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고나 한 조각, 노래 한 조각, 기억 한 조각
영자 씨, 브런치 스토리에서 글을 읽다가 '고향의 봄'이라는 동시를 보게 되었어.
그 동시를 보면서 난 영자 씨 생각을 했네.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린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꽃 동네 새 동네 나의 옛 고향
파란 들 남쪽에서 바람이 불면
냇가에 수양버들 춤추는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고향의 봄 - 작사 이원수 / 작곡 홍난파]
작사가가 이원수 님으로 되어 있잖아.
고향의 봄은 이분이 겨우 15살에 쓴 동시였대.
나 어릴 적 영자 씨가 가만히 자주 불러 주던 노래.
옆에서 나도 모르게 흥얼흥얼 따라 부르곤 했던 그 노래.
그리고 또 하나의 노래
뜸북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제....
우리 오빠 말 타고 서울가시면
비단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
기럭기럭 기러기 북에서 오고
귀뚤귀뚤 귀뚜라미 슬피 울건만
서울 가신 오빠는 소식도 없고
나뭇잎만 우수수 떨어집니다.
[옵바생각 - 작사 최순애 / 작곡 박태준]
최순애 님이 12살에 써서, [어린이]라는 잡지에 발표한 동시 **'옵바생각 '.
최순애 님은 ‘고향의 봄’을 쓴 이원수 님의 아내였다는 사실, 영자 씨도 몰랐지.
영자 씨가 자주 불렀던 이 두 동요가 부부의 노래였다니...
그런데 난 이 노래는 좀 청승스럽다 생각했어.
서울 가신 오빠는 소식이 없다니 안 좋은 생각만 자꾸 들고...
어린 내 마음에는 그랬어. 그래서 속으로만 따라 불렀던 것 같아.
'참 슬픈 노래다.' 하면서...
작게 흥얼거리는 당신에게 하루는 오빠 생각이 나는지 물었었더니,
영자 씨는 그냥 노래니까 하시면서,
어릴 적 할아버지가 살아계셨던 행복했던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셨지.
할아버지 살아 계실 적엔 정말 행복하셨는지,
찬란한 인생의 리즈 시절이 보이는 듯 쓸쓸히 웃으시곤 하셨는데...
그 표정을 나는 정확히는 기억하지 못하겠어. 이상하지?
그 당시 마을에 전축이 딱 두대 있었는데, 하나는 마을 군수댁에, 하나는 당신 집에 있었다며 자랑하듯 고개를 까딱이던 당신.
외할아버지 제자들이 오면 언제나 "우리 상(上) 딸이랑 팔씨름 한 번 해봐라"하고 눈을 끔뻑하셔서
모두 영자 씨 팔아래 무릎을 꿇으셨다고, 내가 경시대회 나가서 상 타왔을 때처럼 행복한 표정을 짓던 당신.
나는 외할아버지를 뵌 적이 없어. 영자 씨가 어릴 때 돌아가셨으니까.
지병이 있었는데 6.25를 겪으면서 더 심해지셨고,
전쟁 끝에 다 잃고, 얼마 남지 않은 재산마저 할아버지 약값으로 써야 했다고 하셨지.
그래도 당신은 할아버지를 늘 그리워했어.
어릴 때 돌아가셔서 당신 손으로 고기 한 번을 사드리지 못했다고...
"우리 상(上) 딸 상딸" 하시면서 언제나 영자 씨가 제일 먼저였다고...
할아버지께서 건강하게 살아계셨더라면 아니, 6.25만 없었더라면...
너무 어릴 때, 너무 많은 복을, 굵고 짧게 다 받은 것 같다 하시는데 왜 그리 쓸쓸해 보이던지...
열댓 살의 나로서는 그 미묘하고 복잡한 미소를 다 이해하기 힘들었고,
그래서 지금도 그 표정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아.
'할아버지'라는 영자 씨의 큰 방패막이가 사라지자,
당신은 오빠가 무섭기도 하고, 또 항상 당신 때문에 뒷전이던 오빠한테 미안하기도 해서
당신 힘닿는 한 온 정성을 다해서 오빠를 도왔다고 했지.
그게 당신 집 살길이다 생각하며...
근데 인생은 뜻대로 되지 않더라고.
거기서 말을 멈추셨어.
더 말하고 싶지 않으신 듯,
그리고는 막 기억난 듯 이 노래들을 다시 시작하셨지.
거의 대부분은 '고향의 봄'을 시작으로
'오빠 생각'으로 이어졌지만,
어느 날은 오빠 생각을 먼저 부르기도 했고,
또 어느 날은 한 곡만 여러 번 부르기도 하셨어.
그나마도 내가 초등학교 졸업 한 뒤로는 그런 대화를 더 나눌 기회도 없었던 것 같아.
그 동요를 같이 부르거나 들을 기회도...
영자 씨도 나도 조금씩 변해서였을까?
아님 일방적인 나의 변화였을까?
이렇게 노래하는 영자 씨를 기억하자니 자동으로 '노래방' 풍경이 떠오른다.
영자 씨 거동이 많이 불편해지기 전까진 그래도 우리 가끔 갔었는데...
영자 씨도 동생 쪼야도 노래 부르는 걸 좋아했으니까.
