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가장 비싼 옷

추억은 가장 따뜻한 옷

by 토닥토닥 oz

“몸이 가장 비싼 옷, 살찌면 뭘 입어도 다 똑같아.”
영자 씨의 명품 철학은 언제나 이렇게 시작됐어.

맨날 같은 원피스, 정웅 씨가 입던 헐렁한 티셔츠만 걸치고 다니던 영자 씨를 보며 “옷 좀 사 입지…” 투덜거리면, 늘상 그대가 했던 말.


처음엔 짠순이의 고집이라 생각했지만, 지금 와서 돌아보면 그건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사람만이 입을 수 있는 드레스’ 같은, 철학이었어.


그 당시의 영자 씨만 본 사람이라면 잘 몰랐겠지만,

사실 뛰어난 패션 감각을 숨기며 살고 있던 영자 씨는 고상하고 값비싼 옷을 입고 예쁘게 소화 못하는 것은 '옷과 돈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고 생각하셨어.

그래서 꿋꿋하게 맘을 바꾸시지 않으셨지.

당신의 그런 철학은 나에게도 나름 적용되었던 듯... ㅎㅎ


다행히 난 유행, 패션 이런 것에 관심이 별로 없었고, 영자 씨가 예전처럼 내 옷이나 신발을 눈여겨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지만 크게 불만은 없었어.

그냥 자꾸 커지는 엉덩이를 가리고 싶은 욕구만 있었던 것 같아.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진정한 틴에이저가 되었을 때는...


지금 생각하면 가스라이팅을 당했던 것도 같은데... ㅎㅎ

'몸이 최고의 명품'이라는 말. 철학인 듯 철학 아닌 철학 같은 영자 씨의 믿음에...

이미 명품이 아닌 내 몸 탓인지 멋진 옷, 신발, 브랜드 이런 것에 그다지 맘 안 썼어, 나는.

그러다... 그 일이 터졌어. 합창대회!


합창대회 때는 의례 전체의상을 통일해야 했는데, 우리 반 단체복으로 정해진 건 하얀 티블라우스에 파란 치마였어. 청치마는 안되고 선명한 파란 치마. 내가 그걸 가지고 있을 리가 없잖아.


처음으로 영자 씨한테 선명한 파란색 치마를 사달라고 졸랐던 것 같아.


영자 씨는 "한번 입고 말 치마를 뭐 하러 사" 하시며 내 속을 어지간히 어지럽히시더니, 합창회 전날 리허설에 맞춰 간당간당 어디선가 파란색 치마 하나를 구해오셨어.

건너 건너 한참 옆집, *공장집 큰 딸 치마랬지, 아마?


뭐라고 하며 빌려 오셨을지,,, 안 들어도 오디오여서 묻지 않았어.

영자 씨의 진심을 담아 말했을 테지.

"한 번 입을 옷, 살 필요가 있냐"라고 "잘 입고 가져오마." 하고.


맞는 말인데, 사실 나도 그 파란색 치마가 그렇게까지 갖고 싶었던 건 아닌데, 이 집 저 집 마실 다니며 물어봤을 영자 씨가 그땐 왠지 좀 싫었던 것 같아.

보이는 곳에 살이 적고 얼굴이 작아서 사람들은 잘 몰랐지만, 사실 난 생각보다 하체사이즈가 꽤 커서 빌려온 스커트가 잘 맞을지 걱정스러웠어.

배에 살짝 힘을 주니 그런대로 입을만해서 얼마나 다행이었던지.

옷에 내 몸을 맞춘 상태였지만, 뭐 어쩌겠어. 명품 못된 내 몸 탓이려니... 해야지.


그래도 계속 힘주고 노래할 순 없잖아.
강약 조절, 박자 감각도 필요한데.

그래서 선택한 건... 아침 점심 굶기.

그렇게 합창대회는 무사히 끝났고, 그 뒤에 먹은 샌드위치는…, 진심으로 눈물 나게 맛있었어.


그렇게 고이 하루 잘 입고 세탁해서 다시 공장집으로 가져가니, 어차피 잘 안 입는 치마라며 그냥 나 입으라고 하셔서 머뭇거리다 다시 가져왔지.

차마 “허리가… (조금) 끼어요”라고는 말 못 하고.

