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늘 Nov 15. 2021

혼자가 필요할 때

매주 금요일, 시댁에서 아이를 봐주신다. ‘자유 부인’이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지만, 남편도 아이도 없이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 자유는 자유다. 아주 달콤하고 절실한 자유! 아무튼, 내게 주어진 이 소중한 자유 시간 덕분에 나는 목요일까지 내가 가진 체력과 정신력을 끌어모아 육아를 한다.


그리고 드디어 금요일이 오면, 아침 일찍 일어나 아이를 먹이고 씻기고 짐을 싼 뒤 일주일 만에 곱게 화장을 한다. 계획 없이 느긋한 일정을 선호하지만 금요일만큼은 어디를 갈지, 누구를 만날지 아주 신중하고 또 신중하게 스케줄을 짜는 편이다. 몇 주 전부터 금요일 낮에 만날 친구를 섭외하고 평소 틈틈이 캡처해두었던 '가고 싶은 곳' 리스트를 꺼내 훑어본다. 그 친구가 어디에 사는지, 활동 범위가 어느 정도인지에 따라 세심하게 만날 동네를 추리고, 주변에서 가고 싶었던 곳을 찾아내는 수고로움도 기꺼이 감수한다.


그리하여 언젠가부터 나의 금요일은 속이 꽉 차 터지기 직전의 유부초밥 같은 하루가 되었다. 주말에는 절대 갈 수 없는 맛집에서 점심을 먹고 커피 한 잔 하고 헤어진 뒤, 집에서 운동을 한 시간 하고, 시댁 근처 카페에서 일을 하다가 아이를 데리러 가는 극한의 스케줄. 하루쯤 푹 쉬라고 주시는 시간인데, 일주일 중 가장 바쁜 하루라는 것이 함정이다.


물론 금요일은 죄가 없다. 엄마와 내 이름 사이에서 가까스로 균형을 잡으며 살 수 있는 건 이 금요일 덕분일 것이다. 그런데 어쩐지 시간이 갈수록 뭔가 헛헛한 기분이 든다. 생각해보니 평일에는 아이, 금요일에는 나, 주말에는 가족과 뭘 하면서 보낼지 검색하는 데 꽤 많은 시간을 썼고, 미션 클리어 하는 기분으로 끊임없이 누군가를 만나고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늘 시간이 아깝고, 아까워서 꽉 채우다 보니 하루하루 곱씹을 틈도 없이 지나간다. 괜찮은 걸까.




얼마 전 엄마 집에 갔다가(이날도 경기도에서 점심을 먹고 충청도에서 저녁을 먹는 하드한 스케줄이었다) 탁자 위에 놓여 있던 <지금은 나만의 시간입니다>를 발견했다. <나의 하루는 4시 30분에 시작된다> 저자의 신작이 나왔구나, 하면서 가볍게 책장을 펼쳤다가 앉은자리에서 훌훌 다 읽고 말았다. 새벽은 나와는 거리가 먼 시간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응 좋지만 나는 못해' 하고 지나쳤던 작가의 책이라 별 기대 없이 집어 든 참이었다. 한 줄 요약하자면, 새벽이든 대낮이든 한밤이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당연한 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책을 덮지 못했던 건 읽으면서 찔렸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주 많이.  


우연히 생긴 여유 시간에 그동안 못한 일을 하는 것 역시 나만의 시간을 가지는 게 아니다. 머릿속으로 잠시 개인적인 생각을 하는 것 또한 나만의 시간을 보낸다고 할 수 없다. 퇴근하고 집에서 혼자 하루를 되돌아보며 할 일은 다 했는지, 유명 연예인의 스캔들이 나지는 않았는지 확인해보는 것도 나만의 시간을 보낸다고 이야기할 수 없다. 평소에는 관심 없던 사람이 문득 떠올라 잘 지내는지 안부를 묻거나 SNS를 확인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틈틈이 이동 시간에 자신만의 시간을 보낸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시간도 엄밀히 따지면 나만의 시간이 아니다.

