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짐, 나의 짐
영자 씨,
우리는 S동네로 왜 이사를 온 거야, 어느 날 갑자기?
차를 갈아타면서 2시간 걸려 등원을 해야 하는 동네로 이사를 한다는 건 고등학교 2학년 딸아이를 둔 부모님이 쉽게 할 수 있는 결정은 아니었는데... 왜 그런 거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냥 이사한다니 그런가 보다 하고 따라나서긴 했는데, 이제와 생각하면 그때 나 참 고생했다 싶어.
졸업하려면 2년이나 남았는데, '2년만 더 다니면 된다' 하면서 버스를 갈아타고 그 멀리 다닌 거잖아.
그렇게 시달리다 보니 면역력이 뚝 떨어져서, 온몸에 돌아가며 종기가 생기기도 했고.
엉덩이, 허벅지, 가슴... 하필 민감한 곳에만 돌아가며 종기가 생겨서 정말 난감했었는데...
병원 가기 싫다고 버티다가 결국 절개하고 고름을 짜내는 시술까지 받아야 했던 적도 있었고.
그때가 아마 내 평생 난 부스럼보다 더 많은 종기가 생겼던 시절 같아.
이사한다는 말에 "왜?" 한 마디 묻지 않고 따라나선 나, 아니 고2를 데리고 학교 멀리로 이사 간다는 자체를 이상하게 본 사람은 오히려 담임 선생님이었어.
'대학에 뜻이 없다'도 아니고 '꼭 대학은 가야 한다'는 아이가 등하교에만 4시간 이상을 버려야 하는 그런 곳으로 이사를 간다니 선생님은 '이건 뭐지?' 하는 얼굴로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셨거든.
내가 처음 그 얘기를 꺼내던 날. 그 표정이 아직도 기억이 나네. ㅎㅎ
틀림없이 집안에 무슨 사정이 있겠거니, 하셨던 것 같아.
그래서 그 시절엔 없던 가정방문까지 오셨던 거 아닐까? 참...
새로운 집이 맘에 들었어. 더 좋은 집에 살 수 있게 되었으니까 되었다 했어, 난.
영자 씨는... 내 집 갈아타기를 하신 건가? 요즘 말로 '더 똘똘한 한 채'? 그런 거?
*야자를 마치고 지친 몸으로 새 동네에 도착하면, 영자 씨가 나와 있었어. 버스 정류장에.
무거운 가방을 들어주며 당신 손에 들려 있던 간식을 건네주셨는데,
여름엔 **하드, 겨울엔 야채호빵. 얘들이 젤로 좋았던 거 같아.
다른 것들도 준비해 오셨지만 계절감이 살아있는 이 두 가지는 정말 내 취향을 저격한 감동의 간식이었거든.
타이밍 놓치면 녹아버려서 버림받을 때도 있었던 하드.
영자 씨랑 하나씩 나눠먹기도 하고, 나만 홀로 먹기도 했던 그 아이스크림이 이렇게 추억이 될 줄이야...
그 시절은 그리 행복하진 않았거든. 그냥 너무 피곤했어.
그렇게 집에 와서 몇 시간 자다 또 학교를 가는 그 매일이...,,, 그 2년이.
어려서 '혈기왕성'하던 때라 버텼지. 지금은 생각만으로도 아찔해.
그런데...
그 속에도 소중한 순간이 있었네. 지금 새삼 놀라워하는 중... 하하!
그 갑작스러운 이사의 이유가 사실 난 나중에 더 궁금해졌어.
나는 물론이고 영자 씨도 고생 많았으니까.
좀 더 나은 내 집 마련, 그게 이유일 수 있는 거지? ㅎㅎ
그리고 이해하기 힘들었던 또 하나는, 영자 씨가 결혼 결혼 내 결혼에 목멘 거.
당신이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한 것도 아니면서 왜 그렇게 날 시집보내려 안달일까?
이상하고 이상했어.
어릴 때부터 늘 들어왔던 엄마의 바람,
첫째, 내가 약사 혹은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는 것.
첫째, 대학 졸업하기 전에 좋은 집에 시집가는 것.
