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왜 읽어요? 스마트폰이 더 재밌는데?
1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눈 뜨고 있는 내내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산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해봤기에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다. 내가 사라진다.
살아있지만 살아있다고 할 수 없고, 존재하지만 존재한다고 말할 수 없는 어떤 상태에 머문다. 스마트폰의 사각 화면과 현실 사이를 떠도는 유령 같다.
처음엔 좋았다. 터치 한 번이면, 순식간에 괴로운 현실을 잊게 해줬으니까. 알아서 척척 내 입맛에 맞는 콘텐츠를 대령하는데 마다할 재간도 없었고. 게다가 흥청망청 시간을 써버리며 막 살겠다는 요양인의 반항심도 충족시켜주었다.
여기에 더해, 휴대폰 게임까지 시작했더니 실시간으로 짜릿함과 즐거움이 충전되었다. 이런 별천지가 있나 싶었다.
문제는 스마트폰 ‘폐인’ 단계를 넘어 ‘노예’ 단계에 접어들면서부터다. 휴대폰을 손에 쥔 채로 휴대폰을 찾았다. 컵에 물을 따라놓고도 냉장고 앞에 왜 서 있는지 기억나질 않았다. 수시로 물건을 떨어뜨리거나 문에 발을 찧었다. 생활이 불편 해질 만큼 건망증이 심해졌고, 주의력이 낮아졌다.
모든 일에 조급증이 생겼다. 사진이나 영상이 곧바로 뜨지 않으면 기다리지 못하고 뒤로 가기 버튼을 눌렀다. 2배속으로 영상을 재생해도 빠르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답답했다. 결과가 눈앞에 바로 나타나지 않으면 짜증이 나고 화가 치밀었다.
충동적으로 배달 음식을 시켰다. 식사를 하는 동안에도 시선은 스마트폰 화면에 고정되어 있었다. 방금 음식을 먹었는데도 허기가 느껴졌다. 연이어 또 음식을 주문했다. 끊임없이 먹어도 헛헛한 마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먹어서 채워지지 않는 공허감은 충동구매로 이어졌다. 뜯지 않은 택배 박스를 현관 앞에 쌓아둔 채 눈을 감고 외면했다.
무엇보다 더 큰 문제는 나 자신을 대하는 태도였다. 스스로를 한심하다고 여겼다. 자꾸만 그렇게 생각하니 정말로 하찮은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막살겠다고 했지, 하찮은 사람이 될 생각은 없었기에 위기감을 느꼈다. 찰나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렇게 불현듯 독서와 쓰기를 내 생활에 들였다. 시작하자마자 난관에 부딪혔다. 일단 종이책을 붙잡고 있는 일이 번거로웠다. 한 페이지에 글자가 너무 많았고, 읽고 또 읽어도 페이지가 줄어들지 않았다. 한참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겨우 5분이 지난 걸 알게 됐을 땐 경악하기도 했다.
그런데 말이다. 달랐다. 한 줄만 읽고 책을 덮든, 목차만 읽고 책을 덮든, 책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잠에 들었든 더 이상 자책하지 않았다. 휴대폰에서 손을 떼고 책만 쥐었을 뿐인데도 그랬다.
10분 동안 휴대폰을 들여다보았다면 느끼지 못했을 '뿌듯함'을 10분 책 읽기를 통해서는 느꼈다. "나 왜 기분이 좋아지지?", "나 왜 무언가를 하고 싶지?", "나 왜 자꾸만 나를 칭찬해주고 싶지?" 그저 책만 읽었는데도 좋은 감정과 자주 마주쳤다.
남의 생각에 밑줄을 긋고, 나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마음에 담긴 문장은 따라 썼고, 오늘의 나를 잊지 않기 위해 기록했다. 매일 새로워지는 내가 더 없이 소중하게 느껴졌기에.
그제서야 보였다. 스마트폰을 하며 느끼는 재미는 '일회용'이었다는 걸. 그러니 음미할 새 없이 신기루처럼 번쩍하고 사라져버렸겠지.
휴대폰 노예 상태로 시작해 책 한 권을 다 읽는 데는 정확히 한 달의 시간이 필요했다. 첫 날부터 일주일이 제일 힘들었다. 이후로는 좀 수월해졌다. 천근같았던 책 무게도 거슬리지 않았고, 읽는데도 속도가 붙었다.
2주 차엔 밀려드는 졸음과 사투를 벌였다. 3주차부터 슬슬 읽는 재미가 찾아왔다. 끝이 궁금해져 책을 덮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었다. 덩달아 한 번에 책을 읽는 호흡이 길어졌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내 뱉은 말. “이거 재밌네.”