<지금은 나만의 시간입니다> 중에서


아이의 낮잠 시간 혹은 남편이 퇴근한 후에 잠시라도 짬이 나면 나는 원고를 살펴보거나, 할 일 혹은 한 일을 체크하거나, 인스타그램을 뒤적이거나, 알고리즘이 추천해준 쇼핑몰에서 쇼핑하거나, 금요일에 가고 싶은 곳을 찾으며 시간을 보낸다. 분명 혼자 시간을 보냈는데 어딘지 개운하지 않은 뒷맛에 찝찝해하면서. 저자의 말대로라면 그건 '나만의 시간'이 아니었던 것이다.


중요한 점은 이 시간을 적극적으로 계획해야 한다는 것이다. 짬이 나면 혼자 있겠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이때만큼은 나만의 시간을 갖는다’고 다짐해야 한다.

<지금은 나만의 시간입니다> 중에서


책을 읽을 땐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렇다고 하루아침에 습관을 바꾸지는 못했다.




지난 금요일에는 전시를 보고 왔다. 아침부터 남편과 교대로 씻으며 준비를 하고, 비몽사몽인 아이와 아이에게 필요한 물건들을 바리바리 챙겨 아버님 차에 실어 보냈다. 평소보다 두 시간쯤 빨리 보냈는데도 시간이 빠듯하다.


일주일 만에 지하철을 타고 전시장으로 향한다. 다정한 남편이 손수 껍질까지 까서 싸준 삶은 계란 두 알과 고구마는 꺼내지도 못한 채 빈 속에 전시장을 누볐다. 두 시간을 꽉 채워 전시를 본 뒤, 뜨끈한 바지락 칼국수를 한 그릇 클리어하고, 인스타그램에서 오래전에 캡처해두었던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마셨다. 역시나 알찬 오후다. 일 때문에 먼저 일어나는 친구를 배웅하며 같이 일어설까, 근처에 사는 다른 친구를 부를까 잠시 고민하던 찰나에 번뜩 책이 생각났다. 아주 오랜만에 혼자 시간을 보내 보기로 했다.


그러나 막상 혼자만의 시간이 생기자 영 어색했다. 이상하다, 혼자 참 잘 놀았던 것 같은데. 노트북도 두고 왔고, 핸드폰은 배터리가 20%. 얼마 동안은 밀린 카톡에 답장하고 남편이 부탁한 물건을 구매하고 가족사진을 예약하고 오늘 찍은 사진을 정리하고 새로 검토하기로 한 원고를 흘긋거리면서 보냈다. 그러다 아차 싶어 핸드폰을 멀리 치우고 창밖을 봤다. 다시 스멀스멀 밀려오는 잡생각들. 차 밀리기 전에 집에 가야 하는데, 몇 시쯤 나가면 되나, 몇 번 버스를 타야 하더라, 그 생각을 하다가 얼마 못가 내려두었던 핸드폰을 집어 들어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나만의 시간'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도 잊지 않고 혼자 시간을 시도했다는 것에 만족하기로!




이번 주는 반짝 날씨가 좋을 예정이라고 한다. 벌써부터 엉덩이가 들썩거린다. 이번 주 금요일엔 뭐하지? 평일에 아이랑 소풍을 가야 되나? 이번이 마지막 소풍일 것 같은데? 준수네랑 같이 갈까? 주말엔 어디 가지?... 습관처럼 휴대폰을 뒤적거리다가 정신을 차리고 내려놓았다.

돌아오는 금요일엔 집에서 주변을 정돈하고, 동네 카페에서 두어 시간 정도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볼 '계획'이다. 노트북도 친구도 없이 혼자서! "이때만큼은 나만의 시간을 갖는다" 아자아자.


매거진의 이전글 여름을 보내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