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까진 못 봤다. 번아웃이 온지도 모른 채 미련하게 버티고 버틴 나 같은 사람. 무려 3년 동안 모르는 바람에 결국 병에 걸리고야 만 사람이 나다. 응급실을 2번이나 다녀왔음에도 심각성을 못 느꼈던 사람도 나. 산정특례대상자 등록을 하던 날에도 속으로 되물었다. "내가 왜?" <전국 미련함 경진대회> 같은 게 열린다면 1등은 따 논 당상일 테다.
아깝다.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같은 책이 진작 나왔더라면 나도 죽을 만큼 최선을 다하지는 않았을 텐데. 그땐 나도 한창 일할 때였고, 다들 젊음을 끌어다 쓰며 일하는 분위기였다.
돈 받고 하는 일을 허투루 할 순 없다는 책임감에 완벽주의까지 이고 지고 다니느라 매일이 고단했는데도 멈출 줄을 몰랐다. 멈추는 법을 몰랐기에 그랬다.
번아웃증후군은 몸과 마음의 에너지를 몽땅 다 써버릴 때 찾아온다. 거의 유일한 해결법은 몸과 마음을 잘 쉬게 해주는 것. "쉬면 되지",라고 간단히 말할 문제가 아니다. 쉽지 않다. 쉽지 않아! 일 권하는 사회에 살았지, 휴식 권하는 사회에 살지 않았으니까.
해서, 주치의 선생님이 진료를 마무리할 때마다 건네던 "잘 쉬셔야 해요."라는 말에 상처를 받기도 했다. 쉬라는 말이 꼭 "당신은 이제 더 이상 쓸모가 없는 인간입니다."라는 말처럼 들렸기 때문에. 아파죽겠다는 말도 삼켰다. 당연히 쉬지도 않았다. 쓸모없는 인간이 될 바에야 차라리 도망치고 싶어서 ‘휴대폰 폐인’을 택했을지도 모르겠다.
더 이상은 아니다. 허술하고, 난리법석이었던 요양생활을 거쳤지 않나. 그 사이 나는 몸의 휴식과 마음의 휴식을 구분해서 쉴 줄 아는 사람이 되었고 또 몸과 마음의 에너지양을 세밀하게 관찰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생활독서 덕분이다. 나만 불행하다는 생각에서 벗어났다. 책 속에서 마주친 수많은 사람들이 너만 그런 게 아니라며 소리쳤다. 100년 전의 어떤 사람도, 한 나라의 왕도, 공주도, 장군도, 부자도, 심지어 신조차도 나와 같은 이유로 혹은 또 다른 이유로 시련의 늪을 헤매었다고 말해주었다.
슬퍼도, 괴로워도, 아파도 기어코 자신의 삶을 살아낸 용기 있는 이들의 이야기에 마음이 뜨거워지는 위로를 받았다. 나처럼 세상을 외면하려는 사람들을 돕고 싶은 마음이 솟구쳤다. 좋은 건 언제나 나누고 싶어 지는데, 독서는 그런 마음을 움직이게 하니까.
책과 함께 울었고 또 웃었다. 그러다 벌떡 몸을 일으켰다. 목욕을 하다 "유레카"를 외치며 욕조 밖을 뛰쳐나갔던 아르키메데스처럼 나에게도 그분이 왔던 것.
잘 쉰다는 건 '비우는 일이 아니라 다시 잘 채우는 일'이었네.
완강히 휴식을 거부하던 심경에 변화가 일어났다. 당연한 일이었다.
독서가 왜 휴식이 될까? 좋은 건 알겠는데 왜? 왜? 대체 왜? 휴식이 된다는 건지 납득하지 못했다. "독서도 좀 하시고요. 운동도 하시면 좋죠."와 같은 처방을 흘려들은 이유다. 꼭 <진료실 인사치레 필수 문장 100> 중에서 몇 개를 꺼내다 쓴 느낌 같지 않은가.
이제는 안다. 우리 선생님은 명의였음을, 그것을 내가 미처 알아보지 못했음을, 무식의 소치였음을. "잘 쉬세요."라는 말에는 "계속 쓸모 있는 인간으로 살기 위해서는 또 다른 쓸모를 채우셔야 합니다."라는 말이 생략되었음을.
매일 책을 끼고 살았다. 걱정과 불안이 떠내려간 자리에는 활기, 재미, 기쁨, 희망 같은 정서가 새롭게 뿌리를 내렸다. 처음엔 무감각과 심드렁 사이를 오갈 텐데 이 구간은 좀 버텨야 한다. 부정적인 감정을 흘려보내려면 긍정적인 감정이 흘러넘쳐야 하니까. 생활독서가 버티는 힘을 기르는데 도움이 될 터이니 매일 한 줄이라도 책 읽기를 권해본다.
책을 읽다가 문득, 이게 맞는지 의심이 드는 날도 온다. 어제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는 기분이 든다면 잘 쉬고 있으신 겁니다!
나를 따라다니는 고민이 있나요? 마음을 괴롭게 하는 생각이 있나요? 종이를 한 장 꺼내 떠오르는 대로 적어보세요. 이게 다냐고요? 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이소요. 생활독서를 시작한 후, 새 삶을 살게 된 기념으로 스스로 지은 이름. 소요(逍遙)하듯 살겠다는 의지로 개명을 결심했으나 필명으로만 쓰고 있다.
번아웃을 방치하다 희귀병 환자가 되었고, 요양생활 3년 만에 번아웃과 작별했다. 인생은 생활력이 전부라 믿으며 생활력 코칭을 전파한다. 생활력이란, 내 생활을 돌보고 지키는 힘. 사명감을 갖고 생활력을 높이는 생활밀착형 자기돌봄 콘텐츠를 만드는 데 골몰하는 중이다.
한 때 3권의 여행 책을 썼고, 생활력을 주제로 퍼블리에 글을 썼다. 당신의 번아웃만큼은 온몸으로 막고 싶다는 마음으로 <번아웃, 아웃 코칭 워크숍>을 이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