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렴 어때

드라마 속, 금명이 같은 딸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by 토닥토닥 oz

영자 씨!

이렇게 시작하고 보니까 할 얘기가 또 생기네.

나, 실은 한 9년 전쯤인가?

영자 씨 가시고 얼마 안 되었을 때, 그 있잖아, 나 과외해 줬던 반장집 딸. 그 대학생 언니를 만났어.

언니가 나를 먼저 알아보더라고. 내가 하나도 안 변했대. '설마...'

그래 내가 5-6학년 때 이미 좀 완성형이긴 했지.

그땐 가끔 대학생이냐는 오해도 받았으니... 엄마가 항상 지켜준 긴 생머리 탓일 거야.

'그래도 설마 하나도 안 변했을 리가... ㅋ'


그런데 내 기억 속에 새초롬 예뻤던 그 대학생 언니는 이제 내가 기억하는 영자 씨 모습하고 별로 다르지 않게 변해 있더라.

딸만 셋이래. 아들 낳으려고 노력했는데 안되셨대.

이제 아이들이 다 컸다며 사진 보여주시는데 얼마나 그들이 자랑스러운지 '할 수만 있다면 당신 마음을 꺼내보여주고 싶어'하는 것 같았어.

그래서 그 언니의 얼굴에 영자 씨가 겹쳤던 것일까?

물론 나는 그분의 영애(令愛)만큼 대단한 사람이 되지는 못했지만...


그 자녀들이 다 '사'자 붙는 사람이 되었더라. 한분은 약사, 한분은 의사, 그리고 회계사.

'거짓말은 아니겠지'라는 생각도 아주 잠깐 했어. 농담농담. ㅎ


그런데...

뜻밖에 내가 또 놀라운 비밀 하나를 듣게 되었네. 그 언니한테 과외를 받을 수 있었던 진실!


나도 이상하다 했었거든.

열심히 열심히 아끼는 것 밖에 모르던 엄마가 정말 열심히 열심히 아껴서 우리 집을 마련하고 그렇게 새로 시작해서 여유가 없었을 텐데, 어떻게 날 과외를 시켜주는 걸까?

동네사람이고 반장집 아줌마가 엄마를 좋아해서 거의 공짜로 하는 거라고, 돈을 조금만 받으셨다고 묻지도 않았는데 엄마가 주절 먼저 설명을 하셔서...

별로 궁금하지도 않았고 사실은 그 과외가 부담스럽기도 해서 그냥 잠깐 생각하다 말았어.


그런데 나랑 같이 공부했던 나머지 두 명의 친구들을 영자 씨가 찾아 데려간 거라면서?

그 두 명을 조금 더, 그러니까 월래 그분이 받는 과외비보다 더 받아주는 조건으로 나는 그냥 무임승차한 거였다고... 그 얘기를 듣는데 왈칵 눈물이 나더라.

아, 정말 영자 씨. 실망시키는 법이 없다니까.


내가 징그럽게 싫어할 거 아니까, 내가 창피해하며 안 했을 거니까...

맞아. 그걸 알았다면 난 죽어도 그 집 과외 안 했을 거야.

반장집 큰 딸인 대학생 언니는 '훌륭한 엄마'라며, '엄마한테 항상 감사해야 한다'했어.

'잊히지 않는 어머니 중 한 명'이시라며... 헤어지는 순간에 한번 더 거듭 말씀하셨어.


그래서 나를 금방 알아봤대.

성격도 생김새도 하나도 닮지 않은, 영자 씨가 너무나 사랑하는 딸이어서...

영자 씨도 나도 둘 다 기억 속에 콕 박히더래.


겉으로는 "그러셨어요." 하면서도 묘한 감정이 솟구쳤어.

지금 내 옆에 영자 씨가 있다면 난 따졌을 거야.

"그렇게 날 구질구질하게 누군가의 머릿속에 못 박아 둬야 하냐"면서... 나답게 굴었겠지.

그런데 영자 씨가 없어서 그런지, 따질 엄마가 없어서 그런지 눈물만 나더라.

"왜 울고 있지?" 할 만큼 한참을 울었어. 반장집 딸 대학생 언니와 헤어지고 나서.


금명이 같았으면 좋았을 텐데... 정말 행복해하셨을 텐데.

