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 of Sight, Out of Mind 멀어지기

" 그 먼 곳을, 정말 가겠다고? "

by 토닥토닥 oz

"정말 가겠다고? 그 먼 곳을? 무섭지도 않니?"


어학연수를 결정했을 때 영자 씨의 첫마디였어.

나를 잔뜩 못 미덥게 쳐다보며...

겁도 없다고...


비용도 걱정이었을 텐데... 그 얘긴 먼저 꺼낼 필요가 없으셨겠지.

듣는 순간 '안되지.' 하고 영자 씨의 맘은 이미 정해졌을 테니까.


근데 영자 씨 그때 난 말야 집만 아니면 어디라고 좋을 거 같았어.

그런데 캐나다에서 어학연수라니...

망설일 이유가 없잖아.

내가 걱정스러운 건 오히려 이 집에 남은 사람들이었어.


한 번 떠보듯 던진 말인데 말하다 보니까 정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영자 씨가 '가지말지' 설득할수록 난 '가야 해' 확신이 생겼어. '이건 기회야.'


혼자였다면 이렇게 서둘러 결정하진 못했을 거야.

나는, 결정 장애가 좀 심하잖아.

그런 나를 안 양이 붙잡아줬어.

물론, 날 위해서라기보다… 그녀에게도 함께할 동행이 필요했던 거지.

원래는 같은 과 절친이랑 가기로 했는데, 그 친구가 갑자기 못 가겠다 했거든.

남자 친구가 허락을 안 한다나? 부모도 아니고 *남. 친. 이.

당시엔 그게 참 이해 안 됐지만, 뭐… 그 덕에 내가 기회를 잡은 거였으니까.

그 친구에 대해 길게 생각할 이유는 없었어.


물론 말이 기회지, 공짜도 아니었고 장학금 같은 것도 없었어.

1년 치 학비랑 생활비를 다 개인적으로 준비해야 했거든.

근데도 이상하게 그게 난 '기회'인 것만 같았어.

행동력이 부족했던 나는 혼자 그런 걸 알아보고 어쩌고 하지 못했을 거고, 영자 씨를 설득하는 일도 훨씬 더 어려웠을 거야. 뭐 하나 안정적이지 못한 때였으니까.


이제 곧 졸업, 남들 취업 준비에 바쁠 때 연수를 간다니

영자 씨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왜?' 하는 눈빛이었지만 그들이 뭐라던 상관이 없었어.

나는 아주 신났어.

이유 있는 가출. 말로 다할 수 없는 해. 방. 감!


그때부터 안 양과 나는 본격적으로 친해졌어.

하지만 붙어 다닐 수는 없었지.

안 양은 여유 있을 때 공부 해둔다며 영어학원을

더 열심히 다녔고, 나는 알바를 열심히 했어.

오전엔 J커피전문점, 오후엔 Y학원.

내 인생에 가장 열심히 살았던 때가 바로 그때가 아닌가 싶어.

연수준비하던 시점부터 캐나다에서 보낸 그 시절,

평생으로 보면 그 짧은 2.5년의 시간이.


영자 씨가 학비는 마련해 주겠지만 생활비는 내가 마련하고 싶었어.

그 모든 비용이 부담이었을 테니까.


나중엔 철없는 투정이다 못 들은 '척'마저 하시더니,

안 양 아버님이 고등학교 선생님이란 말을 듣고는 말없이 허락을 하셨던 영자 씨.

그래서 난 영자 씨가 ‘교사’라는 직업에 대해 얼마나 깊은 동경과 신뢰를 품고 계신지 한 번 더 확인할 수 있었지.

물론 조건도 있었지만.

출국 전, 부모님들끼리 인사를 나눌 것.

리고 우리가 신세 질 캐나다 지인분도 꼭 만나볼 것.


안 선생님, 그러니까 안 양 아버지의 동네 친구분이셨던 그분은 곧 대학교수가 될 따님과 함께 한국에 나와 계셨는데, 자녀들이 모두 한국으로 취업해 나오면서 집에 커다란 공간이 생겼고, 우리는 그 공간을 채우기로 했던 거야.

서로에게 좋은 선택이 된 거지.

우리의 하숙비로 그들은 삶이 조금 더 윤택해지고,

우린 안전한 곳에서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게 되었고.






그곳에서 보낸 1년 반은 정말 꿈같았어. 너무나 행복했어..

물론 힘들지 않았다는 건 아니야.

캐나다 생활 9개월쯤 됐을 때, [코리안 비비큐]라는 한식집에서 주말 알바를 시작했는데,
밥 먹으러 오는 클래스메이트한테 짜증이 날 정도로,

가끔은 아주 많이 힘들었어.

어학실력이 부족해 그걸 채우느라 정신없이 바빴고,

고된 나날이었지만…

그래도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이었으니까,

내 생각만 해도 되니까 좋았어.


한국에 있을 때는 뭐 안 그랬나?

