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속이 아닌 경험으로, 나를 증명하다.
"온라인 마케팅 관련해서 강사를 추천해 달라고 하는데 생각나서 연락했어요, 혹시 관심 있으신가요?"
어느 날 갑자기 날아온 지인의 메시지.
십수 년 간 경험해 온 직장생활을 경험을 언젠가는 공유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퇴직 이후 줄곧 했지만 아직 구체적인 밑그림도 없는 상태였는데, 이렇게나 급작스러운 기회라니.
"백수라 뭐 안 할 이유가 없어서, 좋죠!"
그렇다, 안 할 이유가 없었다.
남는 게 시간인데, 그게 아마도 내가 가진 것 중 가장 비싼 것 아닌가. 어영부영 그 시간을 축내는 것보다 이렇게 엉겁결에 떠밀리듯 회사 밖의 일에 한 발 내디뎌 보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어서 큰 고민 없이 하겠노라 답장을 보냈다. 답장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강의 주최 측에서 연락이 와서 강의와 관련된 설명과 더불어 메일로 관련 서류들을 보내달라 요청했다. 구직을 위한 이력서는 써봤는데, 강사로서의 이력서는 또 처음이었다. 게다가 퇴직으로부터 거의 1년이 다 된 시점에서 마지막 이력인 전 회사의 이름 뒤로 시간만큼 길어진 공백이 보이는 듯했다. 그 사이에 나는 많은 것을 얻었지만, 그렇다고 거기에 '2024.08~2025.06 필라테스 주 5회, 독서 주 1회 몸과 마음 튼튼 획득'이라고 적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어쩔 수 없다. 그 공백을 채우는 것은 자격지심이거나, 아니면 스스로에게 당당한 나 자신이거나 둘 중 하나이고 이왕이면 후자가 나으니까. 서류들을 첨부한 메일 본문에 아무도 묻지 않았지만 장황하게 적어본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그다지 당당하진 못했던 모양이지-
안녕하세요, 오늘입니다.
말씀 주신 양식 작성완료하여 송부드립니다.
지난 2024년 7월 퇴직 이후 이직 하지 않고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 소속은 없는 상태로,
소속회사 및 직위 등의 항목은 공란으로 두었습니다.
며칠 뒤 주최 측에서 강의 안내 관련 다시 연락이 왔고, 통화의 마무리에 우려했던 질문이 이어졌다.
"그런데, 그럼 지금 소속이 없으신 상태세요?"
희망퇴직 고민을 하던 시점부터 나의 불안감을 자극했던 바로 그 상황. 명함 없는 자기소개에 대한 공포. 그렇다고 얘기하고 '아하'라고 이어진 주최 측 담당자의 목소리에 나의 쓸데없이 섬세하고 장황한 상상력이 이때다 싶어 나서려는 것을 애써 모른 척하고 통화를 끝냈다.
명함이 없다고 내 십수 년 커리어가 없어지는 건 아니다. 그냥 나는 이 세계에서는 그저 낯선 사람일 뿐. 이제 내가 할 것은 내 노하우를 잘 녹여서 잘 전달할 수 있게 강의날까지 준비하는 것뿐.
오랜만에 노트북 앞에 앉아 PPT를 열자 묘하게 신났다.
성과보고, 전략보고, 신사업 제안, 본부 오픈톡 자료, 행사 결과 보고 등등... '보고 또 보고'의 연속이었던 회사원 시절 지겹게 열었던 프로그램인데 네모난 백지화면을 보니 이걸 어떻게 채울까 막막하면서도 신이 이 났다. 아, 나는 자료나 템플릿 만드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네. 근데 이제, 내 생각과 다른 내용을 채우고 그걸 내 생각인 것처럼 포장해야 하는 과정이 힘들었던 거구나.
신명 나게 도형을 넣고, 텍스트 자간을 조정하고, 장표를 넣고 -
한 장씩 채워가는 피피티에 자신감도 점점 올라가고 있었다.
내용은 과거 이커머스 MD 생활을 하면서 했던 미팅에서 겪었던 에피소드들을 바탕으로 했다. 마침 강의 대상도 1인 창업자, 예비 창업자이니 기존의 협력사 미팅에서 보고 느꼈던 점들을 중심으로 풀면 어렵지 않게 전달될 수 있을 것 같았다. 2011년부터 하루에 많게는 4-5회씩 수년 간 해왔던 미팅이니 잘 녹여보자. 나는 멋들어지진 않아도 초등학생도 알아들을 수 있게 풀어서 전달하는 것에는 자신이 있었다.
오랜만에 장표를 만드는 나, 발표 리허설-이라고 하면 거창하지만, 나름 혼자 열심히 했다-을 하는 나. 꽤 그럴싸해서 마음에 들었다. 사실 나는 있어빌리티를 굉장히 중시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강의를 준비하면서 이래저래, 나에 대해 새롭게 알아가는 중이었다.
이윽고, 강의 당일.
강의실은 아담했고, 참여인원은 예상보다 적었다. 그래도 이상하게 긴장됐다.
퇴직 이후 나는 주로 필라테스 선생님, 문인화 선생님, 의사 선생님... 수많은 선생님들과의 소통을 했기에 발화자가 아닌 청자의 역할로 대화해 왔다. 2024년 7월 서비스 개선 보고가 나의 마지막 발표이력인 데다가 강사 흉내를 내 본 것은 기억도 가물가물한 20대 초반. 산학협력 인턴쉽에서 받았던 사내 서비스 강사 교육이 처음이었다. 아이스 브레이킹, 단정한 애티튜드, 자신감 있는 발성과 명확한 발음, 표정. 만약 그때 결혼을 빨리해서 아이를 낳았다면 적어도 중학생 한 명의 인생은 추가되었을 긴 시간의 기억을 더듬어 강의를 시작했다.
강단에 서니 강의 참석자들의 얼굴이 정면으로 보이는데, 기분 탓인지 너무 시큰둥해 보인다. 회심의 유머에도 기대만큼 웃음이 터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에게 주어진 2시간을 채워야 하기에 정신을 바로 차리고 준비했던 내용을 끝까지 소화했다. 다행히 실수 없이, 하고 싶은 내용을 모두 전달했다. 잘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끝냈다는 게 중요한 거라고 생각하며 주최 측의 사무실에서 인사를 나누는데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혹시 다음번에 이번 강의의 심화버전으로 한 번 더 부탁드려도 될까요?"
떠밀리듯 얼결에 불려 간 자리, 회사 밖에서 명함 없이 마주한 첫걸음은 어쩌면 예상보다 나쁘지 않았던 모양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