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인간적인 선택, 가장 어리석은 방식**
사주에 불(火)이 없는 사람은
붉은색을 곁에 두면 좋다는 말을 들은 뒤부터,
나는 빨간 가방을 메고 다닌다.
꼭 믿어서라기보다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에서다.
얼마 전 저녁 식사 자리에서
비슷한 사람들을 만났다.
금(金)이 부족한 사람은
팔목에 금속 액세서리를 여러 겹 감고 있었고,
나무(木)가 모자란 사람은
가방에 초록색 인형을 매달고 있었다.
같은 이유로 자신을 지켜줄 부적을
늘 곁에 지니고 있는 우리는
잠시 서로를 바라보다 웃음을 터뜨렸다.
각자의 부적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그날 저녁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사람은 종종 보이지 않는 빈자리를
눈에 보이는 것으로 채운다.
손에 잡히는 물건이나 색깔,
혹은 반복되는 행동 같은 것들로.
그것이 실제로 무엇을 바꾸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렇게라도 해야 하루를 건널 수 있을 때가 있다.
그 연장선에서, 나는 관악산으로 향했다.
집 근처의 익숙한 산들을 두고
굳이 먼 길을 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같은 소원으로 세 번 산을 오르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운칠기삼이라고 했다.
그 운마저 내 편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산행을 택한 것이다.
두 번째로 걷는 길은 첫날과 달랐다.
전날에는 지나쳤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바위 틈새마다 층층이 쌓인 돌탑들,
손이 닿지 않을 만큼 높은 곳에 끼워진 동전들이
누군가를 대신해 끈질기게
그 자리에 버티고 있었다.
멀리서 바라본 연주대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의 소원이 보였다.
붉은 연등의 모습을 한 소원들은
단단하게 고정되어
거센 바람에도 흔들림이 없었다.
호기롭게 오르겠다고 다짐한 첫날과 달리,
둘째 날은 쉽게 엉덩이가 떨어지지 않아
산행이 늦어졌다.
그 덕분에 고요한 기도실에서
서두르지 않고 불상을 바라볼 수 있었다.
부처상의 이마에 박힌 보석이 반짝였다.
어제는 왜 보이지 않았는지 잠시 생각했다.
은은하게 시선을 붙잡는 빛 앞에서,
숨을 가다듬고 천천히 세 번 절을 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봤다.
그곳에도 이름표가 빼곡히 달려 있었다.
이 많은 소원이 정말로 이루어질 수 있을까.
그게 가능한 일인가.
기도를 마치고 서둘러 산길을 내려왔지만,
어둠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눈앞이 조금씩 희미해지더니
이제는 휴대폰 불빛 없이는 앞이 보이지 않았다.
최대한 휴대폰을 높이 들어
불빛을 넓게 퍼뜨렸다.
분명 오를 때는 하나였던 길이
두 갈래로 갈라졌다.
잠시 망설이다
무작정 하나를 골라 내려왔다.
점점 낯설어지는 길에 몸이 굳어졌다.
멈춰서 뒤를 돌아봤다.
하지만 돌아가기엔 이미 멀리 와 있었다.
왜 굳이 이런 선택을 했을까.
두 번째 산행을 앞두고 차오른 망설임을
못 이긴 척 외면하지 않았다면
겪지 않았을 고립이었다.
결핍을 채워보겠다는 미련이
결국 나를 어둡고 추운 길 위로 밀어 넣었다.
휴대폰을 쥔 손의 감각이 얼어붙는 와중에
피식 웃음이 났다.
차라리 이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방구석에 가만히 앉아
형체 없는 불안에 압사당하는 것보다,
눈앞의 실재하는 추위와 사투를 벌이는 쪽이
훨씬 더 안전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다짐했다.
내일 또 오겠다고.
세 번의 걸음을 모두 채우겠다고.
정말 소원이 이루어질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무언가를 믿는 시간만큼은
기어이 하루를 버텨낸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의 이 발걸음은 결코 헛되지만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