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없이 속았다고요? 당신도 달라집니다
몰랐다. 타고난 재능을 가진, 소위 천재라 불리는 예술 신동은 연습 없이 저절로 잘하는 줄로만 알았다. '천재'나 '신동'같은 단어는 언제나 그런 환상을 품게 하니까.
결국, 어느 날 알게 되었다. 꾸준한 연습만이 타고난 재능을 빛나게 한다는 걸. 천재 첼리스트에서 지휘자로 변신한 장한나는 한 티비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매일 연습하기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설파했다.
"하루를 연습하지 않으면 내가 알고, 이틀을 연습하지 않으면 비평가들이 알고, 삼일을 연습하지 않으면 전 세계가 다 안다.”
신동에게도, 천재에게도 숨 쉬듯 매일 하는 연습만이 살길. 한데, 이 매일 연습하기의 기술은 비단 프로 연주자에게만 통하는 것이 아니다. 누구라도 연습을 생활화한다면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진다. 평생 김양식을 하던 피아노 까막눈에서 지금은 일본 전역에서 연주 초청을 받는 아마추어 피아니스트 ‘도쿠나가 요시아키’의 이야기가 그렇다.
그는 피아니스트 후지코 헤밍이 연주한 리스트의 <라 캄파넬라>를 우연히 듣게 된 후 이 곡을 직접 치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혔다고 한다. 그 때 그의 나이 쉰 두 살. 피아노를 전공했던 그의 아내는 "악보조차 읽지 못하는 당신에겐 불가능한 일"이라며 선을 그었다고. 그도 그럴 것이 <라 캄파넬라>는 피아노 전공자들 사이에서도 연주하기 까다로운 난곡으로 꼽히기 때문.
한데, 피아노 연주에 진심이었던 그가 포기할쏘냐. 악보 대신 피아노 건반을 짚어 가르쳐주는 <라 캄파넬라> 연습 동영상을 유튜브에서 찾아낸 것. 그 날로 매일 건반 하나씩을 누르며 반복한 결과, 끝끝내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 그토록 바라던 <라 캄파넬라>를.
그의 이야기는 <중년 남자들입니다만 피아노에 목숨 건 이유가 있죠>라는 제목의 《한겨레21》 기획기사를 읽으며 알게 되었다. 후일담을 전하자면, 2024년 여름에는 그의 삶을 다룬 영화도 개봉 한다고 전해진다. 여전히 김양식을 하고 있지만 어엿한 연주자로도 무대에 선다. 그는 기적 같은 일이라며 탄복했다. 근데 그 기적? 스스로 만들었다. 매일 건반 하나씩을 눌렀던 생활 속 작은 변화로.
그러고 보니 나도 '매일매일 조금씩'의 힘을 빌어 전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다. 기적 같은 변화였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답할 수 있을 정도로.
4년 전, 번아웃을 방치하다 난데없이 희귀병 환자가 되었다. 버스 계단을 오르지 못하고서야 그간 기어가듯 걷고 있었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뼈가 녹는 병'이라는 의사의 말에 놀라 식음을 전폐하기도. 살면서 단 한 번도 입맛을 잃어본 적이 없었으니 그 충격의 정도를 짐작하시리라.
당연히 몸만 아팠을 리가 없다. 낙숫물이 모이면 댓돌을 뚫듯 크고 작은 스트레스가 모여 마음도 갉아먹고 있었다. 도넛처럼 구멍 난 마음에는 우울감이 차올랐다.
느닷없이 요양인이 되었다. 뼈도 녹고, 마음도 녹는 고통을 안고, 벼랑 끝에 선 기분으로 1년을 그냥 흘려보냈다. 그 때의 나는 최선을 다해 삶에서 '나 자신'을 지워버리기 위해 애쓰며 살았다.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싶었기에.
꺼질 듯 한 촛불 같았던 나를 다시 타오르게 만든 건 '읽기'와 '쓰기'를 생활로 들이면서다. 책을 읽으면서 상처 난 마음에 새살이 돋아났고, 기록하기 시작하면서 희미해진 나를 선명하게 되찾았다.
변한 것이다. 갑자기는 아니고 서서히. 꼬리에 꼬리를 물며 떠오르던 부정적인 생각이 사라졌다. 무기력했던 몸과 마음에도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자연히 삶을 바라보는 시선도 바뀌었다. 모르는 새, 마음 근육이 자라나고 있었다.
