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NA 유전자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아이고, 따님이 예쁘시네요."
그냥 인사치레로 한 말에 진심을 담아 거하게 항상 대꾸해 주는 영자 씨가 난 늘 부담스러웠어.
"얘가요, 저를 안 닮고 지 아빠 쪽, 고모를 쏙 빼닮았어요. 완전 친탁 했죠."
내가 우리 애를 10달을 못 채우고 출산했거든요. 시어머니가 찜찜해하시다가 큰애를 보자마자"
"아이고 빼박이다. 암, 씨도둑은 못하지." 하며 그리 좋아하시더라니까요.
아들아들 노래노래를 부른 시어머니가요.
"큰 딸은 살림 밑천이라고..."
이러쿵저러쿵, 이 얘기 저 얘기...
난 정말 어디라도 숨고 싶었어.
"아이고, 따님이 예쁘시네요." 한마디에 도대체 집안사를 어디까지... 진짜 못 말려!
그런데 정말 이상한 건 영자 씨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의 반응이었어.
사람들이 그렇게 즐거워하는 거야. "허허, 하하, 호호..."
"그렇죠. 어련할까. 옛날분들 다 그렇죠. 시어머니 얘긴 하지도 마요~"
누구 하나 귀찮아하지 않고, 영자 씨의 이야기에 빠져 들었어.
어떤 날은 너무 길어져서 화가 넘치게 난 나는 말도 안 하고 먼저 집에 올 때도 있었는데, 그럴 때면 영자 씨는
"깜짝 놀랐잖아. 가면 간다고 말을 해야지."라고 해서 난 또 *입틀막.
'깜짝 놀라긴 무슨... 한두 번 있는 일도 아닌데...'
튀김을 먹을 때도, 순대를 먹을 때도, 국수를 먹을 때도 영자 씨는 할 얘기가 어찌 그리 많은지...
한날은 순대를 먹다가 이랬잖아.
"우리 애가 이걸 못 먹었는데 어느 날 한번 맛보더니 지금은 나보다 더 잘 먹는다니까요.
그리고 여기 순대 너무 맛난다니까~"
나원 참, '아니, 영자 씨 내가 더 먹는다니... 그건 아니지. 그리고 그걸 누가 물어봤냐고요~'
그러면 듣고 있던 순대아주머니가 "그럼 좀 더 드려야지. 많이 드쇼잉~" 하며 순대를 덥석 더 썰어주셨는데
어떤 날은 주문한 것만큼 더 담아주신 적도 있었지?
내 기억의 오류인가? 그건 모르겠지만... 하하.
정확한 건 정감 있는 그 분위기, 그것만은 너무도 확실~
그렇지만 그때는 그 매 순간이 너무나 창피했어.
'조용한 영자 씨'면 좋겠다 생각했어.
중학생이 되면서 나는 점점 하늘 높이에는 관심 없고, 땅이 얼마나 넓은지만 알려는 아이가 되었어.
"따님이 예쁘시네요."라는 똑같은 인사치레를 간혹 받더라도, 영자 씨의 대답은 무척 간결해졌지.
"뭐, 그렇지요. 국민학교 때는 더 예뻤어요. 중학교 가더니 키가 안 크고 살만 찌네요."
끝.
짧아서 다행이라 싶으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허전한 것이... 사람 맘은 왜 이런 걸까?
다른 동물도 이런 마음일까? 모든 생명이 그런 걸까?
'나 닮으면 안 되는데...' 하고 마음을 졸이셨는데, 애석하게도 나는 어느새 시나브로 영자 씨를 닮아 있었어.
사람들이 행여 누굴 닮았나? 엄마를 닮았나? 하면 손을 바이바이 하듯 좌우로 저으시며
"아니, 얘는 지 아빠 쪽, 고모를 쏙 뺐어요. 살이 찌니 얼굴이 묻히네..."
라고 펄쩍 뛰시던 영자 씨가 지금 생각하니 풋~ 웃음이 난다.
그땐 그마저도 싫었었는데... 하하;;
우린 왜 닮게 되었나?
아무래도 DNA 유전자의 힘은 음식에서 오는 것 같아.