글쎄,,, 안 그랬나 봐.

늘 걸렸었나 봐. 눈에 보이니까.

벗어난다는 것 자체가, 그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죄의식이 됐었나 봐.


"Out of Sight, Out of Mind.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


정말 맞는 말 같아.

안 보니까 집 생각이 점점 안나더라...

당신이 그렇게 애타게 전화해서 내 맘 무겁게 하지만 않았으면, 그냥 아예 잊고 지냈을지도 몰라.

그러면 안 되는 거지만...






그러다 어느 날 쪼야한테 전화가 왔어.

아직도 고등학생인 그녀가 술을 마시고 전화를 해서는 못살겠다고 술주정을 하더라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어.

왜인지 물어볼 필요도 없었으니까.

나보다 무딘 아이인데,

주변 분위기에 크게 휘둘리는 아이가 아닌데.

심지어 나하고 별로 친한 사이도 아닌데...

그런 쪼야가, 하나밖에 없는 내 동생이...

그 한밤에... 전화를 해서... 엉엉 울더라고.


"언니, 엄마가 많이 아파... 큰 병은 아니라는데, 많이 아파."


하면서...

.

.

.

전화 요금이 많이 나올 텐데, 한 푼 한 푼에 민감한 영자 씨가,

하루 걸러 하루 전화를 걸어오기 시작한 건,

내가 ‘돌아오마’ 약속했던

1년의 연수 기간이 끝나갈 무렵이었어.
캐나다에서 호텔학교에 진학하겠다고 마음을 굳힌 그 때,

얘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영자 씨는 단호하게 말했지.


“학비 지원은 없다.”


그건 강한 부정이었고,


“괜찮아. 내 갈길을 가겠어.”


나는 겁나지 않았어.


알바시간을 늘리며 맘을 굳게 먹었는데...

동생의 전화를 받았고,,, 심하게 흔들리고 있을 그때,

영자 씨의 전화를 또 받았네.


화가 치밀어 소리를 지르려던 참에 당신이 그랬어.


'내가 이대로 죽을지도 모르겠다.

그냥 와서 얼굴만 한 번 보고 다시 가면 안 되겠냐'고.


그래서...

나는 아무 말도 더 못 하고, 정리를 했어.

다시 이곳으로 올 수 없다는 걸 이미 난 알고 있었던 것 같아, 그때도.

그리고 속으로 계속 생각했어.


엄마가 미움받는 이유는 하나라고. 아빠를 선택한 것.

지금도 이 모든 가족 문제에서 홀로 자유로운 아빠를

선택한 엄마가 난 더 밉다고.


그럼 또 이런 답이 돌아오겠지.

그렇지 않았으면 너희 둘도 없었다고.

내 딸 둘은 아무것도 대신할 수가 없다고...

숨 막히는 대답, 정답을 알 수 없는 말 따먹기.






그렇게 캐나다를 떠나 큰 여행가방을 밀면서 돌아오니

서울, 김포공항에 영자 씨와 쪼야가 서 있었어.

두 사람 다 많이 변한 모습으로. 겨우 1.5년 만인데...

.

.

.

나는 돌아왔고, 그렇게 다시 시작되고 있었어.


"맛있는 거 먹자." 하시길래 나는 영자 씨의 비빔국수가 먹고프다 했어. 그날 해주신 비빔국수랑 같은 맛? 면이 푹 퍼진. 그래도 그날처럼 오늘도 맛있게 냠냠.






영자 씨,

캐나다로 출국할 때 안 양 가족과 우리 가족이 공항에서 만났던 기억이 납니다.

떠나는 두 딸을 배웅하려고 다들 모이셨죠.

그때, 처음 함께 온 동생이 안 양 아버님을 보고 “선생님!” 하고 인사를 해서 모두 순간 얼음!

선생님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제 동생이 다니는 학교의 화학 선생님이실 줄

꿈에도 몰랐으니까요.

이미 부모님들은 인사를 나눈 사이였으나

그땐 동생이 없었고, 어른들의 직업 이야기를 깊게 나눌 상황도 아니었으므로.


갑자기 '딸 친구 아버지'가 '딸의 스승님'이 돼버려서

꽤 당황스러워하셨지만 저에게는 오히려 잘된 일이었어요. 영자 씨의 믿음이 그날 이후 더 단단해졌으니까요.


안 선생님은 인성과 덕망이 뛰어난 존경받는 분이라는 쪼야(동생)의 증언이 빛을 발하며...


사람 속은 알 수 없는 것이지만, 다행히…

정말 다행히 모두 좋은 분들이었고,

그렇게 시작된 저의 서울 탈출기, 캐나다 정착기는

1.5년, 18개월 만에 막을 내렸습니다.


‘다른 방법은 정말 없었을까?’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포기하지 말 것을...

지금 돌이켜보면 늘 이런 생각이 들어요.



*남친 : 남자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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