바람의 무게를 가름하기 힘드니 둘 다 일 순위로 해버렸다~
하나는 ‘안정된 직업’을 가진 현대 여성의 삶이고,
다른 하나는 ‘좋은 남자 만나 잘 사는’ 전형적인 옛날식 희망.
영자 씨는 이 두 가지를 함께 품고 있었어.
영자 씨가 그린 그림, 행복한 여자의 삶 안에 내 삶을 그려 넣었지!
암튼 난 싫었어. 이유 없이 싫었어. 그냥 싫었어.
이실직고하자면, 약사나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기엔 그 당시 내 성적이 이미 많이 부족했고 난 근성이 있는 아이도 못되었으니까.
또 대학도 졸업하기 전에 시집가는 건, 사람 인생에 무슨 일이 어떻게 올 줄 알고, 졸업도 하기 전에 결혼을 한단 말인가? 싶었어.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결혼이 간절한 바람인 영자 씨를 이해할 수 없었어.
그대가 원하니까 그냥 더 싫었던 것도 같아.
그럴 거면 당신의 결혼생활이 행복했어야지.
결혼이 주는 좋은 기억 몇 개쯤은 내게도 선물했어야지.
짜증짜증, 짜증이 났어.
청개구리 이야기가 생각나네.
"갑자기?"
"응!"
청개구리는 엄마 말을 늘 반대로 하던 개구리였어.
엄마가 "오른쪽으로 가" 하면 왼쪽으로 가고,
"울지 마" 하면 더 서럽게 울고,
"조용히 해" 하면 시끄럽게 굴었지.
그러다 엄마 개구리가 죽음을 앞두고 "내가 죽으면 강가에 묻어달라"라고 유언을 남겨.
청개구리는 그동안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며, 처음으로 엄마 말을 그대로 듣고, 엄마를 강가에 묻어.
그 후 비가 올 때마다 강물이 불어나 무덤이 떠내려갈까 봐, 청개구리는 무덤 곁에서 슬프게 울어.
그래서 지금도 비 오는 날이면 개구리가 그리 슬피 운다고 해. 개굴개굴 개굴개굴.
우리 영자 씨도 어떤 부탁을 했었어.
그런데 난 그것마저도 반대로 해버렸네. 나랑 청개구리랑 누가 더 바보일까?
"나?" 개굴
"청개구리?" 개굴개굴
"아, 몰라." 개굴개굴개굴
더 길게 가면 한심해질까? 이쯤에서 그만하자. ㅎ
영자 씨, 시간이 한참 흘러 나중에야 이런 생각을 했어요.
그냥 마음의 짐을 덜고 싶었던 게 아닐까.
맏이인 나를 무사히 시집보내고 나면, ‘이만하면 잘 살았다’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싶으셨던 건 아닐까.
그런 맘일 거라 추측하면서 또 화가 났어요.
'왜 나한테 짐을 주는 거야? 왜 그대의 행복을 내가 책임져야 해?
나도 자주 불행했는데, 엄마아빠 딸이어서 꽤 힘들었는데... 난 위로 안 해줄 거야.'
못난 X, 욕도 나오지만... 그 맘이 싹 없어졌다는 거짓말은 못하겠어요, 지금도.
영자 씨, 그럼에도 다시 한번만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당신 맘의 짐을 함께 내리며 '정말 잘 사셨다.' 위로해 드리고 싶어요.
그럴 수 있는 거라면 그냥 할 것을…
근본적인 내 생각이, 내 맘이 완전히 바뀐 건 아니지만 ‘그냥 그렇게 할걸. 그래도 되었을 텐데.’
이 생각이 저를 매번 아프게 합니다. 다 지난 일인데도요.
한 번 더 살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나는 더 잘 살아낼 수 있는 걸까요?
*야자: 전혀 자율이 아니었던 야간 자율학습. 그래도 먼 집을 핑계 삼아 나는 9시에는 학교를 떠나올 수 있었다.
**하드: 예전 일본에서는 아이스크림을 하드(硬い = 단단한)와 소프트(소프트아이스크림)로 구분했는데,
그 영향을 받아 한국에서도 단단한 막대 아이스크림 = 하드라고 불렀다. 요즘은 듣기 힘든 표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