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2024년 8월, 송정 장명선 질문하고 단연 오늘 답하다.

by 오늘

나는 어떤 오만과 편견을 가지고 있나요?


나는 원래 잘하는 사람

"나는 원래 잘하는 사람이다" 라고 최면처럼 스스로 세뇌하는 버릇이 있었습니다.

그건 바람이 불면 오히려 타오르는 불씨처럼, 힘든 상황에 직면해 의지가 꺼지려고 할 때마다 오히려 독기를 품고 어찌되든 해내게 하는 주문같은 것이었습니다. 그 시작이 언제부터인지 되짚어보니, 대학입시에서 낙방해 재수를 하게 된 때부터 인 것 같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경험한 좌절감과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한 채 소속없이 보낸 1년의 생소한 불안감이, 나는 한참 뒤쳐졌다는 생각을 들게 했고 그 탓에 다른 사람들의 시간을 좇아 간극을 없애기 위해 더 잘 해야 한다는 강박이 생긴 모양입니다. 사람들이 인정하는 기준에 달하지 못하면 쓸데없는 사람이 된다는 불안 섞인 편견도 그 때 생긴 것 같습니다.


글로 쓰고 보니 굉장히 반성문같네요.


어쩌면 '나는 원래 잘하는 사람'이라는 그 오만한 마음을 방어기제로 삼았던 것 같습니다. 10가지의 과제를 해결할 때, 못해도 평균 90점은 받아야 하는것. 그 기준에 달하지 못하면 실패한 사람이 된다는 것. 뭐든지 아등바등 해낼 수 밖에 없던 시간들이 어쩌면 저의 오만이자, 편견이었습니다.


얼마 전, 술만 마시면 우울하기 짝이 없고 이유없이 몸 여기저기가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건강검진 결과에 에나온 그래프를 보고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피로도 항목에 새겨진 '매우 나쁨'지수 만점인 제 기록을 마주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만점 인생에 목말라 했는데, 결국 엄한데서 만점을 찍고 말았습니다.

그 이후 한참을 고민하다가 얼마전 십수년을 해 온 직장생활을 스스로 그만두고 나올 결심을 했습니다. 스스로 갇혀있던 오만과 편견을 내려놓기로 했습니다.


살다보면 나만 잘한다고 좋은 결과가 나오는 일은 많지도 않을 뿐더러, 어쩌면 지금은 실패라고 결론지은 경험이 시간이 흘러 어느 때에는 도움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깨닫는 중입니다.

수많은 일이 점처럼 모여 선으로 흐르는 인생에서 점 하나 정도 삐끗하더라도 웬만큼 망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삐끗한 순간이 끝이 아니기도 하구요. 삐끗한 순간도 결국은 찰나입니다.

더구나 돌아보면 사람들은 나의 사소한 성패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습니다. 각자가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주인공이니 나는 그들 인생에서는 엑스트라15 정도 되기 때문입니다.


평균 90점을 받기 위해서는 꼭 전과목 모두 90점을 받을 필요는 없습니다.

어떤 과목은 80점이더라도 다른 과목에서 100점을 받으면 평균은 똑같은 90점이거든요.


이제 가진 것은 시간이 전부인 백수도 되었겠다, 스스로 갇혀있던 오만함과 한 번의 실수가 평생의 성적표를 규정짓는다는 편견을 벗어나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할 지 좀 더 넓은 시야로 고민해 보기로 합니다.


20250922_112949.jpg 송정화실 회원전 아워유니버스

2025년 송정화실 회원전 <Our Universe>의 작품준비를 위해 2024년 6월부터 시작된 송정 장명선 선생님의 질문에 대한 답을 기록한 단연 오늘의 작가노트에서 발췌, 편집함. 송정화실의 아워 유니버스 전시 도록은 전국 온오프라인 대형서점에서 구매 가능합니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7485231

이전 06화순수의 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