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사는 법
몸치다. 얼마나 지독한 몸치냐 하면 스키를 배우러 갔다가 강사님에게 버림을 받았을 정도다.
스키 강습의 첫 단계는 잘 넘어진 후 다시 일어나기였는데, 강사 님의 시범을 보며 생각했다. “넘어져서 일어나는 일이 어려울 리가 없잖아.” 그렇게 코웃음을 치며 넘어졌는데 세상에, 이 쉬운 일을 못하는 사람이 나였던 것. 넘어지면 일어날 줄 모르는 사람, 손을 잡아줘도, 폴대를 잡고서도 일어날 줄 모르는 사람이 나였을 줄이야.
강사 님은 나를 버렸다. 같이 배우던 동생만 데리고 리프트를 타러 갔다. 아무리 가르쳐도 일어날 수 없다는 걸 아셨겠지. 강사 님의 직감이 맞았다. 홀로 남겨진 나는 가만히 서 있다가도 넘어졌으니까. 손은 서쪽으로 발은 동쪽으로 넘어지는 바람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죄인의 형상을 한 채로.
그 당시 '수치사'라는 단어가 존재했다면, 온몸으로 이 단어의 의미를 실감했을 것이다. '쪽팔림'의 감각이 세포 하나하나에 각인된 그날 이후 나는 몸으로 하는 일이라면 시작도 전에 포기해 버리는 사람이 되었다.
하여, ‘매일 하면 된다.’라거나 ‘연습하면 개선된다.’와 같이 몸으로 터득해야만 알 수 있는 어떤 ‘정신’이 내겐 없다. 몸으로 내는 성과에서 기권해 버린 대가로.
요양생활에 툭하면 먹구름이 끼는 이유는 끝을 알 수가 없어서다. 언제까지 이 생활을 지속해야 하는지 가늠할 수 없으니 수시로 막막한 감정이 들었다. “언제 괜찮아지나요?”라는 나의 물음에 “이건 평생 완치가 안 되는 병이에요.”라는 답을 들은 이후로 ‘희귀난치병’이라는 단어 앞에서 번번이 마음이 쪼그라들었다.
하루 중 90%는 누워서 생활을 해야 10%만큼의 걷는 활동이 가능했다. 씻고, 먹는 일 같은 최소한의 기본 생활만 겨우 유지할 수 있는 상태였다. 책 읽는 일 외엔 누워서 할 수 있는 일이 딱히 없기도 했지만 마음 한 편, 욕심이 나기도 했다. 책을 읽으며 내 삶에서 자취를 감춰버린 ‘희망’을 건져 올리고야 말겠다는 욕심.
순전히 제목에 끌려 <아침의 피아노>라는 책을 집어 들었다. 아침에 피아노를 치는 이야기인가 싶어서. 그 마음이 송구했다. 철학자 김진영 선생님의 투병 일기였다는 걸 곧 알아채고야 말았기에.
'살아있는 동안은 삶이다. 내게는 이 삶에 성실할 책무가 있다. 그걸 자주 잊는다.'
이 문장에 마음이 번뜩하여 속으로 여러 번 되뇌다가, 성에 차지 않아 입으로 소리를 내 읽었다. 머리가 아닌 몸으로 문장이 와닿고서야 느꼈다. 거저먹겠다는 얄팍한 마음으로는 이 생활이 끝나지 않겠다는 것을.
그날로 결심했다. 정성을 다해 살아보자는 결심. 읽고 쓰는 일이 해야 할 일의 거의 전부였지만 하찮게 여기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90분 동안 책을 읽으면 30분을 쉬었고, 매일 이 사이클을 정확히 6번 반복했다.
반년이 흘렀고 그제야 보였다. 그간 나는 매일 읽고 쓰는 일을 반복하며 몸과 마음을 단련하고 있었음을. 영원히 미지의 세계로 남을 줄 알았던 '연습'의 세계에 기꺼이 발을 내디뎠음을.
한 번 새겨진 ‘성실’의 감각, 그 정신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도리어 확장되었다. 마음이 환해졌고, 생각이 커졌고, 태도가 달라졌다. 무엇보다 나에 대한 ‘불신’을 ‘확신’으로 맞바꾼 것이 가장 뿌듯했다.
'(...) 어제보다 조금 나아지기 위해, 매일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것. 그런 게 좋다. 이제 그런 것만 믿는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발전.' ━박연준, <모월모일> 중
아, 좋다! 이런 문장을 쓰는 사람이 있고, 이런 문장을 마주할 수 있고, 이런 문장에 공감할 수 있어서. 노트에 여러 번 따라 쓰는데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계속 새어 나왔다.
이젠 안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같지만 다를 테고, 그래서 내일의 나를 믿어볼 수 있다는 것을. 누워서도 성실했는데 못할 일이 무엇이겠는가.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읽고 써야지. 적어도 읽고 쓰는 나는 믿을 수 있으니까. 내게는 그런 확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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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요. 생활독서를 시작한 후, 새 삶을 살게 된 기념으로 스스로 지은 이름. 소요(逍遙)하듯 살겠다는 의지로 개명을 결심했으나 필명으로만 쓰고 있다.
번아웃을 방치하다 희귀병 환자가 되었고, 요양생활 3년 만에 번아웃과 작별했다. 인생은 생활력이 전부라 믿으며 생활력 코칭을 전파한다. 생활력이란, 내 생활을 돌보고 지키는 힘. 사명감을 갖고 생활력을 높이는 생활밀착형 자기돌봄 콘텐츠를 만드는 데 골몰하는 중이다.
한 때 3권의 여행 책을 썼고, 생활력을 주제로 퍼블리에 글을 썼다. 당신의 번아웃만큼은 온몸으로 막고 싶다는 마음으로 <번아웃, 아웃 코칭 워크숍>을 이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