반장집 대학생 언니도 공부 잘한다고, 동생들 때문에 '4년 전 장학금' 받고 덕성여대 약학과 간 거라고.

그렇게 예뻐했잖아, 영자 씨가.

금명이 처럼 당신 딸이 턱허니 서울대를 붙어 버렸으면 얼마나 좋아라 했겠어.

진짜 다 벗고 *이 OO씨네 집 앞에서 춤췄을 거야. 영자 씨는 그랬을 거야. ㅎㅎ


자, 그럼 이쯤에서 금명이 가 누군지 영자 씨는 궁금하지?

금명이는 요즘 한참 인기 있었던 드라마에 나온 여자 주인공, 딸 이름이야.

'폭싹 속았수다'라는 드라마. 제주 방언으로 '무척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뜻이래.


세대를 아우르는 감동 드라마로 부모 세대의 뜨겁게 엉킨 희생과 사랑,

그리고 그로부터 이어지는 자식 세대의 삶을 깊이 있게 조명하며,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선사, 진정한 '인생 드라마'로 인정받았는데...


나는 안 봤어. 그냥 보기 싫어서... 부모 자식 간의 얘기. 자꾸 울게 만드는 얘기.

금명이 말대로 짜증 나서...


근데 드라마가 너무 떠버려서... 피해 가기가 힘들던데?!

나도 모르게 '클릭클릭' 유튜브로 몇 개는 보게 돼버렸다는 얘기~

유튜브는 알지? 사람들이 만들어서 올리는 그들만의 영상. 드라마든, 자기 삶이든 뭐든 원하는 대로...





기억에 남는 영상이야.

영자 씨도 나 안 가르쳤는데... 이유는 좀 달랐지만...

내가 일을 너무 못해서... 하나 시키면 하루 종일 하고 있어서... "뭐 하나 하라기가 겁난다." 하셨잖아.

내가 너무 못한 게 아냐. 영자 씨가 후다닥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지나치게 잘한 거지.


"일 잘해봐야 일복만 많다." 하셨던 거 보면 못해서 안 시킨 게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저 영상을 보면서는 그랬구나 싶었어. "그랬어? 영자 씨?"


뭐 아무렴 어때. 내 마음이 이미 답하는 걸...


우리 영자 씨, 관식이 같은 남편 만났으면 좋았을 텐데...

나도 그런 분이 아빠였으면 정말 좋았을 듯 해. 많이 부러웠어. ㅎㅎ

다음 생에는 한 번 기대해 볼까? 우리? 하하...:D


sticker sticker




P.S : 추신

정웅 씨

GPT라는 AI(인공지능, 똑똑한 기계)가 만들어준 **지브리풍의 그대 신랑, 정웅 씨야.

10년인데 너무 많이 변했지. 한 30년 지난 것처럼...

그래서 내가 다시 그려달라 했거든. 좀 더 젊고 환하게. 그랬더니 오른쪽 사진이 탄생했어.

둘 다 누군지... 낯설지? 나도 그래.

얘가 엉뚱한 사람을 그려놨네. 허헐;;~


근데, 정말 저렇게 잔뜩 주름이 생기고 눈은 '쾡' 해지셨어.

그래도... 건강하셔. 맑으시고... 내 생각인지도 모르지만...

괜히 보여드렸나? 뭐, 아무렴 어때. 내 맘이지, 그치? ㅎ




또 P.S

오늘 이 그림?을 정웅 씨 보여 드렸더니 "내가 이렇게 주름이 많나?" 하시며 놀라워하셨어.

그래서... "아니야, 그린 사람이 바보야."라고 해버렸어. 잘했나? 나? ㅎ




새벽 4시.

갑자기 영자 씨의 수제비가 너무 먹고 싶습니다.

호박이랑 감자만 넣고 끓여주시는 그 수제비. '쫄깃쫄깃' 어찌나 맛있던지...

손맛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게 틀림없습니다.


배가 고파서 일까요? 영자표 수제비 생각이 간절합니다.

지금은 목요일 새벽 4시.

이제 자야 합니다. 영자 씨의 수제비는 가슴에 묻고...



*이 OO 씨는 그 당시 우리 M동네에서 가장 큰집을 소유했던 국회의원 이름이다.

**일본 만화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