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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취향백과 27화

고작, 구스다운 무게만큼의 말

by 오늘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은 하지 않는 사려 깊은 인내심을 좋아합니다.

어떤 말을 하느냐 하는 문제는 굉장히 어렵고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솎아내어 한 마디, 한 마디를 골라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 않아도 될 말'은 아이러니하게도 듣는 사람에게 하여금 엄청난 전달력과 파급력을 가집니다. 심지어 원래 의미의 강도보다 훨씬 세게 전달되곤 하지요. 그래서 그 의도를 오해하기 쉽습니다. 대부분 상처가 되는 말들은 이 '하지 않아도 될 말'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걸 어떻게 아느냐 하면, 내가 상처받았던 거의 모든 비수 같은 이야기들은 말하는 사람들의 마음에서는 뭉툭하게 그냥 툭-하고 튀어나왔던 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의도가 없기에 왜 말을 그렇게 하냐고 따져 물을 수도 없어 억울하고 서러웠던 말들.


그래서 나는 나름의 거름망을 가지고 속에서 스멀스멀 솟아나는 말들을 애써 골라냅니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추임새, 음절 조사 같은 사소한 것들이 내 진심을 흐리게 하거나, 듣는 사람의 마음에 콕 박히게 된다면 그 말을 한 순간을 두고두고 오랫동안 후회하게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의도를 가지고 명확하게 전달하는 아픈 말이라면 시원하게 지르고 내 속이라도 후련할 텐데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해서 후회하는 것은 마치 초등학생 때 나무로 된 교실바닥에 왁스칠 하다가 손에 박힌 나무가시처럼, 잘 보이지도 않고, 빼내는 것도 어려운 주제에 계속 따끔거리는 느낌입니다. 원래 그런 상처가 더 거슬리기 마련이지요.


그래서, 내 말의 무게는 매우 가볍습니다.

굳이 그 무게를 현실의 무언가와 비유하자면 구스다운 정도의 무게일 겁니다.

무겁고 뾰족한,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들은 이미 한 번 걸러내었기 때문에 솜털처럼 가벼운 말들만 둥둥 떠다닙니다. 가벼워서 부담스럽지는 않지만 시나브로 도톰히 쌓였을 때, 그 어떤 것 보다 따뜻한 온도를 가질 수 있는 깃털 정도의 무게의 말만 하려고 무던히도 노력합니다.


가끔 마음이 무거워 덜어내고 싶은데, 상대가 위로랍시고 쏟아내는 말들이 되려 짐스럽고 시릴 때가 있습니다. 꼭 묵직하고 멋진 말이 위로가 되는 건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가볍지만 쌓이면 따뜻하고 위안이 되는 무게의 말들을 골라하려고 합니다.


누군가는 이 발라내고 솎아낸, 구스다운 정도의 가벼운 무게의 말 덕에 조금 더 버텨 볼 힘을 얻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구스다운,

무게는 가벼워도, 그걸로 만든 패딩이고 이불이고 꽤나 비쌉니다.

그만큼 쓸만하다는 거겠지요.


부디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덜어낸 내 가벼운 말의 무게도 그러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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