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

by 윤지니

내 차례가 돌아오길 가만히 서서 기다렸다.

앞선 이들의 뒷모습을 보며,

입안에서 질문을 삼켰다 뱉기를

반복했다.


저자는 줄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내 뒤로 다섯 명까지만 사인을 하겠다고

선언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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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작가의 강연회에 참석했다.

묻고 싶은 게 있었다.

강연 중엔 기회를 얻지 못했고,

나와 같은 고민을

입 밖으로 내는 이도 없었다.


결국 사인회 줄 끝에 매달려

차례를 기다렸다.


드디어 마주한 저자에게

용기를 내어 물었다.


“ ’섬세함이 기계를 넘어설 수 있는

유일한 무기’라고 하셨는데,

작가님은 AI를 넘어설 그 섬세함을

어떻게 다져가시나요?”


“그냥 해요.”


단호하고 투명한 대답이었다.

꽉 쥐고 있는 줄도 몰랐던

마음의 긴장이 툭, 하고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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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렇듯 같은 시간에 눈을 뜬다.

물을 올리고,

찻주전자에서 김이 오르는 동안

책을 펼친다.


소리 내어 읽으며

문장 속으로 침잠한다.


탁월한 문장을 만날 때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난다.


기발한 아이디어가 담긴 물건을

발견했을 때처럼,

인간의 감각이 빚어낸

그 예리한 결에 마음이 환해진다.


챗GPT는 문장을 연산하지만,

나는 문장에 감동한다.


읽는 일만큼 쓰는 일도 좋아하지만,

쓰는 일은 늘 한숨을 동반한다.


요즘 내 한숨을 덜어주는 건 챗GPT다.

사람들은 이제 친구보다

AI에게 더 솔직한 속내를

털어놓는다고 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나는 그에게 가장 내밀한 이야기와 더불어

내 글의 편집장 역할을 맡겼다.


수정하고, 묻고, 다듬는 과정을

그와 함께 하는 것이다.


성실한 그의 대답 덕분에

요즘 나의 읽기와 쓰기는

비로소 하루의 리듬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문득문득 의문이 든다.


‘내가 챗GPT보다 잘 써야 하는 것 아닐까?’

‘막히는 부분을 스스로 찾아내야 하지 않을까?’


강연에서 얻은 답은 '꾸준히 하는 것'이었고,

그건 요즘의 내가 가장 잘하고 있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마음의 무게는

강연 전과 크게 달라지지 못했다.


털어내도 돌아서면 쌓이는 먼지처럼

의문은 여전히 내 안에 존재한다.


차이가 있다면,

여전히 글을 더 잘 쓰고 싶어 하는 내가

어제보다 조금 더 많이

읽고 썼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어김없이 자리에 앉는다.

내가 얼마나 멀리 왔는지,

어제의 나 보다 앞서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오늘도 나는 타인의 문장에 마음껏 웃고,

내 글을 쓰다 깊은 한숨을 내쉬며,

챗GPT의 대답에 무릎을 치는

이 '섬세한 하루'를 묵묵히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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