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고, 발톱이 하나 없네?
영자 씨, 내가 언제 태어났다고 했지? 밤 12시 5분 전 맞지? 한밤중.
물어보면 항상 정확히 말씀해 주셨는데 "내가 너를 낳고 시계를 보니? O시 O분이더라"하면서.
11시 30분, 아니면 12시 5분 전인데... 근데 바보처럼 난 이게 왜 헷갈리는 걸까?
"넌 태어날 때부터 좀 남달랐어." 라며 시작된 영자 씨의 이야기를 뜬금없이 하게 되네, 오늘은.
너를 품고 9달쯤 채워갈 무렵 경험이 없는 첫 출산인데도 '이렇게 있으면 안 되겠다' 싶을 만큼 산통이 와서 네 아빠에게 연락을 했지.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부랴부랴 가는 길에 우리가 탄 차가 뒤집혔는데, 충돌사고였어.
네 아빠는 얼른 빠져나왔지만 나는 '네가 담긴' 큰 배 때문에 나오기가 싶지 않았어.
겨우 경찰들의 도움을 받아 응급차에 몸을 싣고 가까운 산부인과로 쌩~ 옮겨졌는데..."
수술실 들어가자마자 산통이랄 것도 더없이 "아,,," 하다 내가 나와버렸다고 한다.
아이가 10달을 못 채웠으니 작아서 그런지 금방 나왔다고...
사람들이 그런 사고를 당하고도 아기가 아주 건강하다고,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며 신기해하고, 병원에서도 오가는 간호사, 의사님마다 한 마디씩 복덩이의 탄생을 축하해 주셨단다.
그런데 영자 씨는 그래도 혹시, 달도 덜 찼고, 사고까지 있었으니 어디가 이상하려나 잠 못 들며, 안고 있던 나를 눕혀 놓고 요리조리 살펴보았다는데.
신생아치고는 풍성한 머리카락, 예쁜 눈, 코, 입, 가지런한 다섯 손가락, 두 개가 분명한 애기가슴, 예쁘게 빠질 배꼽, 엉덩이, 다리, 발, 발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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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그런데 잠깐만. 오른쪽 발가락에 발톱이 하나 없네?
깨진 것도 아니고... 흔적조차 없어. 애초에 없었던 게 분명해.
맨질맨질 살이야. 이럴 수가.
잘 못 먹어서 그랬나? 오는 길에 난 사고 때문인가? 달수를 덜 채워 그랬을까?
오만가지 생각으로 속 끓고 있는데,
쪽쪽 젖을 빨고, 방긋방긋 한 번씩 웃고는,
대부분의 시간을 곤히 잠들어 있는 나를 보고 있자니,
천사가 따로 없다 싶어서.
어느 순간 '그래 나 안 닮고 아빠 닮은 게 어디냐?
손톱 아니고 발톱인 게 어디냐?
발가락이라도 하나 없었으면 어쩔 뻔했냐?'
이렇게 위로를 하면서.
나중에 서로 대화라는 게 될 때쯤 나의 이 탄생신화?를
애법 큰 사고에서도 아무도 다치지 않고,
택시 측 회사로부터 보상금까지 받으며,
신문기사에도 실린 아이가 바로 나,
병원비 하나 안 내고 퇴원을 한 그해 행운의 아이가
바로 나라고.
그 발톱 하난 아무것도 아니라고.
너는 태어나면서부터 돈을 불러온 아이였다고.
말.해.줘.야.지. 하면서.
이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영자 씨는 행복해졌다고 했지!
나한테 미안한 맘은 여전했지만
나중에 "왜 발톱이 없어?" 물어오면,
이 신문기사를 보여주면서
'너는 특별한 아이여서 그렇다.'고 말.해.줘.야.지.
단단히 벼르셨다며.
여러 번 들은 이야기인데,
난 사실 이 이야기를 정확히 기억 못 해.
아니 어디까지가 사실인지를 모르겠어.
그 병원이 어디였는지, 무슨 택시였는지,
왜 그런 충돌 사고가 나야 했는지,
보상금은 얼마를 받았는지,
상대 쪽, 얼굴을 다쳐 수술을 해야 했다던
그 여자분은 어찌 되셨는지.(이건 영자 씨도 모르겠지?)
아주 어렸을 땐, 옛날이야기처럼 귀담아 잘 들었을 텐데
어느 순간 영자 씨의 얘기는 또 그 얘기가 되어서
대충 듣게 되었어.
"특별하기는...
없는 발톱은 그냥 기형인 거지."
