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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요 Aug 19. 2023

술과 여행이 없는 세계에서 책이라니!

독서는 세상 가장 안전한 은둔처

괴로울 때만 마셨다. 술을. '꼴깍꼴깍'이나 '벌컥벌컥'으로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었기에 주종은 언제나 소주. 7부쯤 채운 잔을 한 입에 탁 털어 넣으며 실연, 배신 같은 시름을 삼켰다. 세상 모든 근심이 사라질 듯 그 알딸딸한 찰나의 순간을 맞이하기 위하여.


술 대신 무작정 비행기를 타던 때도 있었다. 주로 내가 미워졌을 때. 지금의 나와 최대한 멀어지고 싶어 낯선 환경에 나를 떨어뜨렸다. 가장 빠르게 익숙한 나와 결별하기 위하여.


지긋지긋한 사회적 가면을 벗어던지기엔 술과 여행만큼 좋은 방법이 없다고 믿었다. 내 방식의 은둔이었달까. 그런데 맙소사! 술을 못 마실 날이 올 줄은 몰랐다. 여행을 못 갈 날이 올 줄도 몰랐다. 영원한 것은 없다던 옛 현자의 말을 이런 식으로 깨닫게 될 줄이야. 정말 한 치 앞도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인생이라니!




팬데믹으로 전 세계가 허둥대며 어찌할 바를 모를 때, 나는 요양 1년 차를 막 지나고 있었다. 불안, 불신, 원망 등의 감정이 목까지 차올랐는데 어찌할 바를 몰라 버둥거렸다. "바쁘다"를 입에 달고 일만 하고 살면서 알콜의 알딸딸한 세계와 내 집을 벗어난 세계만 남겨둔 것이 문제였다. 폭풍전야 같은 요양인 페르소나를 무슨 수로 벗어날 수 있을까? 술과 여행이 없는데 대체 무슨 수로.



우연히 독서의 세계가 열린다면

<건반 위의 철학자>를 읽으며 이 구절을 만났을 때, 나는 순식간에 알게 되었다. 술과 여행이 있던 자리에 독서의 세계가 펼쳐졌음을.


<사랑의 단상> 미출간 원고에는 바르트가 어쩔 수 없이 참여한 어느 지루했던 모임에 관한 장면이 나온다. 사람들과 피상적인 대화를 나누며 어울리다가 피로가 몰려들던 때, 마침 라디오에서는 베토베의 현악 삼중주가 나오고 있었다. 그 음악은 바르트가 사람들과의 수다에 오염되지 않고 온전한 자신을 유지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이 장면은 바르트가 음악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나의 불행에 기웃대는 사람들에게서 최대한 멀어지고 싶을 때마다 책을 집어 들었다. 바르트처럼 나의 현재를 오염시키고 싶지 않았기에. 바꿔 말해, 나의 마음을 보호하기 위하여. 


50년 전이나 100년 전의 이야기에만 마음이 열렸다. '현재'와는 눈곱만큼도 연결되고 싶지 않았기에 매일 전력을 다해 책 속으로 달아났다. 


좋았다. 그곳에는 아픈 내가 없었고, 그림자로도 마주치고 싶지 않은 인간들이 없었으니까. 마음이 평온해졌다. 취해야만 고통을 견딜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몸과 마음을 혹사시키던 알콜의 위무 대신 건전한 위무의 세계를 나는 서서히 흡수했다.


더불어서, 배웠다. 독서야말로 언제 어디서든 마음만 먹으면 떠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여행지라는 것을. 대충대충 살았고, 빨리빨리 일할 땐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넓고 무한한 책의 세계. 아니 어쩌면 못 본 척 외면해 버렸을지도. 효율을 따진답시고 늘 책 읽는 시간은 우선순위에서 밀어냈을 테니까.


율곡이이가 쓴 <격몽요결>에서 중국의 대역사가 사마천의 말을 발견했다.


하루에 두 시간만이라도 다른 세계에 살아서 그날그날의 번뇌를 끊어버릴 수 있다면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육체적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들로부터 부러워하는 특권을 얻은 것이 된다.   


매일매일 책으로 숨어들었던 덕에 요양인의 고뇌로 가득 찬 세계를 벗어날 수 있었으리. 그렇게 허물을 덜어 내며 차츰차츰 본연의 나로 돌아올 수 있었으리.


술과 여행 대신 독서를 새로운 은둔처로 삼고 나니 특히 더 좋은 점 한 가지. 책에 그은 밑줄이 천군만마라 더 이상 위태위태하게 휘청이지 않는다는 것. 숙취와 여행독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건 말할 필요도 없겠지. 



 


됩니다따라만 하세요

당신을 위한 생활독서 코칭 가이드 04

지난 번에 생각나는대로 고민과 생각을 적어보라고 말씀드렸죠! 오늘은 고민과 생각의 키워드를 정리해볼게요. 내 고민과 생각의 핵심 키워드는 무엇일까요? 


이소요. 생활독서를 시작한 후, 새 삶을 살게 된 기념으로 스스로 지은 이름. 소요(逍遙)하듯 살겠다는 의지로 개명을 결심했으나 필명으로만 쓰고 있다.  


번아웃을 방치하다 희귀병 환자가 되었고, 요양생활 3년 만에 번아웃과 작별했다. 인생은 생활력이 전부라 믿으며 생활력 코칭을 전파한다. 생활력이란, 내 생활을 돌보고 지키는 힘. 사명감을 갖고 생활력을 높이는 생활밀착형 자기돌봄 콘텐츠를 만드는 데 골몰하는 중이다.


한 때 3권의 여행 책을 썼고, 생활력을 주제로 퍼블리에 글을 썼다. 당신의 번아웃만큼은 온몸으로 막고 싶다는 마음으로 <번아웃, 아웃 코칭 워크숍>을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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