사실 영자 씨의 최애곡은 아주 많지만
그중 단연 으뜸은 조용필 님의 노래,
기분 좋은 날에 불렀던 '단발머리'
뿅뿅뿅 뿅뿅뿅
그 언젠가 나를 위해 꽃다발을 전해주던 그 소녀... 뽕뿅...
<작사 이건우 / 작곡 조용필 (1980, 1집) '단발머리' 중에서>
이건 꼭 집에서만 부르셨지. 노래방에서는 안 하셨어.
이 노래는 특별히 좋아했다기보다는
당신이 얼마나 신이 났는지 알려주는
'기분 좋아,'알림용 노래였달까?
좀 가라앉는 날은 용필님의 '허공'과 '친구여'를
주로 부르셨어.
꿈은 하늘에서 잠자고
추억은 구름 따라 흐르고
친구여 모습은 어딜 갔나...
<작사·작곡 조용필 (1983, 5집) '친구여' 중에서>
꿈이었다고 생각, (이쯤에서 항상 눈을 감으셨지.)하기엔
너무나도 미련이~ 남아~ (눈을 뜨시고, 내 쪽으로 손을 뻗으시며.)
가슴 태우며 기다리기엔 너무나도 멀어진 그대...
<작사·작곡 정풍송 (1985) '허공' 중에서>
그 외에도 수많은 노래들을 너무 사랑하시고 즐겨 부르셨던 영자 씨.
거기에 비해 내가 부른 노래는 별로 뚜렷이 기억나는 게 없다?
'남행열차' 하나? 흐흣...
나 캐나다 가기 전, 단골 노래방 갔을 때, ***우리 노래를 녹음해서 카세트테이프에 담아 주셨잖아.
영자 씨, 나 옆에 없을 때, 내 목소리 내 노래,
테이프 늘어지도록 들으면서 하루하루 버텼다고 해서,
"이 무슨 눈물 없인 들을 수 없는 사랑고백"이냐며,
"내님한테 들어야 할 말을 영자 씨한테 듣다니,****웃프다." 했던 기억나?
별일은 없겠지? 잘 지내고 있겠지. 걱정되고 보고 싶다가도,
비 내리는 호남선 남행열차에 하고
흥겨운 내 목소리가 나오면, 또 하루 힘내서 살아졌다고...
외출이 쉽지 않아 지면서는 안방을 노래방 삼아 노래하시면서
월요일 밤이면 가요무대를, 일요일 아침엔 전국 노래자랑을 빠지지 않고 보셨어.
목소리도 이제 잘 안 나온다 하시면서...
신도 많고, 꿈도 많고, 그래서 하고픈 것도 많았을 텐데...
처녀시절엔 오라비에게
결혼하고서는 남편에게
그리고는 또 자식에게...
그렇게 많은 걸 내어주며 행복을 찾으려 하셨던 당신 삶.
그럼에도 "고마워."보다는 "당신 때문이야."라는 말을 더 자주 들어야 했던 영자 씨.
맘고생 정말 많이 하셨을 텐데...
어쩌면 인생은 자신의 삶부터 먼저 챙겨야 하는 건지도 몰라.
내 몸부터 먼저 지켜야 하는 건지도 몰라.
조금 많이, 이기적으로 살아야 하는 건지도 몰라.
정답이 있을까?
오는 2025년 9월 6일, 조용필 님의 콘서트가 열린다고 해요.
우리나라 광복 80주년을 기념해 KBS에서 주최하는 무대라고 합니다.
용필 님의 콘서트 한 번, 가요무대 방청 한 번도 함께하지 못한 게 못내 아쉽고 죄송해요.
아쉬운 게 한두 가지일까만, 지금도 이런 방송을 우연히 마주칠 때면 미안함이 밀려옵니다.
"이게 뭘까요, 영자 씨?" 달고나예요
'오징어 게임'이라는 한국 드라마가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뒤, 이 달고나가 여기저기 다시 등장하기 시작했어요.
해외 영상에도 자주 올라오고...
요즘은 그 열기가 식어 주춤해지긴 했지만요.
며칠 전, 동네 '노브랜드'에 먹거리 사러 가다가 이걸 봤어요.
핸드폰을 옆에 두고 열심히 달고나 뽑기를 하고 있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또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요.
영자 씨가 두 판 모두 모양 뽑기에 성공했는데,
별 모양이었나? 하트는 아니었던 거 같은데... 가물가물.
그중 하나는 침범벅이라며 아저씨가 무효라고 했던 일.
"그러는 게 어딨냐"고 따져봤지만,
아저씨가 웃으며 한마디 했잖아요.
"나도 먹고살아야지."
결국 조용히 입 다물고 돌아서던 영자 씨의 모습이 떠올라, 혼자 빙그레 웃음이 납니다.
공감(0感 ) - 영화 '오빠 생각'리뷰
*뜸북새 : 뜸부기, 논밭 근처에서 “뜸북~” 소리 내는 여름 철새!
**옵바생각 : '오빠생각' 발표 당시 제목
***노래방 테이프 녹음 서비스: 1990년대에 유행, 손님이 부른 노래를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해 주는 시스템.
부른 노래가 마이크를 통해 녹음되고, 반주음악과 함께 테이프에 그대로 저장되는 방식.
****웃프다 : 웃기고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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