그랬더니 더 이상 마음 따위에 휘둘리지 않았다. 약 먹기를 거부했던 마음이 돌아섰다. 꼬박꼬박 제 시간에 약을 챙겨 먹었다. 방구석에 누워서 눈만 뜨면, ‘내 인생은 끝났다.’라고 외치던 극단적인 마음도 멀리 달아났다. 대신 집 밖으로 나가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환해졌다. 어둠의 자식처럼 요양생활을 한 지 1년 만에 말이다. 남 탓과 내 탓을 하는 시간이 아깝게 느껴졌다. 원망과 자책하는데 모든 시간을 쓰던 생활에 안녕을 고했다.
목적 없이 그저 읽고 썼을 뿐인데 확연히 달라졌다. 새로 태어났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대단한 방법은 없었다. 그저 매일매일 책 읽기를 실행에 옮긴 것이 전부다. 참, 마음가짐은 달랐다. 한 줄만 읽어도 독서, 한 단어만 써도 기록이라 믿으며 스스로에게 관대함을 베풀었다.
한 줄 읽기로 시작했지만 곧 한 줄이 한 문단이 되고, 한 문단이 한 챕터가 되고, 한 챕터가 한 권을 읽을 수 있도록 도왔다. 이는 의지와 상관없이 시간이 해결해주는 일. 독서가 생활이 되면, 그러니까 '생활독서'를 하면 저절로 된다. 누구든!
독서생활이 아니라 생활독서라 부르는 이유가 궁금할 수도 있겠다. 밥 먹듯 당연하게 매일 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생활독서라 이름 붙였다. 예술을 내 곁에, 체육을 내 곁에 두는 ‘생활예술’, ‘생활체육’처럼 내 곁에 두고 매일하는 독서라는 의미도 담았다.
생활독서를 통해 잃어버렸던 생활 감각을 되찾았다. 그것이 마중물이 되어 나를 살렸다.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릴 뻔 했는데, 지금 온전히 두 발을 딛고 서 있으니 작은 기적이 아닐 수 없다. 나를 되찾는 일, 나로 사는 일 말고 무엇이 더 중요한 일인가 싶다.
생활독서는 힘이 된다. 어떤 상황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나다운 생활을 유지하도록 돕는다. 생활독서는 나를 지켜준다. 흔들림 없이 나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다고? 어떻게 살아야할지 막막하다고? 번아웃으로 매일매일 의미 없이 노잼이라고? 그렇다면 당장 시작하시라. 밑져야 본전. 아니 솔직히 말해, 당신은 하나도 잃지 않고 무엇이든 얻게 될 뿐이다. 생활독서야말로 남는 장사라니까요.
오늘은 생활독서를 만난 첫 날이죠. 책을 읽지 않아도 됩니다. 마음가짐만 가다듬어 볼게요. 내 곁에 독서를 두겠다는 마음, 내 생활에 독서를 들이겠다는 마음이면 충분합니다. 무엇이든 생활이 되면 누구나 달인이 되더라고요. 독서가 생활이 된다면 우리도 달인이 되지 않을까요? 아, 물론 약간의 요령이 필요하긴 합니다. 그건 제가 차근차근 알려드릴게요.
생활독서와 첫 인사, 하셨죠? 그렇다면 오늘 할 일은 끝!
이소요. 생활독서를 시작한 후, 새 삶을 살게 된 기념으로 스스로 지은 이름. 소요(逍遙)하듯 살겠다는 의지로 개명을 결심했으나 필명으로만 쓰고 있다.
번아웃을 방치하다 희귀병 환자가 되었고, 요양생활 3년 만에 번아웃과 작별했다. 인생은 생활력이 전부라 믿으며 생활력 코칭을 전파한다. 생활력이란, 내 생활을 돌보고 지키는 힘. 사명감을 갖고 생활력을 높이는 생활밀착형 자기돌봄 콘텐츠를 만드는 데 골몰하는 중이다.
한 때 3권의 여행 책을 썼고, 생활력을 주제로 퍼블리에 글을 썼다. 당신의 번아웃만큼은 온 몸으로 막고 싶다는 마음으로 <번아웃, 아웃 코칭 워크숍>을 이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