영자 씨도 기억해?




사진첩을 뒤지다가 그 합창대회 사진을 찾았어. 고1 때 기억인가 봐.

반친구들 얼굴을 보니 그때인 거 같아.

입상은 못했지만, 다들 입을 동그랗게 벌리고 열심히 부르던 모습, 얼굴 표정들이 묘하게 다 비슷해.

하하.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에 없는 사람이 네다섯은 되는 듯.

이럴 수도 있구나.

누군가 단체 사진 속 나를 보며, "누구지?" 할 수도 있겠구나. 슬. 프. 다.


아, 부채 춤추던 6학년 운동회 사진도 있었어.
그리고, 젊은 영자 씨와 정웅 씨도 계시고. 중학교 졸업식 날인 것 같아.

얼마 만에 보는 옛날 사진첩인지...


우린 모두 여기 있는데, 영자 씨는 그 안에만 있구나, 과거사진 속 그곳.
과거라는 프레임 안에만 있는 사람.



그런 분이 한 분 더 늘었어, 영자 씨.

고모가 지난 목요일 하늘나라로 가셨어.

주무시듯 고요히 가셨대. 편안한 모습이었다고 해.

따르던 하나님 곁으로 가셔서 행복했나 봐. 그런 모습이셨대.

얼마 전에 한창 바쁠 때 고모가 전화를 하셔서 안 받았는데... 그게 계속 맘쓰이네.


정웅 씨한테는 아직 말을 못 했어.

봄 타시는지 식사도 잘 안 하시더니 요즘 부쩍 야위시고 기운 없어하셔.

씹기 싫다 뉴케어만 드시고... 그래서 말씀드리기가 자꾸 망설여지네.


두 분 마지막 영상통화에서 고모가 "이제 너랑 나랑 둘 남았다." 하시니 눈시울 붉히시던 정웅 씨 모습이 떠올라 차마 입이 안 떨어진다.

어차피 고모가 임종하신 후 연락도 받은 터라, 장례식도 우리만 조용히 다녀왔어.

고민하고 있으니 주변인들 반응도 반반.

그렇지만 말씀은 드려야겠지. 처음부터 그래야 했는지도...


고모가 그렇게 우리 자매 예쁘다 했대. 파파한테 잘한다고...

진짜 내 맘도 모르면서...




긴 장례미사를 마치고 고모는 고모부 곁, 선산에 모셔졌어.


고모를 고모부 곁, 선산에 모셨다. 비로소 두 분이 한자리에 누우셨다.


부디 평안하시기를 아멘!




혹시, 영자 씨! 그곳에서 모두들 만나셨을까? 아직?

요즘은 드라마 영향인지 자꾸 저곳에도 또 다른 삶이 있는 듯 느껴져.

내가 그렇게 바라는 것일지도...


올 3월엔 큰엄마도 가셨어.

깊이 생각하니 기분이 정말 이상하네.

전하지 못했던 얘기는 저 아래 남겨볼게.




부산을 떠나면서 '부산어묵 하나 먹자' 들어간 집에 수제비가 보이길래 주문해 봤어요.

얼마 전 그리워하던 엄마표 수제비가 생각나서...

맛은? 긴 말 않는 걸로... ㅎㅎ


부산에서 맛본 수제비. 피가 너무 얇고 뚝뚝 끊어지는 맛. 기계가 만든 맛.


밀가루 음식 좋아하는 나를 위해 두껍게 뜨면서도 쫄깃쫄깃했던 엄마표 수제비.

영자 씨처럼 만들어봐도 그 맛이 안 나요.

사실 별 다른 것도 없었는데...


추억의 맛은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가 봅니다.

영자 씨, 사랑합니다.




부쩍 생각이 많아지는 한 해입니다.

살아가는 우리가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은 여전히 가장 어렵고 현실감 없는 숙제인듯합니다.

죽음도 탄생처럼, 삶 안에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기쁨으로 맞이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공장집: 여성 옷 만드는 가내공업을 하셨는데 동네사람들이 모두 공장집이라고 불렀다.

새 상품이 나오면 입어보라고 하나씩 나눠 주시기도 하셨다. 그래서 그 집 아줌마는 인기가 좋았다.

영자 씨 다음으로. 아마도?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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