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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May 02. 2024

오만과 편견

제인 오스틴 장편소설

재산깨나 있는 독신 남자에게 아내가 꼭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진리다. 이 진리가 사람들의 마음속에 워낙 굳게 자리 잡고 있는 까닭에
이웃에 이런 남자가 이사 오면 그의 감정이나 생각을 모르더라도
다들 그를 자기네 딸 가운데 하나가 차지해야 할 재산으로 여기게 마련이다.

<오만과 편견 중에서, 민음사>  



낭만적 연애 따위 저 멀리로 뻥 차버리는 도입부가 인상적인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은 결혼과 여성의 독립에 대한 문제를 사회적 계급이나 경제적 문제와 연결 지어 이야기하고 있다. 


영국 사회에서 귀족보다는 아래인 중간계급이라고 할 수 있는 젠트리계층(시골지주)의 여주인공 엘리자베스는 당시 여성들과는 다른 결혼관을 지니고 있었다. 엘리자베스에게 "결혼을 잘하고 싶은" 것은 "부자 남편을 골라잡을" 욕심이며, 연애에서 중요한 것은 전략이라기보다 자연스럽게 흐르는 진실한 감정이다.  


그러나 엘리자베스가 처한 상황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당시 엘리자베스와 자매들에게는 부모님의 재산을 상속받을 법적 근거가 없었던 것이다. 그들에게는 아들형제가 없었기 때문에 상속은 남자인 사촌이 받을 예정이었다. 그렇다고 엘리자베스가 경제적인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재산이 많지 않은 당시 여성들에게 결혼은 자신의 경제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열쇠였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엘리자베스의 결혼관은 매우 독특한 것이었다. 그는 모든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성품이라고 여기며, 이는 계급과 부에 따른 차별을 반대하는 마음에서 온 것이다. 엘리자베스는 성숙한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권력이나 부가 아니라 '재능과 덕'과 같은 정신적인 것임을 인식하고 있었다. 이것은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의 원천이기도 하다. 이러한 엘리자베스의 생각은 남자주인공 다아시와의 갈등을 통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엘레자베스는 첫 만남에서 다아시를 무례하다고 느낀 뒤 그에 대해 오해한다. 소설의 제목에도 사용된, '편견'이라는 키워드가 보여주듯 다아시에 대한 불쾌감은 꽤 오랫동안 엘리자베스를 지배한다. 소설이 진행되면서 다아시에 대한 호감이 생기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엘리자베스에게 다아시는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것의 총합, 그 자체일 뿐이었다. (솔직히 다아시 망한 첫인상은 약간 지인지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ㅠ) 


다아시 역시 엘리자베스와 마찬가지로 의도를 감추거나 뭔가 꾸며내는 말은 하지 않는다. 이러한 점 때문에 엘리자베스의 오해를 사기도 한 것이지만, 그는 '가식을 혐오'하며 감정을 조금도 낭비하지 않는다. 다아시의 깐깐한 성격에 단점만 있었던 것은 아닌 것이다! 성격면에서는 엘리자베스와 똑닮아 천상의 커플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갈등을 풀어나가는 그들의 느릿한 서사는 독자로 하여금 주인공 남녀의 관계가 경제적이고 현실적인 문제에서 오는 것이 아닌 오롯이 그들의 사랑으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생각하게 한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매력적인 그들의 캐릭터가 독자들을 설득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소설의 마지막, 주인공 커플의 썸을 알게 된 다아시 친척인 귀족 부인의 무례한 말은 오히려 엘리자베스로 하여금 스스로의 감정을 완전히 긍정하게 한다. 이 사건을 통해 엘리자베스는 신분의 차이에 따른 방어기제들을 내면의 힘으로 무너뜨린다. 다아시와의 관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엘리자베스는 변태에 가까운 극적인 내적 성장을 이루어 내며 독자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겨준다.  



엘리자베스와 다아시는 그들의 관계성 안에서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고 사랑을 성취한다. 그들을 가로막았던 계급과 경제적인 조건의 차이는 더 이상 문제가 될 수 없다. 동반자로서 그들은 개인 대 개인으로 결합했으며 이들의 관계가 낭만적일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특유의 낭만으로 진짜 현실을 가린 결과물이기도 하다. 엘리자베스가 이룬 것은 내적인 성장과 꿀리지 않는 결혼이지, 완전한 독립이라고 볼 수는 없다. 1800년대 출판물 속 엘리자베스는 결혼하지 않는 삶은 상상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제 더 이상 결혼은 계급과 재산을 확대 재생산하는 기제가 되어주지 못한다. 현대 여성에게 결혼은 사회적 기회의 차단으로 읽히며 많은 여성들이 결혼을 선택하지 않는다. 엘리자베스에게 다른 기회가 있었다고 해도 그는 결혼을 선택했을까 내심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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