신기했던 건 이 재미라는 감정이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햇빛에 비치어 잔잔하게 빛나는 윤슬처럼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아 잔물결을 일으켰다. 내 생활에도 여운을 남겼다. 시킨 이도 없는데, 책의 세계와 연결된 채 종종 ‘나라면 어땠을까?’와 같은 질문을 던지며 답을 찾으려했다. 생각할 필요가 없어 편리하다 여겼던 스마트폰 세계와는 또 다른 세계를 맛보았다. 세상엔 능동적인 인간으로 살아가는 재미도 있더라는.
굳이 우열을 가리고 싶진 않다만 겪어보니 이런 점이 달랐다. 스마트폰으로 소비하는 재미는 오래가지 않는다. 가장 편한 자세로 떠먹여주는 재미를 받아먹기만 하는데도 이상하게 소진되는 기분이 든다. 잘못 살고 있다는 생각에 죄책감이 들기도 한다. 내 노력이 들지 않으니 쉽게 취하고 버려도 아깝지가 않다. 한 마디로 성의 없는 재미다.
독서로 얻은 재미는 노력해서 얻었기에 귀하다. 몸과 마음을 흔드는 그 울림을 잃고 싶지 않아서 나도 모르게 온 마음을 다해 대한다. 정성스러운 재미다. 책을 읽고 만나는 각양각색의 여러 재미를 수집하는 또 다른 재미도 누릴 수 있다. 복리이자처럼 재미에 또 다른 재미가 자꾸자꾸 불어나는 것. 재미에 재미가 더해져 더 재미있는, 재미로 가득 찬 생활이 된다.
생활독서를 하며 가장 아끼는 재미는 나 자신을 알아가는 재미, 나 자신을 이해하는 재미다. 두 재미가 차곡차곡 쌓인 날엔 ‘스스로를 좀 아끼며 살아야겠다.’라는 생각이 불쑥 터져 나오기도 한다. 그렇게 나는 매일매일 조금씩 재미있고 단단한 사람이 된다.
당신이 어떤 재미를 선택하는 사람인지 말해준다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지 않을까. 이제 나는 스마트폰 폐인, 스마트폰 노예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책 읽는 재미, 몰랐으면 몰랐지 알고 나니 멈출 수가 없어서!
생활력 코칭을 하며 여러 고객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열에 아홉은 '스마트폰 사용 시간을 줄이고 싶다'는 생활 목표를 말합니다. 실천하기가 정말 쉽지 않다는 말씀을 수없이 듣습니다. 저도 모르는 바가 아니고요.
오늘은 두 가지 질문을 드릴게요. 최대한 솔직하게 대답해 주세요. 먼저, 하루에 스마트폰을 몇 시간이나 사용하시나요? 시간 때우기로 ‘그냥’하는 시간이요. 정확한 사용시간을 모른다면, 오늘부터 삼일 동안 스마트폰 사용시간을 측정해주세요. 결과를 보고 놀라실 수도 있어요. 생각보다 더 많은 시간을 의미 없이 쓴다는 걸 알게 되면서 말이죠. 저는 72시간을 뜬 눈으로 스마트폰 화면만 바라봤던 일이 비일비재했음을 고백합니다.
다음은 스마트폰을 하면 좋은 점이 무엇일까요? 떠오르는 대로 편하게 말씀해주세요. 말씀해주신 이점을 누리려면 하루에 얼마만큼을 사용하면 될까요? 나에게 꼭 필요한 스마트폰 사용 시간을 고민해주세요. 오늘은 여기까지, 끝!
이소요. 생활독서를 시작한 후, 새 삶을 살게 된 기념으로 스스로 지은 이름. 소요(逍遙)하듯 살겠다는 의지로 개명을 결심했으나 필명으로만 쓰고 있다.
번아웃을 방치하다 희귀병 환자가 되었고, 요양생활 3년 만에 번아웃과 작별했다. 인생은 생활력이 전부라 믿으며 생활력 코칭을 전파한다. 생활력이란, 내 생활을 돌보고 지키는 힘. 사명감을 갖고 생활력을 높이는 생활밀착형 자기돌봄 콘텐츠를 만드는 데 골몰하는 중이다.
한 때 3권의 여행 책을 썼고, 생활력을 주제로 퍼블리에 글을 썼다. 당신의 번아웃만큼은 온 몸으로 막고 싶다는 마음으로 <번아웃, 아웃 코칭 워크숍>을 이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