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만 바라보네
"저기 언니 같은데..."
"어디? "
다시 만난 우린 기억 속의 모습에서 너무 변해 있어서, 서로 좀 어색해했어.
영자 씨는 폭삭 늙어 있었고, 동생은 턱이 빠져 얼굴이 길어졌고.
나는 뚱뚱해져서, 차림새는 마치 물건 떼러 나온 도매상 같았다지.
드라마에서 처럼 좀 멋지게 공부한티 내면서 돌아올 줄 알았나 봐.
그깟 어학연수가 뭐라고...
사실, 정말로 오기 싫어서 그랬는지도 몰라.
내 마음을 온몸으로 표현한 것일지도.
결국 우리 모두는 좀 엉망이었다는 얘기지.
우린 지금도 가끔 그때 누가 더 이상했는지 서로 우기다가 결국 '빵' 웃음이 터지기도 해.
*오십 보나 백 보나. 무슨 차이가 있을까 하면서.
캐나다에서의 18개월은 난 행복했으므로
뚱순이가 되었다 한들 후회는 없었어.
오히려 이제 다이어트까지 해야 하게 생겼으니
서울에서의 내 삶이 얼마나 더 피곤할지...
그곳에서는 아무도 내 몸을 얘기하지 않았는데…
난 벌써 김포 도착한 그 순간부터 숨이 턱 막혔어.
애써 감추었지만...
비빔국수를 먹고 엄마가 주신 다방스타일의 아이스커피를 시원하게 마시고 있자니 파파가 들어오셨어.
"왔냐." 짧게 한마디에 모든 걸 담으시고,
그렇게 며칠 근심 가득한 얼굴로 소파에 앉아계시더니 홀연 사라지셨어.
어디로 가신 건지, 아무도 몰랐어.
늘 있던 일이어서 파파에 대한 걱정보다는
'이번엔 또 무슨 일인지' 그게 더 염려스러웠어.
진실을 알기까지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았어.
이미 당료에 저혈압이 있었던 영자 씨,
타고난 민감함을 감출 수 없던 영자 씨,
노심초사의 전형이던 영자 씨는 병이 깊어져가고...
그런 거에 맘을 쓰지 않는 파파는
자기 뜻대로 일이 안 풀리자 나 몰라라 잠수.
일은 혼자 벌였지만 해결은 또 함께 해야 하는...
더 큰 고통은 우리의 몫.
집이라고 돌아온 지 일주일 만에 맞닥뜨린 현실.
아니, 쪼야가 전화해서 엉엉 울 때부터 감지하고 있었던 불안의 실체.
나는 어떡하라고.
나는 어떡하라고.
무슨 말을 할까요.
울고 싶은 이 마음.
눈물을 글썽이며,
허공만 바라보네...
[윤항기 님의 '나는 어떡하라고' 중]
그땐 누구 노래인지도 몰랐던 이 노래가 그냥 귓속에서 왱왱거렸어.
어쩜 내 맘을 이리도 잘 담은 것일까?
어떻게 이런 노래가사를 썼을까?
"나는 어떡하라고."
유행가 가사에 담을 정도면 누구나 한 번쯤은 겪는 일,
그 주된 이유야 다르겠지만...
그러니 "너무 혼자 유난 떨 것도 없어."라는 메시지를 전해주는 지도 모른다,
는 생각을 지금에서야 해보네.
이 쓰나미를, 몇 번을 홀로 감당해야 했을 영자 씨를
그땐 왜 좀 더 잘 이해해 드릴 수 없었을까?
왜 이 고생을 나까지 하게 한다고 미워만 했을까?
파파는 슬며시 돌아오셔서
없던 일로 하자는 듯 조용히 지내셨어.
"다 내 잘못이다. 미안하다." 하시면서...
그냥 받아들이고 다독해 드려야 하지.
거기서 한 발 몰아치면 더 큰 폭풍을 맞게 되니까.
당장 영자 씨는 "이게 다 너를 만나서 이렇게 된 거다.
우린 너무 안 맞는다."라는 술주정에 시달려야 할 테고
나는 "네가 누구 때문에 세상에 나온 건데?"
라는 야릇한 질문에 침묵하느라,
쓸데없는 에너지를 써야 할 테니.
'이보세요, 정웅 씨,
저는 당신 뒤치닥거리를 하려고 태어난 사람이 아닙니다.
태어나지 않았으면… 아무것도 몰랐을 텐데,
슬플 일도 없었을 텐데요.
왜 이러십니까?' 정말로...
그 화풀이를, 결국 영자 씨, 당신에게 해버렸다는 거.
"그니까 버렸어야지. 떠났어야지. 우리만 데리고. 진작에…"
당신의 입을 막고, 눈을 가리고, 귀를 막게 해 버렸어.
대신 위로를 해드려야 했는데...,
내 맘도 맘이 아니어서...
끝내 "캐나다에서의 1년 반이 내 인생에서 제일 행복했어."라고 말해 버렸어.
그리고,
그 말은 영자 씨의 가슴에 못이 되었네.
설거지를 하면서 울음을 참아내던 당신.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게 더 힘들어서, 나는 조용히 나와버렸지.
지금도 그 말이 진심이었다는 사실이 가장 미안해.
우리 영자 씨,
내가 꼭 좋은 남자친구 만들어주고 싶었는데.
말도 잘 통하고, 영화도 같이 보고, 시 얘기도 나누면서—
파파 없는 세상에서 잠시라도 자유롭고,
여유롭게 살 수 있게 해주고 싶었는데…
기어이, 그렇게 먼저 가버렸네.
‘인생아, 너는 어쩜 그러니.’
그런… 생각 없는 생각을, 지금도 한탄처럼 꺼내곤 해.
누군가는 "너무 하네"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파파 없이,,, 걱정 없이, 편안하게,
영자 씨가 조금만 더 살다 가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지금도 가끔 생각하니까요.
입맛이 씁니다.
달콤한 사탕 하나를 꺼내 물어봅니다.
아주 오래전, 영자 씨가 '첫 사윗감'이라며 좋아하셨던 이병헌 님.
그분이 나왔던 영화, [달콤한 인생]이 떠오릅니다.
하지만 그 영화 속 주인공의 인생도, 전혀 달콤하지 않았죠.
인생이 정말 사탕처럼 달기만 하다면,
결국 우리는 이빨을 다 내놔야 할지도 모르죠.
그러면...
다른 건, 더 이상 먹을 수 없겠죠.
그러니까…
인생은 늘 달콤할 수 없습니다.
다른 것들도 맛보려면요.
#영자씨이야기 #엄마와딸 #나는어떡하라고 #가족의기억 #달콤한인생
* 오십 보, 백보의 유래
전쟁터에서 50걸음 도망간 병사가 100걸음 도망간 병사를 비웃는다.
이 말은 “나름대로 애쓰고 있는데, 왜 나는 인심을 얻지 못하는가”라고 한탄한 양혜왕에게, 맹자가 깨달음을 주기 위해 들려준 비유에서 비롯되었다. 《맹자》「양혜왕 편」에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