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윤섭 동화 <서찰을 전하는 아이>
동화 <서찰을 전하는 아이>는 동학농민운동을 배경으로 비밀이 담겨있는 편지를 전하기 위해 길을 떠난 한 아이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역사동화다. 흔히 역사동화라고 하면 단순히 역사적 사건을 풀어쓴 것에 불과한 경우가 있는데, <서찰을 전하는 아이>는 작가의 치밀한 상상력을 더해 동학농민운동을 흥미롭게 복원하고 있다. 사건의 키를 잡고 있는 주인공도 전봉준 장군이 아니고 보부상 아이다. 이야기를 읽었을 뿐인데 동학동민운동의 배경과 의미를 알게 되는 것은 덤이라고나 할까. 이 동화를 읽는 어린이들을 위해 책의 마지막에는 동학농민운동에 대한 정보 글과 사진이 실려있다.
보부상의 아들인 나(아이)는 처음으로 얼굴을 웅덩이에 비춰보고는 자신의 얼굴인지도 모르고 말한다.
"너는 양반은 아니구나. 네 얼굴은 그냥 봇짐장수에 딱 맞아."
양반과 양반이 아닌 자. 아이의 정체성과 슬픔은 그 말속에 담겨 있다. 조선 후기, 양반 아닌 숱한 존재들이 모여 나라를 뒤엎는다.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동학농민운동이다. 혼탁해진 나라로 인한 야만의 역사 속에서 가장 약자였을 보부상의 아들인 이 어린이가 <서찰을 전하는 아이>의 주인공이다. 작가는 동화의 초반 주인공 아이가 예사롭지 않은 운명을 타고난 인물임을 여러 문학적 장치를 통해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다.
거인의 배꼽과 웅덩이
시원한 물
약이 되는 노래
배꼽은 출생과 동시에 모체와 분리된 경험을 보여주는 흔적이다. 필연적으로 ‘단독자’가 될 아이는 뛰어난 공감능력으로 주변인의 슬픔과 한을 타령으로 풀어내며 위로한다. 지켜야 할 법도가 많고 출입이 제한적이었을 양반 아이에게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거지의 노래를 불러준다거나 혼자 사는 주막집 아주머니에게 님을 기다리는 탄식가를 부르는 식이다. 이것은 노래를 듣는 이들에게 '막혔던 목이 시원하게 뚫리는 물' 같은 느낌을 안겨주며 노래가 약이 되는 신비한 효과를 준다.
갑자기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대신해 서찰을 전하기로 한 아이는 이와 같은 공감능력으로 책장수 노인, 나그네, 약방 주인, 양반 도령을 만난다. 누구에게 서찰을 전해야 하는지 알아야 했으므로 그들에게서 '오호피노리경천매녹두'의 뜻을 한 글자 두 글자씩 배우게 된다.
아이가 만나는 인물 중 가장 중요한 이는 천주학 어른과 김진사댁 양반 아이로 보인다. 천주학 어른에게서는 신 앞의 평등이라는 천주학의 교리를 듣는다. 동학에도 '모든 사람은 하늘을 닮아 존귀하다'는 비슷한 교리가 있다. 처음에는 평등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이후 김진사의 온화함과 양반 아이와의 우정을 통해 그 의미를 조금이나마 체화하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완고한 세상의 벽을 일찍 깨달은 아이는 현실을 바꾸려는 나름의 노력을 통해 자신이 행복하다고 느낀다. 양반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던 행복이라는 빛나는 가치를 천민인 자신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아이는 알게 되었다. 서신을 전하는 것은 아버지의 일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아이의 과업이 되었다. 그렇게 아이는 역사적 현장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나는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왜 달리고 있는지 나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달리는 동안에도 세상의 어느 것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귓가에 들려오는 것은 오직 내 심장 소리뿐이었다. 한참을 달리고 나서야 내가 우금치 고개 쪽으로 달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러나 서서히 내 앞에 보이는 것이 눈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두 볼에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거기 쌓여 있는 건 눈이 아니었다. 그건 사람들이었다.
<서찰을 전하는 아이> 중에서
아이는 우여곡절 끝에 서찰을 전한다. 이어 아이가 부르는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노래는 전봉준 장군을 향한 것이기도 하지만 아이 자신의 슬픔을 토해내는 노래이기도 하다. 아이가 길 위에서 만나 노래로 시름을 달래준 사람들의 사연과 마음, 그리고 동학군의 승패에 귀를 기울이던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면 조선 후기 폭압의 정치가 보인다. 망해가는 조선, 청나라와 일본의 전쟁이 조선 땅에서 일어나고, 관군이 일본군과 합세해서 조선의 양민을 잡는 망조든 국가의 미래는 결국 일제강점기의 어둡고 긴 터널이었다. 그리고 고통을 온몸으로 감당하고 수습하는 것은 평범한 사람, 양민, 시민들이라는 것을 생각해 본다.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 아버지의 과업을 완성하고 모든 짐을 훌훌 털어버린 듯, 회상에서 현실로 돌아온 아이는 웅덩이 속 자신의 얼굴을 자부심으로 들여다본다.
나는 웅덩이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 안에는 열네 살의 아이가 들어 있었다. 나는 그 아이의 얼굴이 좋아졌다.
"보부상의 아들인 네가 자랑스럽다."
내가 말했다. 물속의 아이는 웃고 있었다.
나는 웅덩이 물을 다시 손에 담아 마셨다. 웅덩이 물은 여전히 시원했다.
<서찰을 전하는 아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