여름에는 유독 신경 쓰이는
내 이 못난이 발가락 위에 예쁜 문신을 새기고 싶었는데..
이런 생각도 하느라고...
그래서일까? 기억이 잘 안나네.
언제든 또 들으려니 했던 그 이야기.
그리고, 진실을 기억하기 힘든 또 하나의 이유를 고백하자면,
가끔 우리끼리 "어머어머, 진짜야?" 하며
괜히 들뜰 때가 있었는데, 그 순간 할 말이 딱히 없을 때면
난 이 '탄생신화'를 우려먹었어.
좀 더 실감 나고 대단하고 맛깔스럽게,
내가 원하는 만큼 부풀려서.
그럼 "어머어머, 정말?"이라는 반응이 커졌고,
나는 그게 아주 흡족했어.
어떨 땐 발가락을 보여줘야 하는 창피를 무릅써야 했지만...
그마저도 "야, 너무 귀엽다. 예쁜아가 손가락 같아" 식의
칭찬 같은 기분 좋은 말이 날아오면
난 정말 신이 나 떠들었던 것 같아.
기회만 되면 그랬던 것 같아.
그래서... 진실이 어디까지인지 잘 모르겠어.
영자 씨 한테는 뱉은 말이 있으니 더 물어보지 못했고.
그리고 뭐 진실이 대수랴 싶기도 했고.
신문에 기사까지 실렸던 아이,
병원비 하나 안 내고 퇴원 한 행운의 그, 아이,
태어나면서부터 돈을 불러온 그, 그, 아이는,
여름만 되면 기형적인 발톱을 어떻게 숨길지 고민하고,
남들에겐 없는 이상한 신경을 써야 했던,
그저 지나치게 평범한 여자애였다는 거. 그게 진실이니까.
그러니.,,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기적?'으로 덮어버리자.
난 탄생신화를 가진 남다른 아가였어~~
근데 난 지금 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지?
몇 년 전쯤 본가 정리를 하다 정웅 씨에게 쓴 영자 씨의 연애편지, 병원에서 받은 내 출생서 같은 것들을 찾았는데, 아무도 버린 사람이 없는데 그 상자가 감쪽같이 사라졌어.
누구도 모른다고 하니 답답한 일...
어디로 간 걸까? 그곳에 진실이 담겨 있을 거 같은데...
신문기사도 본 것 같은데... 그것도 기억의 오류인가?
'아니야, 신문에 기사는 분명히 실렸다.'라고 했어.
내가 상자 안에서 그 신문조각을 본 건지 그건 정확지 않지만...
이번 주에 정웅 씨를 뵈러 가면 여쭈어봐야겠다. 파파의 기억을 빌려보는 수밖에.
그런데 난 이게, 이제 와서, 왜 이렇게도 궁금한 거지?
내가 태어난 시간은 왜? 신문기사 스크랩은 왜? 영자 씨의 연애편지는 또 왜?
왜? 영자 씨? 왜?
맞아. 알아, 난 그 이유를. 알면서 이렇게 자꾸 따져 묻는 거야.
그대, 영자 씨가 대답해 주었으면 바라면서...
이렇듯 어이없는 생각을 하며, 나는 오늘 스벅(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셨어.
그대는 좋아하지 않았을 케이크 한 조각도 곁들여서... *커피멍을 하면서.
'영자 씨는 이상하게 초코와 치즈의 조합을 그리 좋아하지 않으셨지.' 떠올리며.
이제 곧 샌들이랑 **플리플랍을 신게 될 텐데... 문신을 해야 하나, 몇십 년째 갈등하면서.
나의 삶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으니까.
얼마 전이더라?
제부 꿈속에 영자 씨가, 아파트 발코니 문을 열고 들어오셔서는 빙그레 웃으시더래요.
너무나도 고운 모습으로.
"이상하다, 어머님은 돌아가셨는데..." 하다가 깼는데, 너무 생생해서 꿈같지 않더라네요.
그냥,,, 이상하게 좀 서운한 거 있죠?
어렵게 꿈속에서 한 두 번 뵙긴 하였는데, 제 꿈속에선 한 번도 영자 씨 환하게 좋은 모습인 적이 없었어.
그냥 표정 없는 얼굴에 말씀도 없으시고...
"더 깊이 생각말자."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므로... 우리는 "밥을 먹자" 하였어요.
음식은 큰 위로가 되니까요~
생각나는 글 하나 있어 올려봅니다.
*커피멍 : 커피 마시며 멍 때리기
**플리플랍 : 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