같은 음식을 먹으면서, 그 입맛에 길들여져 같은 음식을 좋아하게 되고, 비슷한 식성을 가지게 되니 특히나 체격, 골격 같은 건 닮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나는 뱃속에서부터 영자 씨랑 같은 걸 먹었으니까.
키 크는데 집중할 땐 잘 숨겨져 있던 유전자가 성장이 멈추면서 확 드러난 거지.
영자 씨는 끝까지 부정하셨지만 내가 봐도 영락없이 몸은 그대야. 엉덩이, 팔, 다리...
아빠 얼굴, 몸은 엄마. 아, 그래도 영자 씨 평발은 안 닮았네.
내가 절대로 살이 찌면 안 되는 이유는 그것이었어.
이렇게 다르게 생겼는데도 '살찌면 영자 씨를 닮아간다'며 너무나 속상했던 영자 씨와 나.
"You are what you eat. 네가 먹는 것이 곧 너다."라는 말이 있거든.
먹는 음식이 신체는 물론 한 사람의 건강, 성격, 가치관까지 만든다는 철학을 담은 말.
새삼, '무서운 표현이네.' 싶다.
그래서 집에서 멀리 보내라 하셨나?
갓 태어난 나를 업고 엄마 다니는 절 주지 스님한테 갔더니, 그러셨다면서...
나는 집에서 멀리 떨어져야 더 잘 산다고.
영자 씨, 그 말은 괜히 들었나 봐.
그래서 아직도 난 내 뜻대로 안 된 일은 내가 멀리 가지 못한 탓인 것만 같아.
고백하면 지금도 가. 끔. 은... 못났어, 내가.
우리가 먹던 떡볶이와 순대. 우리는 사실 저런 순대를 좋아했잖아.
담백하고 쫄깃한 당면 순대. 맛이 진하지 않고 잡내가 없는...
영자 씨는 가끔 내장을 먹기도 했지만 난 오로지 저 순대만 먹었었어.
요즘은 간도 가끔은 먹어. 순대소금 확실히 찍어서...
부산 어묵이랑 먹으면 진짜 맛있었는데...
어묵은 겨울시즌 음식이라지만 여름에도 어묵국물에 '떡볶이와 순대'는 멋진 조합 아니냐고,
정말 좋아했잖아, 영자 씨도, 나도.
여름에는 어묵파는 곳이 잘 없어서 아쉬워하며.
그제는 나 혼자 먹었네, 쓸쓸히. 하지만 맛있게... 먹었어. ;;
영자 씨랑 먹던 그 집은 아니야. 최근에 내가 발견한 맛집.
여긴 이렇게 반반을 팔아줘서 참 좋아. 가격도 5,000원.
몸을 생각해서 어묵은 국물만 조금 마셨어.
퇴근하고 돌아오는 길, 한참 배고픈 시간이니 그 맛이야 말해 뭐 해?
"살찌는데" 하면서도 "오늘만 먹자." 그러면서, 자주 갔던 그 분식집에서 '먹자 데이트'를 했던 그 순간이 문득 떠올랐어.
정말 정말 지난 일인데..., 어제처럼 느껴져서...
할 수만 있다면, 붙잡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 을. 까.
생각하고 생각하고 생각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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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생각하고... 정신 차리니 집 앞이더라.
송아지 송아지 얼룩송아지. 엄마소도 얼룩소 엄마 닮았네.
영자 씨,
'송아지'가 제가 제일 먼저 배운 동요라면서요. 처음엔 손다지, 손다지 했다면서요.
옛 추억에 잠겨 마지막 단락을 읊으시다가 "엄마 닮으면 안 되지." 하셨는데, 저는 "왜" 하고 한번 물어보지도 않았어요. 알 거 같아서... 닮기 싫어서...
"엄마 닮으면 안 되지." 그 말은, 영자 씨의 지난 생을 접어 내게 건넨 바람이었어요.
그래도,,, 립서비스라는 말도 있는데, 빈말도 소중할 때가 있는데...
지금에야 '영자 씨가 서운했겠다'생각해 봅니다.
저는 영자 씨를 사랑하는 마음이 많이 부족했나 봅니다.
*입틀막- '입을 틀어막다'의 줄임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