리지 않은 오징어야. 엄청 좋은 놈들인데 아깝잖아.“


확실히 오징어들은 내가 봐도 오동통하고 실해 보였다. 당시가 오후 다섯 시쯤이었으나 아마 오늘이 지나면 상품으로서의 수명이 다할 터였다. 파트장님은 익숙하게 한 마리를 잡아 오징어를 반으로 가르고, 껍질을 벗긴 후 다리와 몸통을 분리했다. 통째로 한 마리가 있는 것보다 훨씬 양이 많아 보였고, 당장 식탁에 올라도 손색이 없을 것 같은 모습이었다. 파트장님이 손질한 오징어를 여사님이 다시 스티로폼 접시에 넣어 랩핑하자 완전히 다른 상품으로 보였다. 마법을 부리는 것 같은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보던 내게 파트장님이 식칼을 건넸다.


“자, 해 봐.”


“네?“


얼빠진 얼굴로 되물었지만 농담은 아닌 것 같았다. 우물쭈물 칼을 받아들고 오징어를 내려다보는 내게 파트장님이 다시 시범을 보여 주셨다. 반으로 가르고, 껍질을 벗긴 후에 다리와 몸통을 분리하는 과정이 어렵지는 않았다. 다만 늘 익숙한 집의 주방이 아닌 마트 수산 코너 안에서 비닐 작업복을 입은 채 하려니 어색했을 뿐이다. 정말로 내가 마트에 왔구나, 하는 실감이 났다. 꽤 잘한다는 칭찬까지 받으며 오징어를 손질한 후 직접 랩핑까지 마쳤다. 스무 마리 가량 되던 오징어를 전부 손질을 마친 다음 뿌듯해하고 있던 내게 파트장님이 다시 말했다.


“이제 나가서 팔아야지?”


“네?!”


무슨 소리지? 당황하던 나에게 냉장 매대 한 개가 주어졌다. 내가 손질한 오징어들이 잔뜩 깔리자 제법 그럴듯해 보였다. 파트장님과 함께 매대를 끌고 매장으로 나왔다. 마침 저녁거리를 준비하러 장을 보러 온 고객들이 몰려드는 시점이었다. 도저히 적응이 되지 않아 우물쭈물 서 있기만 하던 나를 돕듯 파트장님이 목소리를 먼저 높였다. 오늘 들어온 오징어입니다, 손질도 다 됐어요. 아주 싱싱해요. 그러자 마법처럼 그냥 지나치던 고객들이 한 명씩 발걸음을 멈추었다. 통으로 된 오징어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던 고객들이 손질된 것은 이리저리 살펴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한두 개씩 팔려나가는 것을 보자 나도 덩달아 신이 났다. 지나가던 고객들에게 목소리를 높여 오징어를 보고 가시라고 붙잡기도 했다. 어머니, 안녕하세요. 저녁으로 오징어볶음 어떠세요? 제가 방금 손질한 거예요. 들뜬 나를 보던 파트장님이 내친 김에 매장에서 안내 방송까지 해 보라고 하셨다. 대형 마트에 내 목소리가 울려퍼진다고? 엄청나게 긴장됐지만 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 고객센터로 여사님을 당당하게 따라나섰다. (그 이후 많이 하게 된다)


지금 하면 돼요? 제 목소리 들리는 거예요? 마이크 앞에 서서 입만 벙긋거리는 내가 답답했는지 여사님은 얼른 하라며 내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사실 너무 긴장해서 제대로 했는지, 아닌지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래도 신선했던 경험이었다. 그리고 수산 코너로 돌아온 나는 너무 목소리가 작아서 들리지도 않았다는 여사님들의 핀잔을 받았다. 그래도 듣고 온 고객들이 몇 명 있었다는 파트장님의 쉴드 아닌 쉴드는 덤으로.


그 날 손질된 오징어는 한 시간도 되지 않아 완판됐다. 빈 매대를 정리하던 내게 파트장님이 툭 말을 거셨다.


“상품은 우리가 어떻게 다루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거야. 고객에게 최대한 많은 면을 보여 줘야 해.”


나중에 안 것이지만 파트장님은 내 교육을 위해 앞치마, 비닐 작업복, 장갑까지 직접 챙겨두셨다고 했다. 신선 코너의 특성상 그날그날 상품 판매 현황이 달라지는데, 오전부터 어떻게 알려주면 좋을지 고민하셨던 것 같았다. 어차피 수산 코너로 발령받을 사원도 아니었는데 그렇게까지 해 주셨다는 게 감사했다.


그 날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났고 나는 두 개의 회사를 더 거쳤다. 전부 유통 업계였으며 해외출장, 브랜드사 미팅, 프로모션 기획 등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아우르는 업무를 맡았다. 당시 직매입이라는 용어도 몰라 헷갈려하던 신입사원 때에 비교하면 큰 변화다. 다만 출근 삼 일차에 경험했던 한 시간 남짓의 수산 코너야말로 유통의 본질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판매하는 상품의 다양한 면모를 인지하고 이를 끌어내는 것. 그리고 그것이 고객들에게 잘 와닿을 수 있게 연결하는 것.


언제나 답은 현장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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