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혼(招魂)

비가 오고, 시가 흐르고, 그대가 떠오르네요

by 토닥토닥 oz

영자 씨,

날씨가 산뜻해. 산책하고 흔들 그네에 멍 앉아 있자니 신선한 향기가 코끝에 와닿아.

얼굴에 뿌리는 미스트처럼 가느다란 실비의 감촉이 싫지 않아.

비 내리는 날 듣기 좋은 노래를 가만히 듣고 있자니 너무 좋다~


비가 오고 네가 생각나

비가 오고 또 비가 오고

슬픈 음악이 흐르면

옛 노래처럼 네가 생각나 네가 생각나

비가 오고 잠이 안 오고

슬픈 음악이 흐르면

옛 가사처럼 네가 생각나 네가 생각나 네가 생각나

.

.

.

그칠 때만 되면 또다시 비가 내리네

잘 지내.


에픽하이의 [비 오는 날 듣기 좋은 노래]라는 곡인데, 비 오는 날 정말 듣기 좋아.



비가 오고 슬픈 음악이 흐르면 생각나는 사람이 '영자 씨' 아니다.

설마 영자 씨라고 생각한 건 아니지?

적어도 이 노래를 들으면서 영자 씨를 떠올리지는 않아.

내 인생에 영자 씨만 있는 건 안될 일이잖아. 맞지~




음악을 들으면서 시를 몇 개 찾아 읽었을까?

코끝에 고소한 부침개 냄새가... 이 아파트의 어느 집에서 부침개를 하나 봐.

먹고 싶다. 나 요즘 너무 먹는데 집착하는 듯해.


예전에 정웅 씨가 좋아하던 배추전이나 부추전을 하고 나면 남은 밀가루물로 그야말로 순수 '밀가루 전'을 부쳐주셨잖아. 그게 또 왜 그렇게 맛있었던지.

튀김, 부침가루도 없이 그냥 밀가루로만 만들어낸 그 밀가루 부침개가 진짜로 맛있었어.


내가 탄수화물 중독이 되는 건 정해진 이친가 봐. 뭐든 그리 맛있었으니...

아님, 영자 씨 솜씨가 과하게 좋았나? 서로 좋을 듯하니 그런 걸로 하자. ㅎㅎ




내가 오늘 읽은 시는 영자 씨가 좋아하는 김소월 님의

제일 먼저 찾아 본건 [초혼]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 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

.

.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김소월 님의 시들을 정말로 좋아하셨는데...

김소월 시집-알라딘.jpg 주문했어. 갑자기 다 읽어보고 싶어서... <출처: 알라딘>

엄마를 생각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시는 이것 [초혼]

이 시를 눈을 감고 조용히 읊조리시던 그대의 모습이 눈앞에 잡힐 듯 떠올라. 아직도.

이런 걸 생생하다고 표현하는 거겠지.


어떻게 시작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가끔 즐겨 부르는 노래대신 이렇게 시를 읊어주곤 하셨는데 *초혼이라는 단어의 뜻을 몰랐을 때도 난 이 시가 왠지 가슴이 메여서, 싫었어.

이렇게 비장하게 슬픈 것들이 싫었거든. 가슴에 돌 박아 주는 것 같아서...


그런데... 지금은 알 것도 같아. 이 시를 느낄 수 있는 것 같아. 흐릿하지만 또렷하게...

참 찐하게, 애절하게, 아름답다.

시 분석 같은 건 내 주제에 가당치 않지만, 이렇게 내 감정을 전하는 것쯤은 괜찮겠지?


영자 씨는 이 시를 노래하며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사랑하던 그 사람이 있었던 걸까?


편지를 한 장 한 장 써내려 갈수록 난 영자 씨에 대해 진지하게 아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 또 미안해진다.




오늘은 무슨 얘기를 하나 고민하다가 고백합니다.

사실 잠깐 후회를 했어요. 괜히 영자 씨 얘기를 시작했나. 갈수록 할 얘기가 없네. 하면서...

할 말이 많은데, 할 말이 없어요.

이런 기분을 표현하는 법을 잘 모르겠어. 아직은 난 다 너무 서툰가 봐요.


엄마와의 추억이, 우리의 이야기가 너무나 절절히 슬프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너무 아프다 외치고 싶진 않아.

에픽하이 노래처럼 듣는 것만으로도 잔잔히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러자고 시작한 글인데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한 감정에만 매몰될까 봐 자꾸 두려워져요.

차라리 소설이라 하고 내맘껏, 쓰고 싶은데로 쓸걸 하는 실없는 생각도 해봅니다.


얼만큼 솔직하게 내 감정을 털어낼 수 있을까?

그것이 나에게 또 읽는 사람에게 진정 위로가 될까?

만감까진 아니지만 복잡한 맘으로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몇 주가 지나가고 있어요.


영자 씨,

그냥 내가 하고픈 대로 맘껏 해도 된다고 말해 주세요~


그래도,,, 엄마와의 추억이, 우리의 이야기가 너무나 절절히 슬프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런 고민을 하는 사이 장마가 본격적으로 시작됐어요.

올해는 비가 더 많이 오는 것 같아... 내 느낌일까요?


여름이 성큼,,, 그리고 짙어지고 있어요. 올여름도 무척 더울 것 같아.



*초혼(招魂)은 ‘혼을 부른다’는 뜻으로, 사람이 죽었을 때 넋이 돌아오도록 부르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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