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면접을 봤다. 가고 싶은 몇 안 되는 출판사 중 한 곳에 채용 공고가 떴다고 함께 일했던 동료가 소식을 전해 주었고, 그날로 서류를 준비해 지원했다. 며칠 만에 면접을 보자는 답이 왔다. 그제야 현실적인 걱정들이 스멀스멀 밀려왔다. 돌도 안 된 여름이는 어쩌나, 동네 어린이집에 전화를 돌려봐야 하나, 파주까지 출퇴근은 어떻게 하지, 등원은 오빠가 하면 되고, 시부모님이 하원은 도와주실 수 있지 않을까.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픽 웃음이 났다. 일단 붙기나 하자.
2차는 시험이고, 3차는 면접이라고 했다. 교정교열은 도대체 어떻게 시험을 보는 건가, 채점은 또 어떻게 한다는 거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뭐라도 하는 게 마음이 편할 것 같아 맞춤법 책을 한 권 샀다. 오랜만에 학생이 된 기분으로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점검하며 일주일을 보냈다. 그 일주일 동안 여름이는 돌발진에 걸려 열이 40도 가까이 올랐고, 매일 밤 손수건에 미지근한 물을 적셔 몸을 닦아주며 짬이 나는 대로 책을 봤다. 그거라도 해야 뭔가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
대망의 면접 날. 아침 일찍 시부모님께 아기를 맡기며 챙겨 먹여야 할 약과 시간, 체온계 사용법, 종류별 해열제 용량 등을 적어 보냈다. 오랜만에 화장을 하고 손목시계와 필기구와 맞춤법 책 같은 것들을 챙겨 파주 가는 버스에 올랐다. 너무, 더웠다. 아이폰 메모장에 빼곡히 적어둔 면접 예상 질문과 답을 곱씹으며 가다 보니 멀미가 났고 '출판 단지에는 식당이 너무 적네'하다가 정류장을 지나쳤다. 한 정거장을 걸었다. 너무, 너무, 더웠다.
여유 있게 출발한 덕에 한 정거장을 걷고도 시간이 한참 남아 근처 카페에서 아아를 벌컥벌컥 들이키며 열을 식혔다. 이제 준비는 의미 없고 그냥 떨지 말고 하고 오자. 시간 맞춰 시험이 시작됐다. 익숙한 A3 교정지를 받아 드니 마음이 편해졌다. 한 시간 교정을 보고(따로 맞춤법 문제도 나왔고, 의외로(!) 맞춤법 책이 도움이 됐다) 한 시간 대기, 그리고 다시 면접. 가나다 순으로 면접을 봐서 제일 먼저 나왔는데도 네 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면접을 마치고 든 생각은, '아 오늘 집에 가서 이불킥을 하겠군.'
면접은 의외로 기본적인 질문이 주를 이뤘다. 예상 질문은 모두 예상을 비껴갔고, 경력이나 그동안 만든 책이 아닌 '나'에 관해 묻는 질문들에 (몹시) 당황했다. 면접을 마치고 나와 출판 단지에서 일하고 있는 후배를 잠깐 만났다. 면접 어땠냐는 말에, 질문이 이상했다고, 그런데(뜬금없이) 이번 주 내내 아기가 아팠다고, 그래서 정신이 없었다고 변명하듯 말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고 좀 멋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오늘, 그 출판사로부터 '아쉽지만 함께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라는 메일을 받았다. 면접을 보고 온 이후 며칠간 내가 뱉은 어설픈 답들을 곱씹으며 이불킥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더욱 어지러웠는데, 막상 메일을 받으니 마음이 차분해졌다. 면접은 언제나 어렵지만, 이번에는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아서 이 글을 쓴다.
나는 왜 면접을 망했나?
1. 확신이 없어서 -> 정리가 안 되어서 -> 생각을 깊게 해보지 않아서
자기소개를 해달라, 본인 성격이 어떤 것 같나, 일하면서 무엇이 가장 어려웠나, 같은 질문에 특히 당황했는데, 어려운 질문도 아니고 '나'에 관한 이야기 물을 때 당황한 것이 당황스러웠다. 가장 큰 이유는 요즘 스스로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나에 대해 생각하고 정리하는 시간 + 나에 관해 남에게 또렷하게 이야기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2. 없는 얘기를 하려고 하니까
'나'에 관한 질문 다음으로 당황한 질문은, 요즘 어떤 서점을 자주 가나, 어떤 책을 좋아하나, 최근 읽은 관련 서적은 무엇인가, 최근에 서점에서 본 책 중에 장정이 마음에 들었던 책이 있나, 구독하고 있는 일간지나 월간지가 있나, 같은 유였다. 이 질문들에 당황한 이유는 명확하다. 밑천이 드러난 것이다. 요즘, 서점을 자주 가지 않는다. 최근에 관련 서적을 사서 읽지 않았고, 구독하고 있는 일간지나 월간지도 없다. 회사에 다니는 동안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예민하게 안테나를 세우며 지냈지만, 요즘은 프리랜서라는 이름으로 겨우 편집만 하면서 사는 중임을 들킨 것이다.
뿐만 아니다. "거기 규모가 어때요?" "편집자는 몇 명이예요?" "거기 올해 몇 권 나왔어요?" 면접이 끝나고 난 뒤 만난 후배의 질문에도 나는 똑부러진 답을 하지 못했다. "글쎄? 모르겠네?"라는 트리플 답변에 후배는 "그건 모르면 안 되죠, 선배." 한마디 했다. 그 말이 마음에 턱 걸렸다. 투덜댈 때가 아니다. 그 출판사에 가고 싶다고 말은 했지만, 정작 해당 출판사에서 나온 신작들을 찾아 읽지도 않았고, 올해 나온 책이 몇 권인지도 파악하지 않았다. 뭘 '준비'했다고 할 수 있을까.
정신이 번쩍 든다. 스스로를 뾰족하게 다듬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자.
지웠던 온라인 서점 어플을 다시 다운 받아 장바구니에 읽고 싶은 책을 담았다. 날도 더운데 선풍기 끼고 책 좀 많이 읽어야지. 글로 쓰고 나니 너무나 적나라하고 창피하지만, 이번 일을 잊지 말고 곱씹어야지. 좋은 선배 말고 배울 게 있는 선배가 되어야지. 여름이 핑계를 대지 말아야지. 이불킥은 오늘까지만 해야지!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