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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Aug 17. 2021

여름을 보내며

잘 가 (가지마) 행복해 (떠나지마)

무지막지한 더위가 한풀 꺾이자 산책할 여유도, 남편 얼굴을 가만히 만져볼 여유도, 아기의 울음소리가 귀엽다고 생각할 여유도 생긴다.

 

정말이지 무자비한 여름이었다. 가만히 있어도 지칠 만큼 덥기도 했지만, 많은 일이 마무리되지 않고 펼쳐져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더불어 육아와 운동과 식단을 병행하는 (코로나 시국의) 여름이란! 마음대로 외출을 할 수도 없고, 아기가 어려 수영하러 갈 수도 없고, 신나게 수확한 열매들을 눈앞에 두고도 마음껏 먹을 수 없으니, 여름이 여름이 아니었다.   


계획했던 많은 일들이 입추를 기점으로 한 번에 일단락되었다. 8월 중순이 되어서야 매년 여름 그랬던 것처럼 현수와 손톱에 봉숭아물을 들이고, 여름 파스타를 만들고, 복숭아를 마음껏 깎아 먹는 것으로 그간의 퍽퍽함을 달랬다. 이제야 여름을 보내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올해로 세 번째 봉숭아 물들이기 모임. 올해는 발꼬락도!


입추가 지나고, 이른 아침 열어본 문틈으로 훅 선선한 바람이 끼쳤다. 아 여름이 지나가고 있구나, 알았다. 이럴 때마다 절기의 정확함에 오소소 소름이 돋는다.


한여름에 나는 조금 초조한 마음이었는데, 하반기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 생각하면서 느긋한 마음이 되었다. 방향을 정했기 때문이다. 우선은 오늘을 잘 살아내고 싶다. 그 오늘들이 모여서 내가 된다는 걸 잊지 말고.

아침 운동과 저녁 공부, 편집 작업과 글쓰기, 그리고 육아. 틈틈이 사랑과 다정함을 잃지 않으면서 사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허다, 올해는!


늦여름과 초가을은 소풍의 계절. 아직 남은 여름의 열기와 선선한 바람 사이에서 소풍처럼 즐기면서 만추를 맞이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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