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식생활자'에서 '좌식생활자'가 되기까지
'와식생활자'에서 차츰차츰 '좌식생활자'로 변모했다. 몸과 마음을 책으로 단련한 지 6개월이 지났을 무렵부터다.
무엇보다 독서는 널뛰는 마음을 다스리는데 특효였다. 물리적으로 힘들기도 했지만 심적으로도 강하게 거부했던 '앉기'를 기어코 가능하도록 만들었기에.
한사코 '앉기'를 밀어냈던 이유가 있긴 했다. 트라우마가 있어서 그랬다. 무엇이든 열심히 했지만 정작 스스로를 돌보는데 소홀했던 과거의 나 자신을 마주하기가 고통스러웠으므로. 종이에 손가락을 베인 듯 아릿하고 기분 나쁜 고통이었달까.
이뿐 만이 아니다. 미련할 정도로 통증을 참으며 원고를 썼던 기억이 끔찍하게 남아 있어서다. 인생 첫 자기 계발서를 쓰게 되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비장해졌는데, 넘치는 의욕만큼 몸이 따라주질 않았던 것.
아파도 너무 아팠다. 모니터의 글자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엉엉 울면서 엉덩이로 버텨낸 시간은 두 번 다시 떠올리기 싫을 정도로 참혹했다. 겉모습은 멀쩡했기에 꾀병 취급을 받기 일쑤였고, 너도나도 애꿎은 정신력만 탓하던 시절이었다.
크레페 케이크처럼 켜켜이 포개진 트라우마 조각을 하나씩 걷어낼 용기는 책에서 배웠다.
자기 보호를 1순위로 해서 상대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라고 충고하면 그 사람에게 지는 것이라고 반론을 펴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위험하다고 느껴지면 즉각 후퇴하는 전략은 자신의 안전을 확보하는 최선의 방법으로 고대 중국의 병법서에도 등장한다. <손자병법>에 나오는 36계 중에 마지막 전략이 그것이다. "이길 거 같지 않으면 도망쳐라."
도망쳐도 괜찮다고 말해주다니! 그래서 도망치고 싶은 날에는 마음껏 도망쳤다. 직면하고 싶은 날에는 결단코 피하지 않았다. 그렇게 '앉기'의 두려움을 서서히 지워나갔다.
기질 검사를 받았다. 상담사 선생님은 나를 앞에 두고 대체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다. 질문의 연유를 물으니, 돌아온 답변.
"타고난 기질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겁을 상실한 도전적인 삶이었을 거 같거든요. 자극 추구 성향은 높고, 위험 회피 성향은 낮아서요. 그런데 성격을 건강하게 발전시켜서 놀랐어요."
오! 나도 놀랐다. 요양생활 동안 실행한 ‘생활력 증진 프로젝트’의 효과가 이렇게 나타날 줄이야. 상담사 선생님은 내게 '자기 신뢰'가 높은 사람이라고 말해주었다. 평균보다 자존감 점수가 낮아 상담사 선생님의 '염려'를 듣기만 했던 과거와 달리 '칭찬'과 '격려' 그리고 '축하'를 동시에 받았다.
2년 차 요양생활이 막 시작되었을 즈음의 나는 생명력이라곤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는 시든 꽃 같았다. 스스로 회생불가능의 낙인을 찍어버리며 아무렇게나 시간을 때우고 있었고 동시에 무기력의 절정이 내 삶을 관통하는 중이었다.
그때의 나를 바로 세운 건 역시나 '읽기'와 '쓰기'다. 누워서 책을 읽던 시간이 성실함의 감각을 체득하게 해 주었다면, 앉아서 쓴 시간은 성실함에 생기와 활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쓰기 덕분에 밋밋한 생활이 생생해졌고, 생활 곳곳에 은은한 기쁨이 묻어났다.
후에 깨달았지만, 와식 생활자에서 좌식 생활자가 되기 위해 가장 필요했던 건 나에 대한 믿음을 회복하는 일이었다. 불신의 골이 깊었고,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몰라 깜깜 했으니. 그래서 외면이라는 쉬운 길을 택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읽고 쓰는 사소한 반복이 나와 내 생활을 구원할 줄은 몰랐다. 그저 읽고 썼을 뿐인데 무기력은 달아나고, 나에 대한 믿음으로 채워졌다. 단단한 사람이 되었다. 시간은 좀 걸린다. 모름지기 믿음이라는 건 시간이 쌓여야 하는 법이니까. 그렇긴 해도 아시리라. 독서는, 즉 매일 읽고 쓰는 생활 독서는 지금 당장 시작할 수 있다. 누구라도!
*본문 책 인용
<도망치고 싶을 때 읽는 책>, 이시하라 가즈코, 홍익출판사(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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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요. 생활독서를 시작한 후, 새 삶을 살게 된 기념으로 스스로 지은 이름. 소요(逍遙)하듯 살겠다는 의지로 개명을 결심했으나 필명으로만 쓰고 있다.
번아웃을 방치하다 희귀병 환자가 되었고, 요양생활 3년 만에 번아웃과 작별했다. 인생은 생활력이 전부라 믿으며 생활력 코칭을 전파한다. 생활력이란, 내 생활을 돌보고 지키는 힘. 사명감을 갖고 생활력을 높이는 생활밀착형 자기돌봄 콘텐츠를 만드는 데 골몰하는 중이다.
한 때 3권의 여행 책을 썼고, 생활력을 주제로 퍼블리에 글을 썼다. 당신의 번아웃만큼은 온몸으로 막고 싶다는 마음으로 <번아웃, 아웃 코칭 워크숍>을 이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