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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취향백과 30화

예민예찬

by 오늘

예민한 사람을 좋아합니다.


아! 오해의 소지가 있을 듯해서 좀 더 명확히 하자면 사소한 변화에도 안테나가 반응하는 사람,

그러니까 감정이나 분위기나 공기 같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미묘하게 흐름이 달라지는 것들에 대해 다른 사람보다 민감한 사람.

단순해 보이는 일들에 숨겨있는 복잡한 의미들을 알아채는 사람.


그러려면 속으로 내 생각 말고도 얼마나 많은 이의 심정으로 감정이입을 해야 하는지, 몇 번이고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보아야 하는지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스치듯 던지는 한마디 말에도 벌써 몇 번이고 상대의 마음을 시뮬레이션해보고 가장 따뜻하고, 상처받지 않을 최적의 모범답안을 꾸려서 던지거든요.


상대방의 표정에서 몇 겹으로 쌓여있는 가능성을 보는 사람, 흐려진 말끝에서 망설임을 읽어낸 사람.

이런 예민한 사람들은 생각이 많고 속을 꺼내 보이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지라 종종 의뭉스럽다거나, 속을 모르겠다는 오해를 받곤 하지만 세상만사 삼라만상을 소중히 여기고 조심히 다루는 태도로 대하기 때문에 복잡한 회로가 오래 돌아가는 것일 뿐, 누구보다 따뜻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이 좋습니다.

그런 복잡하고 귀찮은 일들을 기꺼이 해내야 마음이 편안해지는 예민함을 예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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